"VIP도 지갑 닫았다".. 코로나 여파에 명품 성장세 꺾여

김은영 기자 2020. 3. 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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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도 굳건하던 명품, 경보단계 ‘심각’ 격상 후 20%대 추락
"확진자 돼 동선 밝혀질라" VIP도 쇼핑 자제 움직임

지난 5일 오후 6시, 평일 저녁이었지만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 에비뉴엘 샤넬 매장 앞엔 17명의 대기자가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낀 점원은 "지금부터 기다려도 매장 종료 시각인 8시 전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내일 아침 개점 시간에 맞춰 다시 오라"고 했다. 근처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의 매장에도 10명 안팎의 대기자가 서 있었다.

명품은 불황도 피해간다더니, 바이러스에도 굳건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코로나19 발생 초만 해도 명품은 백화점 카테고리 중 유일하게 성장했지만, 지난달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하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신세계백화점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월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16.4% 성장했다. 같은 기간 여성패션이 41.9%, 남성패션이 27.7%, 식품이 34.6%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유일한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한 23일을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날부터 이달 5일까지 명품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8% 감소했다.

롯데백화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월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22% 하락한 가운데, 해외패션 부문은 6% 신장했다. 하지만 23일부터 이달 5일까지 해외패션 매출은 18.6% 하락했다. 현대백화점도 1월 25.2%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던 명품 매출이 2월 들어 6%대로 떨어졌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에비뉴엘과 같이 명품이 특화된 점포는 위기경보 단계가 격상한 후에도 30~40%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반 점포에선 명품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주요 지점들이 확진자 방문 등을 이유로 휴점한 것도 실적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다만, 매출이 줄었는데도 매장 밖 줄서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대부분 명품이 '일대일 응대'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고객 응대 지침이 강해져 1인당 응대 시간이 이전보다 길어진 탓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수의 VIP(Very Important Person)를 대상으로 하는 명품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산업군으로 꼽힌다. 실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2015년에도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은 10%가량 성장했다.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로 한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2018년 10%, 2019년 20%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백화점의 매출 효자 노릇을 했다.

코로나19 발생 후에도 명품은 주요 백화점에서 20~30%대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자 VIP들도 지갑을 닫는 모양새다. 한 온라인 명품 커뮤니티에서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만 해도 "코로나 덕에 백화점에 사람이 줄어 쇼핑하기가 좋아졌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지금은 "이 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동선이 밝혀지면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라며 쇼핑을 자제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국내 백화점에서 명품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5~30% 선으로 알려진다. 최근 백화점들이 명품의 성장세를 고려해 고급화 전략을 추진한 만큼, 명품 매출의 하락은 전체 매출에도 치명타를 줄 수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격상한 지난달 23일부터 12일간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18.6% 하락하면서, 전체 매출도 42.8%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코로나19 발생 이후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전체 매출 감소세는 -20%대 수준이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실적을 지탱하는 게 명품이었는데, VIP의 소비가 줄면 실적 압박이 더 커질 것"이라며 "최근 2주간 명품 매출이 감소하면서 전체 매출 감소세가 더 커졌다. 이런 역성장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세계 명품업계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진을 겪고 있다. 이번 감염증이 중국에서 시작한 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은 명품 기업의 실적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명품 매출 중 40%가 중국 소비자에게서 나왔다. 이와 관련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의 한 분석가는 향후 6개월 동안 중국의 명품 소비가 10% 줄어들면 전 세계 명품 업체들의 매출이 2% 감소하고, 연수익은 최대 4%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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