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왜 갔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확진자 동선정보..대안은?

김주현 기자 2020. 3. 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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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레일 관계자들이 4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KTX 객실 내부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수일간 개인적인 일상정보까지 상세하게 공개되니까 끔찍하네요. 코로나 증상보다 내 일상 정보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게 더 두렵습니다.”

직장인 이모씨(30)는 긴급재난문자로까지 공개되는 코로나19(COVID-19) 확진자의 이동경로를 보며 “코로나19보다 동선공개가 더 무섭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정보 공개 범위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방역 당국과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내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홈페이지에 낱낱이 공개한다. 확진자 정보를 신속히 공개하는 건 국민의 알 권리와 감염병 확산 방지 효과 때문이다. 정보를 알아야 지역 주민들이 선제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지금처럼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역 조치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반면 과도한 동선 공개는 오히려 확진자에게 바이러스 감염증세보다 더 끔찍한 사생활 침해 피해를 유발한다. 인권 침해 가능성도 다분하다. 때문에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공개 정보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거긴 왜 갔대"…코로나19 증세보다 무서운 주변 이목
방역 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일일이 공개하는 확진자 정보는 개인정보들이다. 특히 근무지와 식당, 숙박지, 매장 등 상세한 이동 경로(시간)와 방문장소 등은 일반 개인정보보다 더 치명적인 민감 정보에 속한다. 확진자 정보사이트에 개인을 직접 식별할 수 있는 이름, 전화번호, 주소 등이 공개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지인이나 회사 동료라면 근무지·동선 정보를 보고 누군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웹사이트를 통해 확진자 현황과 상세 이동경로를 공개하고 있다. 또 확진자의 성별, 출생연도, 국적, 우한 방문 여부, 입국일, 확진일, 입원 기관 정보까지 공개된다.

방역 당국이 확진자 상세 동선을 공개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규정에서 예외 사항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처럼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선 일정 부분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는 불가피하다는데 국민 대부분이 공감한다. 개인의 사생활보다 공공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가급적 신속하게 확진자 정보 및 이동 경로를 공개함으로써 행여 마주쳤을 지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확진자의 동선 공개는 필요하지만, 자칫 현재와 같은 과도한 공개범위가 확진자에게 더 가혹한 프라이버시 침해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N번째 확진자의 이동경로가 밝혀질 때마다 인터넷 상에서는 ”역마살 낀 듯 돌아다녔다”, “대체 호텔은 왜 간거냐”는 식의 근거없는 추측과 비방들이 난무했다. 사실 감염병 관리와는 관계없는 대목들이다.

공개된 확진자 동선정보는 실제 확진자가 공개를 감추고 싶은 사적 방문장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방역당국은 신속한 역학 조사를 위해 확진자 진술 뿐 아니라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확진자의 동선정보를 파악한다.

인권 침해 소지도 다분하다. 대구를 방문한 확진자들에게는 날짜와 방문 목적과 관계없이 ‘신천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지역 내 확진자의 이동경로만 공개했을 뿐인데 사는 곳과 직업까지 ‘네티즌 수사대’를 통해 강제 공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역효과도 우려된다. ‘동선 공개’가 무서워 감염증세가 나타나더라도 숨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확진자 동선 공개는 감염예방에 필요한 정보만 공개해야 한다"며 "확진자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더 까발리느냐가 지자체장의 행정력의 척도인양 비춰지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대안 없을까…지역별 노출장소·시간만 공개한다면
SK텔레콤 본사 직원이 '코로나19' 검사 1차 양성 판정을 받은것으로 알려진 2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SKT타워에 폐쇄 안내문이 붙어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동선정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보 공개 유형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테크앤로 변호사는 “확진자의 이동경로 공개는 전염병 확산 위험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지만 이동경로를 두고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근거없는 추측이 나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성별, 이름, 나이 등 개인정보를 식별할 수 없도록 가명처리한 가명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확진자 개인별 동선이 아니라 지역별로 묶어 확진자들의 방문장소와 날짜, 시간 정보만 공개하는 방안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보안업계의 한 관계자는 "굳이 확진자 개인이 어딜 다녔는 지 궁금하지 않다"며 "차라리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와 시간만 제대로 알려준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동선공개는 불가피하다면서도 불필요한 동선 공개나 인권 침해가 없도록 관리하겠다고 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6일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에서 "감염병에서는 개인의 인권보다는 공익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지자체별로 확진자 정보 공개 수준 차이가 있는데 세부 기준 사항을 만들어 권고하겠다"고 했다.

이어 "교육 등을 통해서 동선 공개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해야 하는지를 더 명확하게 하고 불필요한 동선 공개나 인권 침해가 없도록 최대한 관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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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기자 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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