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셰일가스산업 고사?..푸틴은 왜 감산을 거부했나

방성훈 2020. 3. 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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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셰일 손익분기점 50달러..줄도산 우려
"러시아 美 셰일기업 고사시키려 감산 거부"
러, 美제재에 보복..사우디와 이간질 해석도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국제유가 폭락시킨 러시아의 감산 거부 결정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셰일(shale)가스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빅 픽쳐’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래 국제원유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미국 셰일기업들을 고사시킬 목적으로 제살깎기임을 알면서도 감산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美 셰일기업 고사시키려 감산 거부”

CNBC는 8일(현지시간)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비(非)OPEC 23개 산유국들, 이른바 OPEC 플러스(+)가 추가 감산 합의가 불발된 것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근현대 역사상 최악의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한 유가 전쟁을 촉발시켰다. 희생자는 미국 셰일오일 기업들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CNBC는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는 (유가를 떠받쳐 미국의) 셰일가스 산업을 지지하길 더이상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협상에 관여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추가 감산에 동의하지 않은 건 OPEC+의 감산으로 미국 셰일가스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라며 “러시아의 이번 결정은 미국 셰일가스 산업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FT에 “러시아는 이미 가격이 하락할만큼 하락했는데도 ‘더 두고보자’는 이상한 견해를 반복적으로 내비쳤다”며 “미국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명백했다”고 말했다.

앞서 OPEC+는 지난 5~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추가 감산 논의를 가졌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은 코로나19로 전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 210만배럴 감소했다며,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150만배럴 줄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비OPEC 산유국들을 이끄는 러시아가 또다시 “좀 더 시장을 지켜보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반대했다. 러시아는 그간 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 차질로 자연스럽게 감산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빌딩. (사진=AFP)
◇美셰일 손익분기점 50달러…줄도산 우려

미국은 셰일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생산한다. 생산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투자 대비 수익을 내려면 국제유가가 최소 50달러 이상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50달러 밑으로 떨어진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면 셰일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줄도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제이슨 보도프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장은 FT에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이 생산량 유지를 위해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인데, 유가 전쟁까지 일어나면 파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며 “9일 장이 열리면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RBC캐피탈마켓 비라지 보카타리아는 FT에 “로열더치셸이나 엑손모빌과 같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조차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려면 브렌트유가 배럴당 50~60달러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CNBC는 셰일가스 기업들이 줄도산하게 되면 수많은 일자리가 함께 사라질 것이라며 “미국 셰일가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투자자들은 원유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갇히게 됐다”고 진단했다.

앞서 지난 2015~2016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다. 2014년 상반기까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 머물던 국제유가는 같은해 6월 이후 60%가량 추락했고, 2016년까지 50달러 이하에 머물렀다.

당시 수많은 미국 셰일가스 기업들과 이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들이 자산을 매각해 적자를 메우거나 결국 파산했다.

문제는 현재 글로벌 경기 상황이 당시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원유 수요가 급감한 상태다. 산유국들이 추가로 생산을 늘리게 될 경우, 또 수요가 더 줄어들 경우 작은 변화라도 국제 원유 시장에 끼치는 파장이 클 것이라고 CNBC는 내다봤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러, 美제재에 보복…사우디와 이간질 의도 분석도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와 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구축 사업에 제재를 가한데 따른 보복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미국은 지난해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의 ‘돈줄’ 국영석유회사 ‘PDVSA’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PDVSA의 자산을 동결시키고, 미국 내 정유 자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마두로 정권에 송금하는 것도 금지했다.

나아가 지난달 18일 베네수엘라 원유 판매와 운송을 중개한 러시아 국영 석유업체 로스네프트의 자회사(로스네프트 트레이딩 SA)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명목은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길을 막겠다는 것이지만, 동맹 관계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시장 일각에선 러시아도 이번에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에 나섰다는 주장이 나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우디의 추가 감산을 반대한 것이지만, 미국과 사우디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뒤흔들고 궁극적으로는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을 부추기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가 증산하면 유가가 떨어져 미국 셰일가스 기업은 직격탄을 입게 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관여하는 기업들을 제재하는 내용의 법률안에 서명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미국이 셰일 오일을 유럽에 팔기 위한 견제라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당시 러시아는 즉각 “상호주의에 입각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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