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천지가 신천지라고 안 밝히는 이유.. 형민씨의 고백

황인호 기자 2020. 3.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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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서 20대의 반을 보낸 형민(오른쪽)씨가 지난 4일 광주 북구 신천지 베드로지파 지성전 앞에서 '절친' 동규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신천지에서 보낸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보다 세상에 꺼내놓기로 했다.


형민(24)씨는 고3 시절 직업 학교에 다니다가 신천지로부터 ‘공격 섭외’를 당했다. 자신의 신앙적 견해를 밝히고 바로 포교에 들어간다고 해서 신천지 내부에선 이를 공격 섭외라 부른다. 선교를 가려 하는데 스피치 좀 들어달라며 접근해 속인 뒤 곧바로 복음방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물론 여기서도 자신이 신천지임을 밝히진 않는다.

교회를 다니진 않았지만, 성경을 배우는 게 일종의 버킷리스트였던 형민씨는 2014년 3월 그렇게 발을 들였고 그 후 5년을 신천지에서 보냈다. 지난해 신천지로부터 ‘사고자 처리(탈퇴자)’ 된 형민씨를 지난 4일 광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형민씨 옆에는 ‘절친’ 동규(24)씨가 자리했다. 동규씨는 형민씨가 과거 신천지로 끌어들였던 친구였다. 다행히 동규씨는 교육생 단계에서 빠져나왔다.

“사방이 신천지 밭”
형민씨가 속한 곳은 신천지 전국 12개 지파 중에서도 청년이 가장 많다는 베드로지파였다. 여기서 형민씨는 전도팀장으로 있었다. 형민씨는 ‘찾기’ ‘따기’ 횟수 등을 일일이 기록했고, 이 기록에 따라 매주 평가를 받았다. 주별 비교 결과에 따라 정신교육이 이뤄지기도 했다.

신천지 신도들이 매일 작성하는 보고서는 신천지 자체 애플리케이션 ‘S라인’이나 ‘위아원(We are one)’에 모두 업로드된다. 섭외 대상자 이름을 검색하면 언제 포교를 당했는지, 현재 포교 과정 중 어떤 단계인지 등 정보들이 함께 뜬다. 섭외대상자 한 명에 섭외자 여럿이 겹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함께 포교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딜 가도 신천지 밭인 셈이다.

형민씨도 포교를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다. 청년부 소속이던 형민씨는 주로 거리 포교, 지인 포교를 담당했다. 동규씨도 형민씨 포교 대상자 중 한 명이었다. 성경 공부를 하자며 동규씨를 복음방으로 끌어들였고 유능한 강사를 소개해줬다.

동규씨는 “형민이가 성경 공부하자며 A씨를 소개해줬다. 그러더니 나랑 비슷한 입장인 사람이 있다며 B씨를 데려왔다. 전부 신천지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중에 형민이한테 들었는데 매일 나 빼고 3명이 모여서 전략 회의를 했다더라. 이들 모두 신천지인 걸 알고 형민이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집단적 가스라이팅 ‘모략 포교’ ‘은사치기’”
형민씨에 따르면 신천지 포교 수법으로 알려진 ‘모략 포교’는 베드로지파가 개발해 가장 먼저 시행했다고 한다. 1987년 광주 동구 산수동 작은 골방에서 활동을 시작한 베드로지파는 다른 지파가 주로 장년층이었던 데 비해 대부분 청년·대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당시 다른 지파로부터 “아이들 데리고 뭐하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던 베드로지파는 모략 포교 방식으로 신천지 12지파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동규씨는 신천지가 모략 포교를 하면서 삶에 통용되던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했다.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인데 왜 안 돼’라며 반문하게 된다고 했다. 형민씨도 동의했다. 그는 “신천지에서는 신천지임을 밝히는 것이 신천지로 올 구원의 길을 막는 행위라고 가르친다. 거짓말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며 “그렇게 교육을 받다 보면 내가 하는 건 거짓말이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친구의 구원을 지켜줬다고 합리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규씨는 신천지가 사용하는 ‘은사 치기’ 역시 도덕적 기준이 없어져 버린 예라고 말했다. 은사 치기는 치밀한 계획 아래 대상자를 정신적으로 옭아매는 신천지 포교 전략이다. 자신들 모임에 의문을 품은 사람에게 제3자가 다가가 ‘지금 하는 (성경 공부) 모임 그만두면 안 좋은 일을 당한다’고 말하고 실제 그 일을 일으키는 식이다. 동규씨는 은사 치기를 사실상 ‘집단적 가스라이팅(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이라고 말했다.

“너희는 도끼. 휘두르는 사람 없이 쓰이겠냐”
동규씨는 전남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신천지 관련 글을 보고 자신이 신천지 교육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길로 동규씨는 신천지에서 나왔다. 형민씨는 동규씨 포교에 실패한 뒤 지금껏 친구를 위해서라고 한 일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더 객관적으로 신천지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신천지는 ‘국방부’라고 군대 간 청년들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지만, 연락에 제약이 있어 아무래도 영향력이 떨어진다.

형민씨는 “신천지에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를 가르치며 ‘너희는 도끼다. 휘두르는 사람 없이 쓰이겠냐’라고 세뇌시킨다. 뿐만 아니라 자의식을 죄악으로 치부하는 성구를 많이 사용한다”며 “계속되는 교육에 주체성은 사라지고 시키는 것만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신천지에선 수학 공식처럼 답을 내려 준다. 그러나 동규 포교에 실패하면서 내가 생각한 게 옳은가, 그들이 가르쳐 준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며 “생각에 여유가 생기니 신천지가 한 거짓말이 보였다”고 말했다.

두 친구는 지난해 9월부터 자신들이 겪은 일을 글로 쓰고 있다.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한 이력이지만, 숨겨놓은 채 없던 일로 하지는 않기로 했다. 신천지로 낙인찍힐까 두렵지만, 숨어만 있는 건 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형민씨와 동규씨는 “단순한 피해자로 남고 싶지 않다. 부끄러운 흑역사지만 기록을 남겨 사회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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