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장르영화 코드로 번역된 세월호 비극 [시네프리뷰]

2020. 3. 1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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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악몽

영제 The Nightmare

제작연도 2018

감독 송정우

출연 오지호, 차지헌, 지성원 외

상영시간 100분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개봉 2020년 3월 12일

스톰픽쳐스코리아
트라우마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 벌써 6년이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부모들 인생이 그날을 기점으로 달라질지 누가 알았을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도 할퀴었다. 그해 가을 초입의 한밤중, 청와대 앞 주민센터 주차장에 세워진 임시천막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좋은 꿈이 아니다. 악몽이다. 위로의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 부모들을 두고, 대통령은 꼭꼭 숨었다.

현실과 꿈이 뒤집히는 이야기 구조

외동딸을 둔 부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하원은 아빠의 몫이다. 바르게 인사하는 아이에게 유치원 교사는 노란 풍선을 선물로 줬다. 아이는 풍선에 ‘삐삐’라는 이름을 붙인다. 업어달라는 딸을 위해 앉는 순간 풍선은 하늘로 날아간다. 상심한 아이는 투정을 부린다. 아빠 미워.

레고 마니아인 딸은 아빠에게 영화 다 만들면 말레이시아에 있는 레고랜드로 놀러가자고 한다. “그러마”라고 했지만, 일단 영화의 성공이 중요하다. 아빠는 영화감독이다. 그리고 장면의 전환. 엄마가 울부짖는다. 유리창 너머 나무관이 불에 탄다. 화장장이다. 아이, 예림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아이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재의 기억은 너무나 크다. 초콜릿 한 조각에서도 아이가 떠오른다. 엄마는 못 먹게 했는데, 아이는 벌써 다섯 개나 먹었다.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 끊어지자 불신이 파고든다. 맞벌이 부인 옆을 맴도는 원어민 강사가 눈에 거슬린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감독은 꿈속에서 등에 뱀 문신을 한 여인을 만난다. 그가 꾸는 악몽은 그 뱀 문신 여인 옆에서 깨어나거나, 그녀가 그를 떠나는 꿈이다. 시나리오는 안 나왔는데 캐스팅부터 한다. 무의식적으로 감독은 그 뱀 문신 여인을 찾고 있다. 그리고 오디션 맨 끝에 찾아오는 그 여인. 그리고 일탈.

영화 속 꿈과 현실의 경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 순간 뒤집힌다. 딸을 둔 영화감독 부부는 그가 찍는 영화 속 가상 부부다. 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도 그가 쓴 각본의 내용이었고. 뱀 문신을 한 여인은 알고 보니 그의 실제 부인이었다. 감독이 쓴 영화 〈악몽〉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투자사는 영화사 대표를 압박해 죽은 딸이 귀신으로 되살아오는 이야기로 변경하자고 제안한다. 의외로 감독은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변경된 시나리오를 읽은 영화사 대표는 “신이 들린 모양”이라며 “영화의 엔딩이 압권이었다”라고 반색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열린 결말이다. 앞서 언급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지고 어느 방면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도 앞뒤가 들어맞도록 맞춰놨다.

영화 속 감독이 숨겨놓은 코드

그런데 감독이 영화에 숨겨놓은 코드가 있다. 세월호의 비극이다. 아이의 부재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부모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버렸다.

끊임없이 그날, 정확히 말하면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 곱씹어 후회한다. 그날 이후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악몽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갈 수밖에 없다. 슬픔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안산 단원고를 중심으로 남은 응어리를 제외하고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던 세상은 어느덧 정상 속도로 돌아왔다. 세월호의 비극이 남긴 생채기는 변주되어 장르영화의 코드로 번역된다. 말하자면 감독이 바치는 진혼곡이다. 정리해보자면 영화 앞에서 차마 묘사할 수 없었던 그날 오후 벌어졌던 ‘비극’은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원망은 투사된다. 아버지의 일을 방해하는 사건은 그날 오전 11시쯤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낮잠 때문이었을까. 그를 덮친 수마(睡魔)는 ‘서큐버스’로 의인화된다.(휴대폰에 여인의 이름은 ‘수’로 저장되어 있다) 감독이 숨겨놓은 세월호 코드는 꿈속에서 아이와 재회하는 배경인 하늘 위로 비상하는 고래CG로 드러난다.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석정현 작가의 ‘얘들아 보고 있지?’라는 작품을. 광화문 세월호 촛불 위로 비상하는 고래그림(실제 2016년 겨울, 박근혜 탄핵 광화문 촛불시위 때 이 장면을 재현한 적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뒤집히는 이야기 구조가 난해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장르적 전통 속에서는 1950년대 〈환상특급(Twilight Zone)〉이나 해머 프로덕션의 에피소드들부터 구축된 익숙한 이야기 구조다. 영화사 대표의 입을 빌려 “끝내주는 엔딩”이라고 했으니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떨까. 그건 앞으로 영화를 볼 관객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자.

배우에게 캐릭터란

스톰픽쳐스코리아

몇 주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작법에 대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 감독들에겐 영화 속 캐릭터들이 자기가 진통을 겪어 낳은 새끼들처럼 보일 것이다. 그건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 장국영은 만우절에 투신자살로 세상을 마감했다. 기묘하게도 그의 마지막은 그의 유작이 된 영화 〈이도공간〉(2002)의 엔딩장면과 겹친다. 영화 속 캐릭터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우울증이 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풍문이 돌았다. 2대 조커로 이제는 영화사에 남은 히스 레저의 선택도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히스 레저의 사인은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인한 약물 오용이었다. 조커에 심취한 나머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몰두했고, 그가 그 배역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배역 때문에 우울증이 심화된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배역은 엄밀히 말해 그 배우의 자기 인생은 아니다. 그러나 배역의 ‘아우라’는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특히 성공한 영화는 더욱더. 평생 14살 소녀 도로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주디 갈랜드가 그랬고, 〈엑소시스트〉의 악령 들린 소녀 리건 역의 린다 블레어가 그랬다. 〈악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오지호의 열연이다.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TV드라마를 포함해 벌써 42편에 출연한 중견배우가 되었다. 기억나는 영화는 〈연예의 맛〉(2015)과 같은 로맨스 코미디물 속 캐릭터인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배우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것도 영화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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