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만에 마스크 침으로 젖어" 콜센터 직원들의 '처절한' 호소

신지후 2020. 3.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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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의 한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모(44)씨는 최근 며칠 출퇴근 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김씨는 11일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라며 "전국 어느 콜센터든 확진자가 발생하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일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 카드사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이모(46)씨는 "마스크를 끼면 발음을 잘 못 알아 듣겠다는 고객 불만이 많아진다"며 "회사에서 마스크를 주지 않아 직접 구해야 하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해 약국에 가는 건 어림도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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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신도림동 콜센터 집단 감염에

“전국 대부분 콜센터들이 같은 상황” 토로

좁은 공간에 많게는 수백명 밀집

연차 쓰면 인센티브 삭감하는 회사도

11일 오전 광주 북구청 대강당에 임시로 마련된 코로나19 능동감시자 모니터링실(콜센터)에서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을 계기로 긴급 방역이 진행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의 한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모(44)씨는 최근 며칠 출퇴근 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콜센터 근무환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유독 취약하다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하던 와중에 실제 구로구 신도림동 콜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다.

김씨가 일하는 콜센터는 초등학교 한 반 크기로, 50여명의 상담사들이 모여 일한다. 일렬로 된 긴 책상에 10~12명이 앉고, 각 상담사의 맞은 편에 또 10명 안팎의 상담사들이 앉는다. 앞, 옆으로 칸막이가 있긴 하지만 8시간 내내 50여명이 말을 하며 일하는 데다 소음 민원 탓에 창문도 열지 못해 침과 땀이 공기를 타고 맴돈다. 출근 30분 만에 마스크가 침으로 젖어 장기간 착용하기도 어렵다. 김씨는 11일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라며 “전국 어느 콜센터든 확진자가 발생하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일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콜센터 관련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전국 곳곳의 콜센터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좁은 공간에 많게는 수백명 인원이 밀집 근무하는 등 감염 위험성이 크지만 사측의 대처는 미흡한 탓이다.

전국의 상담사들은 콜센터 집단감염이 ‘예고된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업무 특성 상 마스크를 끼고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 한 카드사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이모(46)씨는 “마스크를 끼면 발음을 잘 못 알아 듣겠다는 고객 불만이 많아진다”며 “회사에서 마스크를 주지 않아 직접 구해야 하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해 약국에 가는 건 어림도 없다”고 털어놨다.

아파도 쉴 수 없는 환경도 문제다. 상담사 1명이 자리를 비우면 업무 공백이 커지는 탓에 연차를 허락하지 않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상담사들은 매달 실적 평가를 통해 인센티브를 받는데, 일부 회사에선 연차를 사용할 경우 점수를 깎기도 한다.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콜센터의 첫 확진자(56)가 지난 6일 오후 4시쯤 오한 등 증상을 느꼈는데도 4시간여가 지난 후 귀가한 이유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최근 신종 코로나 확진자 5명이 발생한 대구의 한 콜센터 측도 의심 증상을 호소하는 직원들에게 ‘조퇴 신청서를 쓰라’고 요구하며 수시간 붙잡아 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전 대전시청 120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재택근무 시스템을 도입한 회사는 사실상 전무하다. 사측은 “콜센터 상담은 개인 정보를 다루는 업무여서 재택 근무를 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손을 놓고 있다. 콜센터 전문기업 한국고용정보에서 일하는 손영환씨는 “잠시 병원을 다녀 오려는 상담사에게 ‘병원에 도착해 그곳 번호로 전화하라’는 지침을 내릴 정도로 폐쇄적인 구조라 재택근무는 너무나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일부 회사는 방역 조치를 실시하고 있지만 미흡한 경우가 적잖다. 이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에 따르면, 한 홈쇼핑 업체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문의량이 늘면서 콜센터를 방역하는 15분 동안 상담사들을 그대로 다른 층으로 옮겨 전화를 받게 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쓰던 헤드폰과 마우스 등은 무작위로 공유됐다.

상담사들은 현실적 방안으로 상담사 분산 근무와 병가 및 연차 활성화 등을 요구했다. 또 콜센터 대부분이 도급 형태로 운영돼 원청과 하청 업체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비스일반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에서 대책을 만들어 도급사에 안내를 해야 도급사가 상담사를 위한 마스크 제공 등을 진행할 수 있다고 본다”며 “또 각 사가 빈 사무실 등을 활용해 상담사들을 분산 근무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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