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코로나19 백신, 다국적 제약사는 왜 머뭇거리나

권혁주 입력 2020. 3. 12. 00:27 수정 2020. 3. 12.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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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원 큰돈 들이는 백신 개발
자칫 엄청난 손해 입을 가능성
콜레라 백신 등도 만들지 않아
한 해 개도국 어린이 250만 명 희생


백신의 정치경제학

국제백신연구소는 글로벌 제약사가 손을 뗀 백신을 개도국에 공급한다. 15개국 140여 명이 장티푸스 백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통 난리다. 불길이 서서히 잡히는 듯하더니, 서울 신도림동 콜센터에서의 감염으로 불안감이 다시 확 번졌다. 국민 건강과 더불어 경제 또한 심각한 감염증을 앓고 있다. 손님이 끊긴 자영업주들은 버틸 체력이 바닥나다시피 했다. 기업들마저 비틀거린다.

한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아비규환이다. 벌써 확진자가 12만 명, 사망자가 4300명이다. 이탈리아는 전국에 이동제한령을 내렸다. 주식시장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선 하루 만에 시가총액 2200조원이 증발했다. 비관론자로 유명한 ‘닥터 둠’ 누비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올해 세계 주식이 30~40%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터널 속이지만 사태는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또다시 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치명적인 에볼라는 잠잠해졌다가 갑자기 창궐해 수천, 수만 명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코로나19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부하령 박사는 “중국 광둥(廣東)성과 홍콩 등지에 국한됐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사라졌지만, 세계로 퍼졌던 신종플루는 계절 독감처럼 반복 유행하게 됐다”며 “전 세계로 번진 코로나19도 신종플루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벤처가 시동 건 코로나19 백신

코로나19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인류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백신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전염병 창궐에 대비해 2017년 탄생한 국제기구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이 자금을 댔다. 몇몇 기업과 연구소는 벌써 백신 후보물질을 찾아냈다. 바이오 기술이 발달한 덕이다. 빠른 곳은 다음 달이면 임상시험을 시작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이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파악하는 절차다. 이르면 다음 겨울까지는 백신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직 임상시험 중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그래도 백신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린다. 임상에 실패하면 기간은 더 길어진다.

코로나19 백신은 호주 퀸즈랜드대와 미국 바이오 업체 이노비오·큐어백 등이 개발 중이다. 대형 다국적 제약사가 자체 개발한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형 제약사 경영진들과 코로나19 대책 회의를 했는데도 그렇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백신을 빨리 개발할 첨단 기술을 주로 벤처들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CEPI가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백신 개발에 소극적인 대형 제약사의 생리다. 수천억원 큰돈을 들여 백신을 만들었다가 자칫 손해를 볼 수도 있어 머뭇거린다. 혹시 전염병이 한 번 확 번졌다가 사라지면 엄청나게 투자한 백신이 아무 소용 없어진다. 그렇다고 초기에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을 때 비싼 값을 받기도 곤란하다.

미국의 탐사보도 기자이자 작가인 제럴드 포스너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대형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칼럼을 싣고 이렇게 주장했다.

‘1976년 신종 독감이 유행했을 때다. 대형 제약사들이 미국 정부에 백신 공급 조건을 내세웠다. 부작용이 생기면 정부가 100% 배상하고, 적정 이윤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일단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백신 부작용으로 1억 달러(1200억원)를 배상했다. 움츠러든 정부는 2009년 신종플루 때는 백신 보급에 나서지 않았다. 그로 인해 미국인 1만2649명이 사망했다. 이번에 연구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도 대량 생산은 대형 제약사가 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대형 제약사가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협력할지 시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비단 코로나19뿐이 아니다. 수익 논리는 다른 백신에도 적용된다. 독감 백신처럼 계절마다 맞거나, 자궁경부암 백신처럼 선진국에서 비싸게 받는 것 아니면 개발·제조를 꺼린다. 에볼라도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했기에 백신 개발이 늦어졌다가 지난해 말에야 겨우 백신이 등장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어두운 뒷면이다.

콜레라나 장티푸스처럼 선진국에서 종적을 감춘 질병의 백신 또한 찬밥 신세다. 이런 질병이 아직도 번지는 곳은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개발도상국이다. 아주 싼 값이 아니면 백신을 맞지 않는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일부 국가에게 백신은 그저 그림의 떡이다. 그러니 돈벌이가 안 돼 글로벌 제약사들이 더는 만들지 않는다.

개도국 백신 전도사, 국제백신연구소

국제백신연구소(IVI) 제롬 김 사무총장은 “이미 개발한 백신만 개도국에 값싸게 공급해도 한 해 250만 명 어린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개도국에만 있던 풍토병이어서 아예 다국적 제약사들이 백신을 개발조차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1년에 650만~750만 어린이들이 희생된다고 한다.

서울에 본부를 둔 IVI는 값싼 백신을 개발해 개도국에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각국 정부와 개인·단체 후원을 받아 운영한다. 그러나 미국·독일 등 이른바 G7(주요 7개국)은 IVI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김 사무총장에게 물었다.

Q : G7은 왜 빠졌나.
A : “IVI는 주로 개도국에서 퍼지는 질병 백신을 개발한다. 그런 질병은 G7의 국민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개도국에서 쓰러지는 어린이는 그들에게 ‘투명 인간’이다. 또한 (20여년 전) IVI를 만들 때 대형 제약사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으니 IVI에 참여하라고 G7을 설득하려 한다.”

Q : 코로나19때문에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 금융회사들도 백신 개발과 IVI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
A : “IVI는 새로운 후원을 마련하려 많이 노력한다. 항공사 역시 전염병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콜레라도 여행객들이 퍼뜨린다. 하지만 IVI 사업에 금융·항공 회사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쉽지 않다.”

Q : 북한 관련 사업은 추진하지 않나.
A :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다가 정치적 이유로 중단했다. (※IVI는 2007~2008년과 2012~2013년 북한에 백신을 지원했다.) 북한에 관심은 있으나 제재가 있고 UN 승인이 필요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 빌 게이츠도 후원하는 국제백신연구소

제롬 김 사무총장은 ’누구나 어려움 없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국제백신연구소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최정동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후문 쪽에 자리한 국제백신연구소(IVI)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7년 설립했다. 중국·싱가포르 등과 경쟁해 한국이 유치했다. 개발도상국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국내 백신 산업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

그간 먹는 콜레라 백신 등을 개발해 개도국에 공급했다. 국내 바이오 업체 진원생명과학과 함께 메르스 백신을, SK바이오사이언스와는 장티푸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참여하는 방안 또한 검토 중이다. 개도국에 백신을 보급하는 게 주목적인 점을 생각하면 메르스 백신은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다. IVI측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위험성이 높은 질병의 백신을 만드는 것도 IVI의 타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세운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한국·스웨덴·인디아 정부 등이 IVI의 주요 후원자다. 올해 총예산은 3980만 달러(480억원)다. 지난해보다 38% 늘었다. 한국·미국·인디아·프랑스 등 15개국 143명이 일한다.

IVI 제롬 김 사무총장은 예일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육군에서 약 20년간 에이즈(AIDS) 백신을 연구했다. 2015년 IVI 3대 사무총장으로 부임해 지난해 연임했다. 그는 “에이즈 백신 말고도 보다 다양한 백신 개발 경험을 갖고자 IVI 사무총장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한국계로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 김현구 선생이 그의 할아버지다. 김현구 선생은 구한말 계몽운동 단체인 자강회 회원이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하와이애국단에 가입해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거사를 뒤에서 도왔다. 그 공로로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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