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문빠'는 왜 괴물이 됐나

정계성 2020. 3. 12. 06: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 집권 첫 해를 넘기기 전인 2017년 12월 방중을 단행했다.

문 대통령의 행사를 취재하던 사진기자가 중국인 경호원에게 폭행을 당한 것.

시민대중의 여론이라며 국회의원을 향해 문자폭탄을 뿌리는가 하면, 문 대통령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인격모독적인 언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 집권 첫 해를 넘기기 전인 2017년 12월 방중을 단행했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반한감정이 어느 때보다 컸기 때문에 긴장감은 작지 않았다.


사달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문 대통령의 행사를 취재하던 사진기자가 중국인 경호원에게 폭행을 당한 것. 밀고 밀치는 수준의 몸싸움이 아닌, 둘러싸여 바닥에 내팽겨지고 발길질을 당했다. ‘우리 국민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국가가 안전을 지켜줘야 한다’던 문 대통령의 중국을 향한 따끔한 한 마디를 기대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공식 입장은 없었고, 재발방지를 약속 받는 차원에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여기까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정작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기레기가 맞을 짓 했네’로 요약되는 이른바 ‘문빠’들의 반응이었다. 위로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기레기’라는 말에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의 행보에 오점만 되지 않는다면, 반인륜적 폭력도 문제될 게 없다는 집단적 광기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체주의적 폭력성은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시민대중의 여론이라며 국회의원을 향해 문자폭탄을 뿌리는가 하면, 문 대통령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인격모독적인 언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난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향한 행태가 그랬다.


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들은 이들 사이 허용되지 않는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문재인 지지했는데’ ‘나 문재인 찍었는데’ 하지만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최근에는 공격의 대상이 정치인·언론인과 같은 공인에서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에서 많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대구사태’라고 매도하는가 하면, 문 대통령 앞에서 경기가 힘들어 “거지같다”고 한 상인에게 SNS를 통해 욕설을 쏟아낸다. 정도가 심했는지 문 대통령까지 나서 “그 분(상인)을 좀 대변해달라”고 대변인에게 지시를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일종의 ‘양념’이라고 비호한 것이 그 시작이다. 첫 신년기자회견 당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기사에 지지자들이 보내는 격한 표현이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유권자인 국민의 의사표현이라고 담담하게 생각하라”고 답했다. ‘너무 심한 표현은 국민통합에 저해될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아마도 강성 지지자들에게 문 대통령의 말은 일종의 ‘면죄부’로 들렸을 터다.


그렇게 커져버린 지금의 ‘문빠’들은 민주당도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다. 오히려 이들의 힘을 바탕으로 ‘선명성’을 내세워 비례선거에 도전하겠다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흔히 얘기되는 중국 근대사의 홍위병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홍위병의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홍위병의 말로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들 조직은 곧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했으며 자기들이야말로 마오쩌둥 사상의 진정한 대변자라고 주장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다. 조직내분이 증가하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정부에서는 홍위병들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권유했고 정규군이 질서를 회복했다."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간 홍위병은 잊혀진 세대가 되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서지 못했다.

데일리안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