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부모도 교사도 "이건 아닌데.."장관님, 누구를 위한 '긴급돌봄'인가요 ['코로나19' 확산 비상]

송진식 기자 입력 2020. 3. 12. 21:34 수정 2020. 3. 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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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교육부·초등학교 엇박자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이 12일 오전 경기 수원시 매탄초등학교를 방문해 돌봄교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 “하는 것 없어 지루해”

중식 제공도 거의 안 지켜져

현장 교사들도 피로감 호소

유은혜 “개학 일단 23일로”

맞벌이 부부인 ㄱ씨는 지난 9일 초등학교 긴급돌봄에 자녀를 보냈다가 하루 만에 돌봄 이용을 관뒀다. 아이가 “보건교육실에 앉아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너무 지루하다”며 힘들어한 탓이다. 교육부가 “학교에서 중식을 제공한다”고 한 것과 달리 도시락도 싸서 보내야 했다. ㄱ씨는 “학교가 긴급돌봄을 하기엔 준비가 안돼 있는 것 같다”며 “당분간 친척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자녀 돌봄 공백의 대안으로 제시한 초등학교 긴급돌봄이 일선 현장과의 엇박자 속에 표류하고 있다. 학교에선 ‘오후 7시까지 긴급돌봄 연장’ ‘중식 제공’ 등과 같은 교육부의 일방적 지시가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교육부가 12일 집계한 긴급돌봄 수요를 보면 초등학교의 경우 3월9~20일 6만490명의 학생이 이용 의사를 밝혔다. 이는 전체 초등학생의 2.2% 수준이다. 신청만 하고 돌봄에 오지 않는 학생이 절반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이용률은 1%대로 추정된다.

교육부는 긴급돌봄 이용이 저조한 이유를 “감염 우려”로 돌리고 있지만, 학교가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탓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긴급돌봄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돌봄이란 게 말 그대로 아이를 봐주는 형태라 수업을 할 수도, 뭔가 준비된 프로그램을 할 수도 없다”며 “대부분 자습이나 독서를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는 학기 중 운영하는 방과후 돌봄교실 학생들을 위해 각종 교구 등이 마련된 교실이 있지만, 긴급돌봄을 신청한 학생들은 이곳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학교가 대다수다.

정부가 지난 6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밝힌 “긴급돌봄에서 중식 제공”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긴급돌봄을 위해 자체적으로 급식을 조리하는 건 불가능하고, 도시락을 주문하려 해도 인원이 일정치 않아 업체를 구하기 어렵다”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시”라고 밝혔다.

교육부의 일방 지시에 현장의 불만도 팽배하다. 한 장학사는 “긴급돌봄이라 해도 뭔가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은 ‘2차 공문’을 읽다보면 ‘3차 공문’이 내려오는 상황”이라며 “교사들의 피로도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돌봄을 놓고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이날 “내실 있는 돌봄 서비스를 위해 안전을 최우선하고, 학생의 발달 단계를 고려한 다양한 돌봄 프로그램(독서, 워크북, 찰흙놀이 등)을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에서는 퇴직교원 채용 등 효율적 인력 배치로 교직원의 업무부담을 완화해달라”고 덧붙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추가 개학 연기 가능성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판단할 문제”라며 “우선 오는 23일 개학을 전제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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