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시선] 'YS는 못말려' 그때의 위트가 그립다

박재현 2020. 3. 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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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엄숙한 가짜정보 대응
유머와 위트는 대중 카타르시스도
권력 명예 만큼 표현 자유도 중요
박재현 논설위원

노란색 방재점퍼를 입은 문재인 대통령이 왼손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사진을 본 순간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북한의 연기 지도자와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것처럼 꾸민 사진과 마찬가지였다. 합성의 티가 팍팍 났고 조악하다. “김정숙 여사가 ‘숙명여대 동문’인 공적 마스크 유통업체 지오영 대표를 뒤에서 밀어준 의혹이 있다”는 지라시 내용은 기본적 사실조차 갖추지 못했다. 숙명여고와 경희대를 나온 김 여사의 학력조차 챙기지 않은 엉터리였다.

청와대가 내세운 ‘금도를 넘은 가짜뉴스(fake news)’의 주요 사례다. “법적 대응을 포함한 원칙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부대변인은 밝혔다. 하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우도할계(牛刀割鷄·소 잡는 칼로 닭을 가르는 것) 같은 과잉대응이란 생각을 감추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뉴스와 언론이라고 하기도 뭐한 인터넷 상의 엉터리 정보 아닌가.

법률 대응을 하겠다면 명예훼손죄, 아니면 모욕 정도일터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고영주 전 검사의 사건을 보자.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유였다. 논리적 정확성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판단했다. 고 전 검사의 언행이 공산주의자라는 개념 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는 게 선고 논리였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정의 수반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무게와 위상을 고려하면 청와대의 법률적 대응 방침은 사실상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다. 대통령은 공인(公人)으로서의 대통령과 사인(私人)으로서의 개인으로 구분해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의혹 기사로 재판정에 섰던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 사건 때 나온 판결문 요지다. 대통령을 조롱하고 한국을 희화(戲畫)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박근혜’를 모욕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판결 논리였다. 공적인물에 대한 관심 사안이고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으로 넓게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모욕 혐의 등의 고소·고발을 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법률적 대응 아닌가. 혹시 “그건 사법부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들춰 보면 된다. 산케이 지국장 사건 때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문 대통령은 “정부가 국내 언론과 외신으로부터 불통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고,공인과 공적 관심사에 대한 비판과 감시는 대단히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에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보수정부 때도 인터넷에선 ‘박근혜 돌대가리’ ‘닭그네’ ‘다카키 그네코’ ‘쥐박이’ ‘2MB’(뇌 용량이 작다는 의미) ‘가카새끼’ 등의 저속한 비속어들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일부에 대해선 정권 차원의 대응이 있었고,일부는 모른 척 넘어갔지만 사회적 불안과 공포는 크지 않았다. 일부는 해학과 위트를 통한 대중들의 카타르시스였을 수도 있었다.

여론의 자유시장이 그만큼 내성을 가졌고, 조작된 뉴스는 시장의 자정작용과 함께 퇴출됐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민주적 형태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민주당만 빼고’의 임미리 교수 사건, ‘거지 같다’고 발언한 시장 상인에 대한 집단 공격 사례처럼 이 정부 사람들은 여유와 관용을 잃어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국민들의 ‘코로나 블루’ 우울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국민들은 그나마 해학과 풍자, 유머가 있는 사진과 글로 서로의 마음을 보담으며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고 있다. 차라리 청와대도 “못말리는 이니” “수기가 어이없어”라고 눙치고 넘어갔으면 어땠을까하는 불경한 생각도 해본다. 대통령의 명예 못지 않게 표현의 자유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 자존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군부시대를 끝내고 출범했던 문민정부 때 “YS는 못말려” “YS는 내친구”라는 유머집의 위트를 접하며 “민주화라는게 이런거구나”라고 놀랐던 기억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볼세비키 혁명 때 피고인에게 “위트는 유한계급의 마지막 놀이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인 검사의 신문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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