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질본 좋은 성과" 칭찬 19분 뒤..'4995번'은 숨을 거뒀다

김민욱 입력 2020. 3. 13. 05:01 수정 2020. 3. 1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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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분투 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뉴시스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환자 A씨(79)는 11일 오후 5시49분 결국 숨을 거뒀다. 방역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그는 10일 전 발열·호흡곤란 등 증세를 보여 대구 파티마병원으로 옮겨졌다. 사망 전까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죽음의 공포가 짓눌렀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A씨는 병원에 실려 와서야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방역 사각지대인 ‘숨어 있는 고령 환자’였다. 이후 그는 ‘4995번’ 환자가 됐다. A씨는 감염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저질환(지병)은 없었다. 이에 “좀 더 빨리 발견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 A씨가 임종을 앞둔 이 날 오후 5시30분 문재인 대통령은 충북 오송의 질병관리본부(질본)를 깜짝 방문했다. 격려 차원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질본이 열심히 해 세계가 (우리의 방역능력을) 인정하는 좋은 성과를 냈다”고 했다. 이어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게 아니라 세계가 평가하고 있다”며 “국민에겐 (그것이 코로나 19로 인한 상처) 치유”라고 덧붙였다. “사망자가 더 나오지 않게 각별히 노력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줄선 차량들. 연합뉴스


실제 주요 외신은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선별 진료소와 같은 신속한 진단검사 체계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포함한 성숙한 시민의식 등을 좋게 평가한다.

하지만 외신 평가나 문 대통령의 칭찬 속에서도 궂긴 소식은 멈추지 않는 것 또한 엄연한 국내 현실이다. 12일 오전 67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특히 문 대통령의 전날 ‘성과’ 발언을 코로나 19 사망자의 유족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한 유족은 수화기 너머로 울분을 토했다.

21번째 사망자 B씨(77·여)의 시동생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간)신문에서 질본 방문기사를 봤다”며 “어제(11일)도 6명의 환자가 죽어 나갔는데 뭐를 ‘잘한다’고 하는 거냐. 대통령으로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고 운을 뗐다.

B씨는 사후 확진자다. 생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55년을 해로한 남편도 확진판정을 받아 임종·입관 때도 곁을 지키지 못했다. 상당수 유족은 이렇게 고인과 헤어졌다.

시동생은 “수도권으로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데 너무 안이하다”며 “전에도 ‘다 잡았다’고 했다 퍼지지 않았냐”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달 13일 문 대통령은 경제계와 간담회에서 ‘종식’을 언급한 적 있다. 하지만 8일 뒤 74명의 신규 확진자가 터져 나오는 등 환자수가 급증했다.

B씨 시동생은 지금도 기본적인 경증환자 분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게 코로나 사투 현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성과는 거짓말이다. 대통령에게 ‘통계’만 보고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보좌하는 사람들도 쓴소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유족도 걱정이 앞섰다. “(환자수가 증가한) 지금 대구는 개별 환자의 역학 조사를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무너졌다고 본다. 우리도 어느 경로로 감염됐는지 확인이 안 된다”면서 “혹시나 또 모르는 상황에서 감염 사례가 나올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12일 대구에는 확진판정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서 아직도 집에 있는 환자가 892명이나 된다. 본인과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5년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시절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전문가들도 성과 메시지를 비판했다. 고려의대 최재욱(예방의학과) 교수는 “위기관리소통의 가장 우선순위는 위로와 고통 공감인데 이게 무시됐다”며 “(유족들이) 정말 비탄에 빠져 있고, 일반 시민도 모두 힘든 상황인데 질본 ‘칭찬’이 나왔다”고 말했다.

5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해 6월 3일 긴급 최고위원회에서다. “국민은 또다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 기본 책무다.” 메르스 사망자 ‘두 명’이 발생했을 때다.

김민욱 사회2팀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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