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이미 19세기 마차 대안으로 각광..이젠 환경문제 해결사로
1890년대 뉴욕 등서 축력 대체하며 대중화..에디슨도 개발
배터리·인프라 한계 탓 내연기관에 '자동차' 주도권 내줘
21세기 들어 친환경기술 발전·보조금 맞물리며 다시 주목
당연하게 생각한 지형도에 최근 변화가 생기고 있다. 요즈음 길거리에서 푸른색 번호판을 단 전기자동차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기자동차는 고용량 배터리의 전력으로 전기모터를 돌려 추진력을 얻는다. 내연기관과 같은 실린더 주기 운동이 없기 때문에 부르릉 소리가 나지 않는다. 즉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겉모양이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종류의 기계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예기치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자동차라면 응당 부르릉 소리를 내며 오가야 하는데 그 소리가 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소리로 주변 물체의 움직임을 판단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자동차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EU)에서는 2019년 전기자동차에 ‘음향 경고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는 최근에 갑작스레 등장한 테크놀로지가 아니다. 19세기 말 축력(畜力)을 이용한 운송수단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미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을 벌였다. 오히려 초창기에는 전기자동차가 보다 유력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1897년 미국의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을 보자. “도시 운송 문제에 있어 이른바 ‘말이 없는 마차(horseless carriage)’가 중요한 해결책으로 대두되고 있다. 적어도 이 나라(미국)에서 동물의 힘을 이용한 추진력은 전기(電機)의 힘으로 거의 완전히 대체됐다.” 이 기사는 이어 뉴욕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전기자동차 택시 회사의 소식을 전했다. 19세기 말 뉴욕에서 ‘자동차’란 우리에게 익숙한 내연기관이 아니라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이용한 차량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내연기관은 어떻게 20세기 모빌리티를 지배하게 됐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전기모터에 비해 내연기관이 우월한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본 연재 11회에서 설명했듯이 포드사는 1908년부터 내연기관을 이용한 ‘모델 T’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 경험이 축적되고 생산 규모가 확장될수록 대당 가격은 점점 하락했다. 이 무렵 당대 최고의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은 전기 배터리를 이용한 자동차를 개발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가 대중적으로 이용되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배터리의 성능이었다. 육중한 배터리를 내장한 자동차는 엄청나게 무거웠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재충전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연기관은 더욱 연비가 좋아졌고 가격은 싸졌다. 1920년대가 되자 내연기관 자동차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연기관이 자동차 테크놀로지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193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용된 목탄(木炭)자동차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시기에 석유 공급선이 막히자 중국과 일본의 엔지니어들은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를 개조해 목탄을 때워 나온 일산화탄소 가스를 동력원으로 삼은 자동차를 개발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민간에서 차량용 가스발생장치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의 절반을 보조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1930년대 후반 이후 목탄을 연료로 삼는 자동차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해방 당시 서울에 등록된 1만2,000여대 자동차의 대다수가 목탄차였다. 이후에도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유류 공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목탄차로의 회귀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는 했다. 이렇듯 목탄자동차는 자립경제(autarky)를 상징하는 테크놀로지가 됐다.
전기자동차와 목탄자동차의 사례들은 내연기관이 시장을 주도하던 20세기 내내 그와 경쟁하는 대안적 자동차 테크놀로지가 끊임없이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내연기관은 그들과의 경쟁을 뚫고 지배적 테크놀로지의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일단 내연기관의 주도적인 위치가 공고해지자 대안적 테크놀로지들의 의미는 새로운 상황에 맞게 재설정됐다. 한편으로 목탄자동차는 연료 부족이라는 특수한 사정에 대응하기 위한 과거의 궁여지책 정도로 자리매김됐다. 다른 한편으로 전기자동차는 앞으로 배터리 기술의 수준이 충분히 높아지면 실용화될 잠재성을 가진 미래 테크놀로지가 됐다. 1970년 한 신문은 ‘한국 2000년’의 모습을 “서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망은 새로 등장한 전기자동차와 무인자동 운전장치로 교통에 새로운 혁명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래예측이 비교적 정확하게 실현된 대단히 드문 사례다.
2020년 현재 전기자동차는 기후·에너지 위기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대안적 테크놀로지로 각광받고 있다. 전기차의 도입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대당 수백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시행 중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동차를 가장 효율적인 전기자동차로 교체할 수만 있다면 분명히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모빌리티가 야기한 각종 문제의 근본에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대하고 극도로 개인화된 교통 시스템이 놓여 있다. 한편으로는 보다 효율적인 전기 또는 다른 대안 연료에 기반한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도 꾸준히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멀리, 혼자서 이동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 없는 전기자동차는 곧 또 다른 벽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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