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못 타거나 피 나도록 손 씻는다면.. 코로나 공황장애

변희원 기자 2020. 3.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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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신의학계 '마음 방역' 제안
일러스트=안병현

지난 2월 말, 권모(41)씨는 회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 탄 대여섯 명을 보고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는 결국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계단을 이용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본 순간 코로나 생각이 났다. 혹시라도 확진자가 있을 것만 같았다"고 했다. 사람이 두세 명 이상 모인 밀폐 공간에서 이런 증상을 몇 차례 더 경험하고 그는 결국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코로나는 단지 바이러스이기 때문에만 위험한 게 아니다. 확진자나 자가 격리자는 물론, 일반인도 이로 인한 불안이나 우울, 분노 등을 느끼면서 심리적 부담을 호소한다. 일명 '전염병 스트레스'다. '코로나'와 우울을 뜻하는 '블루'를 합쳐 '코로나 블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와 관련해 한 달여간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들어온 전화 상담 건수는 3만건에 이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내놓은 '마음 건강 지침'에 따르면 불안은 순기능도 있다. 불안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는 등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들도 "적당한 불안은 괜찮다"고 했다. 그렇다면 '적당한' 수준을 넘어서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불안 증상은 어떤 것일까?

객관적 기준은 없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몸에 상처를 입히거나 위협이 된다면 정신 건강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불면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거나 가족에게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해 안부를 묻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윤석 정신과 전문의는 "코로나19 이후 병원을 찾은 한 고등학생은 너무 자주 씻어서 손에 피가 날 정도였다. 고체 비누도 못 쓰고, 손을 씻고 난 뒤 수도꼭지도 못 만진다. 샤워를 두 시간씩 하고, 집에서도 스마트폰을 소독 티슈로 닦고 또 닦는다"고 했다.

우울증이나 강박증, 공황장애와 같은 병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에게 이번 코로나 사태가 자극이 되기도 한다. 공황장애가 있는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는 "치료받고 괜찮아졌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공황장애 증세 중 하나가 호흡곤란인데, 마스크를 써야 하다 보니 증세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장창현 정신과 전문의는 "공황장애 과거력이 있는데 코로나19 스트레스가 커진 데다가, 이번 사태로 사업까지 잘 안되면서 증상이 악화된 환자를 봤다"고 했다. 병력이 없더라도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예측,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광민 정신과 전문의는 "불안 증세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락 말락 경계에 있었거나 병적인 불안을 가졌는데 참았던 게 코로나19로 터져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장애나 병리까진 아니지만 가벼운 강박증을 보이는 일반인도 많다. 김윤석 전문의는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옷이나 수건 등을 빨고 또 빨고, 끊임없이 소독약을 뿌리는 강박 행동을 보인다. 만지지 말라고 한 것을 만진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자책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의 행동은 예측과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심민영 국립건강정신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에 따르면 불안을 느끼면 근육이 조이거나 피부가 달아오르는 신체 긴장 반응이 나타난다. 이 반응은 목이 아프고 열이 나는 코로나 증상과 비슷해서 불안감이 더 커지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심 부장은 "불안감, 우울감 때문에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면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상담 전화를 하거나 주의를 전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해보라"며 "전화 상담을 통해 신체의 이상 증세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해도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격리자와 일반인을 위한 전화 상담. 전문의들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만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마음 건강 지침'을 꼭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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