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마스크 재활용하는 전시상황인데.. 박능후 파면해야"

이해인 기자 2020. 3.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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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朴장관의 "마스크 충분, 재고 쌓으려한 것" 발언에 격앙
"의료진에 대한 적대감에 경악.. 무능한 거짓말쟁이" 잇따라 성명
병원들 "필요한 마스크량의 절반도 안들어와.. 겨우 버티는 중"

13일, 서울 5대 병원 중 한 곳의 ○○○과 수술실에 환자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의료진이 사용할 수술용 마스크(서지컬 마스크)가 바닥났다. 의사와 간호사가 이웃 ×××과 수술실에서 부랴부랴 마스크를 빌려왔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료진은 환자 체액과 약품이 묻은 마스크를 조심스레 벗어 개인 물품 보관함에 고이 올려뒀다. 간호사는 "다음 수술에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라며 "오늘 본부에서 당분간 수술용 마스크도 하루에 하나씩만 쓰라는 공지가 내려왔다"고 했다. 의사들은 "전시(戰時)에나 있을 일"이라고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계 마스크 부족에 대해 "본인들이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발언한 바로 그다음 날 벌어진 일이다.

박 장관은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료계 마스크는 부족하지 않다" "자신(의료진)들이 좀 더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질타에는 "현장을 제가 의원님들보다 더 많이 다닌 것 같다"고도 했다. 의료계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장관님, 의료진 현실은 이렇습니다… 보호장구 대신 헤어캡, 마스크 하나로 사흘 - 지난 12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계 보호 장비는 부족하지 않은데, 의료진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발언한 후폭풍이 거세다. 일부에서는 박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13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박 장관의 주장이 의료 현장의 현실과 다르다는 반박 자료를 냈다. 왼쪽 사진은 덧신이 모자라 비닐과 헤어캡을 대신 씌운 모습.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마스크가 부족해 1회 이상 쓴 마스크에 번호를 매겨 걸어두고 재활용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의료용 마스크는 사흘을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의사 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13일 전국의사총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무능한 거짓말쟁이 장관의 즉각적 파면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국민에게 조금도 미안함을 보이지 않는 후안무치함에, 의료진에게 조금의 감사한 마음도 없이 적반하장으로 탓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박능후 장관의 실언은 평소 의료계에 대한 적대감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며 "그저 일선 공무원들로부터 물자가 부족하지 않다는 보고만 받았기에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고는 국회에 가서 적반하장식의 망발을 저지른 것"이라고 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의료진에게 폭언을 던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 마스크 부족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박 장관 발언 하루 전인 11일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권오정 원장 명의 공지문이 내려갔다. 병원 마스크 재고가 이번 주말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에 처함에 따라, 비(非)진료부서 의료인들은 마스크 2~3장으로 1주일을 버티라는 요청이었다. 비슷한 공지는 서울성모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도 내려졌다. 김용식 서울성모병원장은 마스크 부족을 호소하는 같은 병원 송교영 교수의 소셜미디어에 지난 12일 "새로운 배급제로 중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에 (마스크가) 공급이 안 되고 있는데 급기야는 오늘 오후에는 중환자실에 마스크가 없어서 의료진이 일을 못하는 지경이 됐다"며 "마스크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하는 제가 너무 부끄럽다"고 썼다.

이런 상황은 13일에도 계속됐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A 교수는 이날 오전 수술에 들어가면서 수술용 마스크 대신 KF94 마스크를 착용했다. 개인적으로 구한 마스크였다. A 교수는 "병원에서 수술용 마스크가 없다며 얇은 덴털 마스크를 지급해줬다"며 "호흡기를 들여다보는 수술이라 불안해서 마스크를 조금이라도 나은 걸로 바꿨다"고 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이번 주에 대한병원협회에 1만장을 신청했는데 아직까지 한 장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이제 남은 게 고작 이틀치라 주말 안에 마스크가 안 들어오면 다음 주는 수술을 못하거나 마스크 없이 수술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정부는 마스크를 매일 100만장 확보해 대한병원협회(병협)·대한의사협회 등을 통해 병원에 공급하고는 있다. 하지만 본지가 취재한 서울시내 대형·소형 병원 10여곳은 한결같이 "필요한 수준의 절반도 안 들어오고 있다" "아끼고 아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예컨대 한 다른 대학병원은 평소 8만장이었던 재고가 8000장으로 줄었다. 이 병원은 올 초까지 하루 1만2000장씩을 쓰다가 최근 4000장까지 사용량을 떨어뜨린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말이 재고지 원칙대로 쓰면 하루 만에 모두 소진될 분량"이라며 "재고가 바닥나는 순간부터는 매일 마스크가 들어올 때까지 수술과 진료를 중단하고 기다려야 할 판"이라고 했다. 병협 관계자는 "박 장관이 병상 확보 점검차 경북 경산시를 간 적은 있지만 병원 마스크 수급 현황 살핀다고 병원 현장 방문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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