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밥 끊긴 아이들..'배달'을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입력 2020. 3. 14. 06:10 수정 2020. 3. 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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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문 닫은 아동센터, 상자 500개 포장해 취약계층 가정으로..아이들 맘 쓰여, 기꺼이 모인 사람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아이들이 밥먹던 센터는 문을 닫았고, 코로나19 위험에 집 밖에 나오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갔다. 맛있는 걸 배달하러. 다리가 많이 짧게 나왔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이 이리 높았던가. 산등성이 같은 좁다란 언덕길을 오르니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차로 차마 못 닿는 곳을 향하는 발걸음이 분주했다. 입김은 마스크 안에서 뜨겁게 맴돌다가, 코 사이로 삐져나와 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이른 봄, 햇살마저 따사로워 아예 반 팔 티셔츠만 입은 참이었다.

상자 하나를 배달하고 있었다. 꽤 묵직한 걸 오른쪽 어깨에 이고, 왼손엔 물통 한 꾸러미를 손에 쥐었다. 상자 안엔 즉석밥, 참치통조림, 햄 통조림, 삼계탕, 전복죽, 라볶이 등 전자레인지로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식량들이 들어 있었다. 헉헉거리는 와중에도, 행여나 떨구지 않게 보물처럼 꽉 붙잡고 갔다.

"이제 다 왔어요." 동행한 복지관 관계자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자그마한 집 앞엔,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릴 본 할머니는 "하이고, 뭘 또 이렇게 왔노. 좀 뜨신데 빨리 앉아"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들어서니 13살 정훈(가명)이가 꾸벅 인사했다.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눈빛만은 똘똘한 아이였다. 조촐한 두 식구를 위한 상자와 물을 거실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비로소 한숨이 나갔다.

답답하고 힘들고 꽉 막힌 나날들이다. 코로나19란 모진 바이러스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이 깨져버렸다. 방역 현장은 사투하는 이들의 땀이 마를 날이 없고, 가까운 집 밖에 나가기도 두렵다. 시원한 숨조차 마스크에 틀어막혔다. 언제 끝날지 모를 막막한 시간이다.

더 약하고 고된 이들이 있을 거라 여겼다.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정형편이 더 나빠, 더 섬세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아니나 다를까.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던 많은 복지관이 문을 잠시 닫았단다. 대체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직접 만나러 가기로 했다. 마침 부산 동구에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회복지관서 '한끼박스'를 배달한다 했다. 취약계층 아동들을 위한 긴급 지원 물품들이다. 그걸 포장하고 배달한다기에 가겠다고 했다. 문선종 어린이재단 대리가 도움을 주고, 동행해줬다(감사).

부모 없는 집에서, '라면' 때우는 아이들

부산 동구청 광장에 모인 자원봉사자, 아동센터 관계자들.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이들 끼니가 걱정돼, 코로나19 걱정도 뒤로 미룬 이들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취약계층 아이들 사정은 이랬다.

바이러스 위험 때문에 집 안에 갇혔다. 통상 점심, 저녁 등은 복지관이나 아동센터서 해결했는데, 문을 닫으니 그마저 어렵게 됐다. 그러니 대부분 라면 등으로 때운다고 했다. 생계가 어렵고, 부모가 일하러 나가면 아이들끼리만 있어서다. 애써 불을 다루느라 위험한 상황도 생긴단다. 이게 길어지면, 영양 결핍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수입은 줄고, 식비 부담은 늘어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이 더 열악해졌다.

그러니 긴급 지원이 필요했다. 급한 대로 물품을 이들에게 배달하는 것이다. 아이들 500명을 위한, 상자 500개를 포장키로 했다.

이를 위해 13일 오전, KTX를 타고 부산역으로 갔다. 오후 1시부터 부산 동구청 광장서 시작한다고 했다. 카페에서 기다리던 문 대리와 만났다.

상자에 들어갈 물품엔 먹거리, 놀거리, 코로나19 예방제품 등이 다 포함됐다. 필요한 게 뭔지 미리 의견을 다 들었단다. 그렇게 라면(생면), 햇반, 참치, 햄, 카레, 짜장, 컵밥, 미역국, 삼계탕, 미트볼, 라볶이, 빵, 손세정제, 손소독제, 생수, 영양제, 장난감, AI스피커 등이 마련됐다. 즉석식품이 많은 이유는, 아이들 홀로 끼니를 해결하도록 배려한 거였다.

코로나 두려워도, 기꺼이 모인 이들
박스 포장 전에, 손에 손을 올리고, 파이팅. 발처럼 보이는 게 본인 손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12시50분, 드넓은 동구청 광장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기꺼이 달려온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이었다.

마스크는 다들 쓰고 있었다. 위험하단 것쯤은 잘 안다. 바깥에 인적이 드물고, 몇몇이 모이는 것도 피하는 요즘이다. 이들이라고 두려움이 왜 없었을까. 그런데 왜 왔을까. 한 아동센터장은 "아이들이 밥을 못 먹으러 오니, 걱정돼 배달이라도 하자고 한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위험 마저 앞선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뉴스에 나오는 거냐"며 웃었다. 반쯤 드러난 얼굴에 햇살이 드리웠다. 그 모습이 참 고왔다.

큰 상자 하나에, 테이블마다 맡은 물품을 넣기 시작했다. 난 3조에 배치됐다. 면장갑을 끼고, 조끼를 입었다. 우리 조의 한 봉사자가 "시작하기 전에 파이팅 한 번 하자"고 했다. 손 위에 손을, 그 위에 또 다른 손이 포개졌다. 장갑을 꼈음에도 온기가 전해져 왔다.

팀웍이 척척 맞았던, 에이스 3조 조원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무려 삼계탕(8000원 상당)을 넣고, 오른쪽 테이블로 상자를 옮기는 거였다. 몸보신에 가장 중요한 음식 아닌가. 하나씩 고이 집어, 꾹꾹 잘 담았다. 다음 물품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눈치껏 잘 마련해둬야 했다. 그리고 옆 테이블로 건네면, 햄 통조림과 빵을 담았다.

40분이 지나 포장이 다 끝났다. 상자 500개가 켜켜이 쌓였다. 손길이 이어지며 담긴 건 물품뿐만은 아녔다. 서로 "고생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한 아동센터장은 "처음엔 자원 봉사자도 구하기 어려울 줄 알았다"며 소감을 얘기했다. 이어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얘기도 했다. 단톡방서 "맛있는 것과 재밌는 장난감을 보내줄게" 했더니, 예쁜 이모티콘을 남겼다고.

13살 유빈이가, 춤추게 해주는 음악
배달하는 남기자.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패션은 더위를 많이 타는 탓이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포장한 상자와 물을 들고, 다섯 가정에 직접 배달하기로 했다. 문선종 어린이재단 대리와 한복희 부산사회복지관 대리가 동행했고, 또 다른 복지관 관계자가 운전을 해줬다. 차 안에서 아이들이 처한 사정이 어떤지, 미리 읽어뒀었다.

유빈(가명, 13세)이네로 먼저 향했다. 아버지는 70세가 넘는 고령이란다. 유빈이네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했으나 사기를 당했고, 부채가 많이 생겼다. 오래 떠돌고 또 떠돌다 현재 사는 곳으로 온 지 5년째다. 정부 보조금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라,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오른 뒤 주차했다. 그러고도 도보로 더 올라야 하는 높은 곳이었다. 더울 것 같아 코트를 아예 벗고, 반 팔 티셔츠만 입었다. 그리고 내려 상자와 물 꾸러미를 하나씩 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갔다. 어디선가 강아지가 우렁차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전체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곳, 거기가 유빈이 집이었다.

착하게 생긴 아이였다. 가족들과도 인사를 했다. 상자를 열었다. 안에 담긴 많은 것들이 빛을 봤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세 끼를 다 해결하려니, 부담이 컸었다고. 이게 많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상자가 열렸다. 아침부터 모은 정성들이 가득 담겼다./사진=남형도 기자


유빈이는 눈길이 다른 데 갔다. "우와아" 탄성을 지르더니, AI 스피커에 관심을 가졌다. 거기에 달린 인형을 보곤 "오, 예쁘다"고 했다. 그러더니 BTS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춤추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요즘엔 집에만 있어서 잘 못 춘다"며 울상이었다. 친구들과 못 놀아 답답하단다. 빨리 학교에 가서 재밌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영락없는 13살 아이였다.

거실 한편에 놓인 상자를 내려다봤다. 어렵고 힘드니, 굶주림을 해결해줄 식량이라 단순히 여겼었다. 그런데 와보니 그게 아녔다.

유빈이를 춤추게 해줄 '음악'이랄까. 아이가 웃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달한 걸 좋아하는, 11살 예비 통역사
선물은 박박 마구 뜯는 게 제 맛./사진=남형도 기자

유빈이네를 나와 여진(가명, 11살)이네로 향했다. 아파트라 해서 좀 나을까 싶었는데 웬걸.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이었다. 상자 3개와 물 3개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여러 발걸음이 뚜벅뚜벅, 아파트 안에 진하게 울려 퍼졌다. 숨을 헐떡거리며 여진이네 집 앞에 왔다. 운동 좀 많이 해둘걸.

여진이 어머니는 키르기스스탄 출신이다. 한국에 온 뒤 지인 소개로 결혼했다. 그의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시고,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고국으로 갔다가, 3년 후 나아졌을 거란 희망을 품고 한국에 돌아왔다. 여전히 심했고, 달라진 건 없었다. 끝내 남편과 이혼했다. 하지만 재산 분할도, 양육비 지원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일해 버는 돈으로 아이 셋까지 네 식구가 어렵게 살고 있다고 했다.

여진이네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여진이 오빠 둘은 모습을 감췄다. 사춘기라니 오죽할까,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내려놓은 상자를 여니 여진이가 신이 났다. 아이에게 "뭐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달콤하고 달달한 음식이 좋다"며 씨익 웃어 보였다.

여진이의 꿈 얘기가 나왔다. '동시 통역사'라고 했다. 어떻게 가진 꿈이냐 물었더니, 기특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국 나가잖아요. 그럼 아무것도 모르니까 무섭지 않을까요. 도움받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기특한 맘에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까지 섭렵하겠단 당찬 포부였다.

코로나19 시국이 끝나면 뭐 하겠냐는 물음에, 여진이는 이렇게 답했다. "밖에 나가서 엄청 크게 숨 쉬고 싶어요." 다음엔 상자에 뭐가 들어 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설탕이 묻혀져 있는 젤리"라고 했다. 여진이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세게 말할까봐 걱정했다"고 했다.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집안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다. 팝송 'Love me like you do(당신이 하는 것처럼 날 사랑해주세요)'였다. 묘하게 해외 어느 거리가 떠올랐다. 여진이가 멋지게 영어를 하는 모습도 함께.

13살 정훈이의 우렁찬 '트럼본 소리'
손재주가 많은 정훈이가 만든 색종이 로봇들. 어린시절 영웅이란, 정의를 지켜 싸웠고, 비겁하지 않고 용감했던 것 같다./사진=남형도 기자

정훈이(가명, 13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왔다. 부부는 정훈이가 7개월 됐을 때 이혼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방황으로 집을 나가 버렸다. 할머니는 고된 일을 다 했었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초생활 수급비 50만원에 기대어 산다. 여기서 월세 10만원을 내고, 4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단다. 빠듯한 삶이다.

세상을 빨리 알았을까. 아이는 참 점잖았다. 마주한 첫인상이 그랬다. 그 나이답지 않게 과묵했고, 차분했다. 실제 성격도 그렇단다. 평소 아이들이 짓궂게 대해도, 그냥 피해버리고 만단다. 속상한 의젓함이랄까. 할머니 맘도 그랬다. 그래서 정훈이에게 "한 대, 두 대까진 참아도 세 대부턴 참지 말라꼬 한다"고 일렀단다.

좋아하는 게 많을 나이인데, 생전 "할매, 돈 주세요" 소리 한 번 안 했단다. 주변 어른들이 용돈을 주면, 안 쓰고 할머니에게 갖다줬단다. 그나마 2년 전부터는 고기 먹고 싶단 얘기를 한단다. 비싼 건 안 되고, 아주 가끔 1만원짜리 치킨 정도가 사치다. 그마저도 할머니가 "돈 없어서 안 돼"하면 이렇게 말한단다. "할매, 안 먹어도 괜찮아요." 그럼 할머니 마음이 더 쓰리단다.

좋아하는 건 종이접기다. 정훈이 책상 위엔 색종이로 정교하게 만든 로봇이 있었다. 참 잘 만들었다. 이거 얼마만에 만들었냐 물으니 "2시간 정도면 돼요"란다. 정훈이 할머니의 손주 자랑이 이어진다. 그림도 잘 그리고, 태권도도 검은 띠에, 최근엔 성적 우수상까지 받았다고. 그러다 할머니는 또 속상해졌다. "집에 엄마, 아빠 있으면서 가르쳐주고 하면 어디가서 안 빠질 것 아이가. 답답타 내 마음이."

정훈이가 잘하는 게 참 많기에, 뭐가 가장 좋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트럼본이 재밌다"며 "그 소리가 정말 좋다"고 했다.

아마 '꾸우우웅, 꾸웅, 꿍'하는 소리였던가. 아이는 얼마나 시원스레 연주를 잘할까, 가만히 상상해봤다. 여러모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경쾌하고 웅장한 음악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10살 다혜에게, "디저트 카페 놀러갈게"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던 것 같다. 내가 잘 몰랐고 조금은 무관심했던 누군가의 삶./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네 번째 배달할 곳은 다혜(가명, 10살)네 집이었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주택 하나가 나왔다. 어머니가 반겼고, 다혜가 인사했다. 아이는 학교를 못가는 대신, 컴퓨터로 숙제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 대리가 "거실이 깔끔해졌다"고 하기에 사연을 물었더니, 지난해까진 곰팡이가 많아 수리비를 지원해 새로 도배를 했단다.

다혜는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고, 술을 먹으면 가정폭력이 심했다. 갈등이 심해지다 흉기까지 휘둘렀는데, 그 현장에 아이가 있었다. 부부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파트 타임으로 일한단다.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일거리가 끊겼다.

배달한 상자를 열다, 삼계탕을 본 다혜가 "나 삼계탕은 싫어해!"라고 했다(내가 포장한 건데, 울먹울먹). 그러자 다혜 어머니가 "할머니한테 필요한 거네"라고 했다(방긋방긋).

다혜는 요리를 좋아해서, 꿈이 디저트 카페를 여는 거란다. 아이에게 자신 있는 요리가 뭔지 물었더니, "딸기에 초콜릿을 묻혀서 만드는 게 자신 있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해서, 나중에 디저트 카페에 그림을 걸어놓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 얘길 다 자랑스레 하니, 다혜는 "내가 언제 그랬어!"하며 쑥스러워했다.

꿈 많은 딸래미는, 대뜸 "엄마는 꿈이 뭐였어?"라고 물었다. 다혜 어머니는 "하하, 지금은 기억도 안 나네. 엄마는 꿈이 많았지"라고 했다. 그러니 다혜가 또 "근데 꿈이 다 사라졌어?"하고 또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꿈대로 다 이뤄지진 않지"라고 했다. 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그 자리에 있던 어른이들만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래, 다 안다는 듯이.

다혜네 집을 나오며 난 이렇게 말했다. "다혜야, 나중에 디저트 카페에 꼭 놀러갈게." 그러자 다혜는 이렇게 답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봐요!"

6살 지애가 말했다, "다 큰 여자가 왜 울어?"
지애는 엄마가 우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도, 계속 살피는 걸 봤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상자 하나가 남았다. 이제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지애(가명, 6살)네 집으로 향했다. 기나긴 계단을 내려간 뒤, 그 절반만큼의 계단을 다시 올랐던 것 같다. 아침부터 계속된 강행군 때문인지, 배달하며 들은 많은 삶의 무게 때문인지, 다들 말수가 많이 줄었다. 하루 내내 버텨준 마스크도, 연이어 내뱉은 입김에 제법 축축해졌다.

지애와 어머니, 두 식구였다. 어머니는 두 번 이혼했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함께 찾아왔다. 아버지는 심지어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소득이 있단 이유로, 지애와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도 두 번이나 탈락했다. 계약직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어린 딸과 생계를 이어간다고 했다.

그러니 지애 어머니에게, 배달된 상자 하나는 단순한 물품이 아녔던 것 같다. 그걸 계기로 그간 참아냈던 날들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코로나 19 때문에 더 가혹한 날들이라 했다.

어머니는 "2월, 3월에 예식이 18개였는데, 1개 빼고 다 취소됐다"고 했다. 16년 동안 일하며 메르스, 사스 다 겪었지만, 이렇게 심한 건 처음이란다. 수입은 없고, 나갈 비용은 나아진 게 없단다. 월세 20만원에, 관리비 3만원이 밀렸다. 주인에겐 독촉하는 문자가 왔다.

아이 마스크도 너무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약국 6군데를 돌아도 못 구했단다. 온라인서 사려고 했더니, 10분 만에 다 취소가 뜬다고 했다. 지애 어머니는 "나 혼자면 걸려도 상관 없는데, 그게 아니니까"하며 아이를 보고 울먹였다. 그걸 본 지애가 이렇게 말했다. "다 큰 여자애가 왜 울어." 어머니는 지애를 안고 "엄마가 미안해, 안 울게"하고 토닥였다.

요즘 어머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버티자"다. 오로지 버티자,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이런 얘기란다. 집을 나올 때, 어머니가 옥수수 두 봉지를 건넸다. 입에도 안 댄 옥수수를 보며, 옆에서 내게 장난치는 지애를 보며, 괜스레 목이 메었다.

집안에 갇혀 있던 이야기를 꺼내며
배달하는 도중 찍은 햇살. 좁고 높은 골목길에도 햇살은 똑같이 드리웠다./사진=남형도 기자

저녁이 될 무렵, 다섯 가정에 상자 배달이 모두 끝났다.

실은 코로나19로 집안에 꼭 갇혀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고 싶었다. 우리가 잘 몰랐지만, 누군가는 이리 지내고 있다고. 그걸 기록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듣고 나니, 그게 꽤 무거웠다. 녹초가 된 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차마 편히 졸지도 못했다. 수많은 상념과 장면들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생계에 필요한 식량을 전해줬단 자그마한 기쁨보다, 그들이 견디게 될 앞날에 더 맘이 쓰였다. 무엇이 필요할까, 뭐라고 쓰면 좋을까, 아이들의 소박한 꿈은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 기차 창밖으로 무수히 스치는 어둠에, 여기가 어딘지 짐작하기 힘든 막막함에, 오늘 내가 마주한 이야기들의 결론을 어찌 마무리해야 할지 몰랐다.

함께 박스를 포장한 3조 사람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에 도착할 무렵, 오늘 함께한 이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통조림을 넣었고, 누군가는 상자에 테이프를 붙였고, 또 누군가는 운전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들고 땀을 흘리며 날랐다. 감염 위험에 생계까지 곤란해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갈 준비가 돼 있었다. 얼굴은 하루 내내 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아름다움을 알기엔 충분했다.

힘든 이들이 있고, 그걸 생각하고 마음 쓰는 이들도 있다. 수많은 위기를 맞으며 살지만, 매번 이겨낼 수 있는 건 그런 마음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러니 고운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무언가 할 게 없나 고민해주고, 그게 아니라면 묵묵히 응원해줄 것을. 그러다 보면 이 또한 잘 지나갈 거라고.


에필로그(epilogue).여진이네 집에서 이렇게 물었었다.

"혹시 기자 아저씨한테 궁금한 것 없어?" (나)
"아,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여진)
"뭔데?(기대)"(나)
"겉옷은 입고 오셨어요?"(여진)

다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배달하느라 더워서 코트를 벗었었다. 반 팔 티셔츠만 입고 갔는데 아이가 보기엔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어른들이 웃거나 말거나, 여진이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낮엔 재밌었던 그 일이, 밤에 자기 전 다시 떠올리니 참 따뜻했다. 내가 바깥에 나갔을 때 추울까봐, 아이가 걱정스레 바라본 눈망울이,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뒤늦게 여진이에게 답하고 싶다. 아직 차가운 초봄에도 그리 더웠던 건,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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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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