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검사실은 전쟁터"..쪽잠 자며 53일째 24시간 비상근무

허단비 기자 2020. 3. 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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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보건환경연구원 연구진 "입에서 쓴내가 난다"
3인 1조 4개팀..누적 검사량 2600여건 진행
29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사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2020.8.29/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어떨 때는 입에서 쓴 내가 납니다. 음압실험실을 나오면 머리가 멍하고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24시간 비상 근무체제에 돌입한 지 53일째인 14일, 광주 서구 화정동에 있는 보건환경연구원 감염병 실험실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지하 1층에 있는 실험실에는 3인 1조로 4개 팀 12명의 연구진이 매일 비상 근무를 한다. 하얀 연구복을 입고 채취 시약을 옮기는 연구진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얼굴엔 피곤함이 잔뜩 쌓였다.

생물안전 2등급 밀폐실험실(BL-2, Biosafety Laboratory-2) 앞 접수대에서 만난 정재근 감염병연구부장은 "오늘 24시간 근무했다고 내일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긴 그야말로 전쟁터다. 전쟁이 났는데 주 52시간 지키는 곳이 어디 있나. 연구진들은 매일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1조가 하루에 담당하는 검체 수는 50~60개 남짓. 1조가 24시간을 책임져야 하지만 검체 수가 100건이 넘어가면 2개 조가 투입된다.

그렇게 1조가 24시간을 근무하고 나면 연구진들은 새벽 2시이든 동이 튼 오전 7시든 파김치가 돼 퇴근한다. 그마저도 연구실 한 켠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기도 한다.

연구진들은 24시간 근무 후 오전에 잠을 자고 다시 오후에 출근하는 일상을 53일째 반복하고 있다.

14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정재근 감염병연구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2020.3.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일반인들에게는 통상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6시간 만에 나온다'고 알려졌지만 현실은 매우 달랐다. 과정도 복잡했다.

BL-3에서 바이러스 병원성을 잃도록 하는 불활성화 작업을 진행한 후 불활성화된 검체를 4층으로 옮겨 유전자를 추출한다. 추출된 유전자를 '양성'과 '음성'을 판명할 수 있는 유전자 증폭검사 기계에 넣어 작업을 진행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유전자 추출, 균질화 작업에서 시약을 섞는 작업 등 연구진들의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수작업이기 때문에 상당한 노동력이 요구된다.

정 부장은 "사람들은 연구진을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로 보지만 실상은 '블루칼라(임금노동자)'도 아닌 '블랙칼라'다"라며 "그만큼 코로나19에 맞서 강도 높은 노동을 매일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코로나19처럼 실험 방법이 예민한 검사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검체를 기계에 넣어 '1은 1이다'라는 작업을 거치는 게 아니라 매일 의료진들이 정밀한 실험을 진행한다"며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매일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실험을 하고 있다.

병원체 유출 방지를 위해 음압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BL-3는 고산지대보다 압력이 낮아 한 시간 이상 머무를 때 몸에 이상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어갔던 BL-3를 이제 매일 6~7시간씩 들어간다. 그렇지 않고서는 코로나19 검사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에서 쓴 내가 나고, 머리가 멍해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24시간 비상 근무체제를 유지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했다.

정 부장은 "한 명이라도 교대근무에서 이탈하면 다른 연구진들에게 고스란히 그 몫이 돌아가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며 "아직까지 누구 하나 아프지 않고 잘 버텨준 것이 천운"이라고 말했다.

14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 생물안전밀폐실험실 앞.2020.3.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연구진 12명이 지난 1월22일부터 진행한 코로나19 검사는 2600여건이다.

광주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던 2월 첫째주에만 224건의 코로나19 검사를 진행됐다.

추가 확진자가 없던 둘째주는 112건으로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난달 20일 신천지 추가 확진자가 나오자 셋째주 검사량이 367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신천지 관련 확진자, 접촉자가 늘면서 의료진들은 밤낮으로 교대근무를 하며 2월 마지막주에는 425건, 3월 첫째주 738건, 3월 둘째주 712건의 검사량을 소화했다.

온종일 코로나19 검사에 매진하지만, 이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코로나19 외에도 많다. 밤을 새우고 출근해 자신의 업무를 또 처리해야 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AI 같은 법정 감염병이 시국을 살펴 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가 인력 보충도 쉽지 않다. 인력 부족에 허덕이더라도 관련 전공자이면서 5년 이상의 경력자만이 정밀한 실험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부장은 열악한 상황이지만 "광주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지난 2017년 메르스 유행 이후 감염병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다. 2017년 이전에는 법정 감염병에 대처하고 24시간 비상 근무를 할 전문 인력이 갖춰지지 않았다.

정 부장은 "아직도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울산, 대구, 충남, 충북 등 8개 지역은 감염병연구부가 없다. 감염병 전문인력이 질병조사과, 보건연구과 등으로 이곳저곳 부서이동을 하며 전문적인 부서 환경이 조성되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르스를 통해 전문 인력을 육성하도록 환경을 조성한 것처럼 코로나19를 통해 전국에 법정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진자 한 명의 걸음걸이에 따라 PC방 업주, 식당 주인은 눈물을 훔쳐야 하고 보건소 직원과 각 지자체 공무원, 그리고 보건환경연구원 직원들은 가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일에 매진해야 한다.

정재근 연구부장은 "확진자들이 어디를 갔느냐에 따라 접촉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강도 높은 일을 소화하는 모든 이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14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한 연구진이 음압실험실로 들어가고 있다.2020.3.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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