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예산 감축한 유럽,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메랑'

김향미 기자 2020. 3. 1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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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이탈리아, 투자 대폭 줄여 의료진·병상 수 부족해 위기 자초
ㆍ스페인, 의료인력 해외 유출 이어져 ‘열악’…프랑스도 취약
ㆍ미국선 2008년 이래 공공 인력 4분의 1 줄어 “더 심각” 지적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약국 직원이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고객 상담창구에 투명 아크릴판을 세우고 있다. 로마 | EPA연합뉴스

코로나19가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되면서 ‘공공의료의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곤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서 의료서비스 질이 현저히 나빠진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서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도 공공의료시스템 위축이 부각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가 집중 발생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에선 일부 병원들이 고령환자에 대한 치료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료윤리 논쟁’까지 벌어졌다. 중환자실과 병상, 인공호흡기 등 의료시설·장비가 모자란 데다 의료진도 부족해 일부 병원이 환자의 건강상태, 나이 등을 고려한 ‘선별 치료’에 나섰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끔찍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로나19 확진자는 전날 대비 3497명 늘어 2만1157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도 1441명에 달한다.

특히 공공의료시스템의 위기가 코로나19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1978년 국민건강서비스를 도입한 이탈리아는 전 국민은 물론 외국인 체류자들도 공공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의료비의 77%가 공공의료에 쓰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공공의료 투자를 줄이면서 의료서비스 질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실제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탈리아 1인당 의료예산은 2008년 3490달러였다가 2016년엔 2739달러로 떨어졌다. 이탈리아에선 최근 5년간 의료기관 758곳이 문을 닫았으며 의사 약 5만6000명, 간호사 약 5만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고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지난 5일 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조사를 보면 이탈리아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3.2개로 최상위인 일본(13.1개), 한국(12.3개)보다는 현저히 적고, 독일(8.0개), 오스트리아(7.4개), 프랑스(6.0개) 등 유럽 이웃국가들에도 못 미친다.

결국 의료시설과 인력은 제한적인데, 아주 짧은 시간에 환자가 폭증하자 기존 의료시스템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5일 현재 감염자가 7753명이 나온 스페인은 전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적인 이동제한 조치를 취했다. 스페인도 공공의료시스템이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3.0개, 1인당 의료예산은 2390달러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의료예산 삭감은 의료인력 해외 유출로 이어졌다. 스페인에선 2012년 약 2400명의 의사가 해외 취업을 희망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4500명에 육박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공공의료 위축이 두드러진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08~2009년에만 약 2만6000개의 병상이 줄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2012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줄어 총 1만7500개의 병상이 더 사라졌다. 시장주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5월 집권한 후 이런 흐름이 가속화됐던 터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전국 병원들을 코로나19 환자, 취약층 치료를 위한 체제로 정비하기로 했다”며 “치료 전망, 소득, 직업 등과 같은 어떤 조건 없는 무상의료는 부담이나 비용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탈리아 공공의료서비스의 위기가 세계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총리를 지낸 로마노 프로디 전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은 “이탈리아의 위기는 유럽에 이어 곧 미국의 문제가 됐다. 미국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에선 2008년 이래 공공보건 인력 중 4분의 1이 줄어들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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