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에서 끝내야 한다'..음압병상 간호사의 '그림일기'

박채영 기자 2020. 3.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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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간호사 이야기 - 가천대 길병원 오영준 간호사

‘그림 그리는 간호사’ 오영준씨(34)는 인천 가천대 길병원에서 일하는 8년 차 간호사다. 미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간호사가 된 그는 2015년 부터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사 이야기’에 자신과 동료들이 의료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그림일기 형태로 올리고 있다.

내과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오씨는 최근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에 투입됐다. 바쁜 중에도 옛 전공을 살려 코로나19와 싸우는 동료들의 모습을 그린다. 레벨D 방호복과 두 겹의 장갑을 낀 채 주사를 놓으려고 낑낑대는 모습, 중증 환자에게 체외막산소요법(ECMO) 처리를 하고 침대 옆에서 지켜보는 모습, 격리병동에서 나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는 모습.

오씨가 그린 ‘간호사 이야기’는 일반인뿐 아니라 간호사와 의사들도 많이 본다. 오씨가 요즘 올린 그림에는 ‘최전방에서 수고가 많다’는 응원 메시지도 있지만, ‘장갑끼고 정맥 찾기 정말 힘들다’ ‘환자가 몸부림 칠 때의 그 두려움은 말로 설명 못한다’며 공감을 표하는 동료 의료진의 댓글도 달린다. 비슷하게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그림을 보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서로 위로를 받고 간다.

방호복 입고 정맥주사…평소 2~3배 걸려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할 때마다 입어야하는 레벨D 방호복은 통풍이 전혀 안된다. 얼굴을 꽉 조이는 마스크는 숨이 차게 한다. 여간 집중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장갑을 두 겹이나 끼고 일하다보면 8년차 간호사에게는 ‘(바늘을) 던지기만 하면 (혈관이) 잡힌다는’ 정맥주사도 시간이 두세배 걸린다.

오씨가 신종 감염병 현장에 투입된 것은 2015년 메르스 이후로 두 번째다. 그때도 지금도 모두 자원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더 높고 의료진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던만큼 두려움이 더 컸다. 오씨는 그래도 같이 사는 가족이 없어 옮길 위험도 적은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공포에도 면역이 생겼는지 코로나19는 그때만큼 무섭지는 않다.

격리병동 안 의료진, 전할 말은 유리창에…

여전히 힘든 건 ‘내 선에서 끝내야한다는 압박감’이다. 원래 근무하던 중환자실은 열린 공간이라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의료진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격리병동은 다른 의료진이 머무는 스테이션과 분리돼 있다. 격리병동에 들어기 전 방호복을 갖춰 입는데만 10분가량이 걸린다. 분초를 다투어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에게는 1초가 아깝다. 도움을 요청해도 받을 수 없어 힘들다.

격리병동 안에서 밖에 있는 동료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유리창에 글을 쓴다. 밖에서 알아보기 편하게 좌우 반전된 ‘미러 이미지’로 글을 쓴다. 오씨가 페이스북에 그림을 올리자 ‘우리는 화이트보드를 쓴다’, ‘우리는 영상통화를 설치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오씨는 “댓글을 보면서 다들 똑같구나, 비슷한 고민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댓글을 읽으면서 나도 힐링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구서 온 중증환자들 보며 고향 생각

오씨가 근무하는 국가지정 읍압격리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은 대부분 병상이 부족한 대구에서 전원된 중증 환자들이다. 대구는 오씨의 고향이다. 환자들 주소지를 보면 부모님이 계신 본가와 지척인 곳이라 ‘한두다리 건너면 아시는 분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고향인 대구에서 더 힘든 상황에서 더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을 의료진에게는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코로나19 확진자 중에는 상태가 좋지 않아 체외막산소요법(ECMO·에크모)를 시행해야하는 환자도 있었다. 에크모는 인공 심폐장치로 환자의 폐와 심장에 문제가 생겨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제대로 안 될 경우, 환자의 몸 밖으로 빼낸 혈액에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넣어준다. 오씨는 “매일 폐사진을 찍어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그 결과에 따라 하루하루 희비가 갈린다”며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있는 날은 교대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환자의 무리한 요구엔…힘드네요

‘백의의 전사’도 사람인지라 무리한 요구를 하는 환자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화가 난다. 오씨가 그린 그림 중에는 병실에 격리되어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환자가 핸드폰 충전기, 샴푸, 클렌징폼 등 생필품을 계속 요구해 마음이 상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너무하기도 하지만 격리된 환자가 느낄 심적 부담감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은거겠죠?”라고 말했다.

방호복 벗으면 샤워가 필수…연락 오면 바로 병실로

격리병동에 레벨D 방호복을 입고 한 번 들어가면 보통 2~3시간을 그 안에서 보낸다. 환자 상태가 안좋으면 4~5시간까지 길어지기도 한다. 진료가 끝나면 방호복을 벗고 꼭 샤워를 한다. 방호복을 꽁꽁 싸매입어도 빠져나온 머리카락이나 마스크와 고글이 가려주지 못한 뺨 주변은 걸러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호복을 벗다가 무심코 방호복 겉면에 몸이 닿아 감염될 수도 있다. 3교대 근무를 하는 중에 하루에 2~3번은 샤워를 하게되는데 이쯤되면 샤워하는 것도 일이다. 축 쳐지는 기분이 들지만 일회용 타월이나 시트로 머리를 감싸올린 채 전산업무를 본다. 때로는 샤워를 한 보람도 없이 다시 방호복을 입고 병실로 뛰어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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