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편지]코로나19 팬데믹, 이종욱 총장이 있었다면..

이성주 2020. 3. 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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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Alchetron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를 흔들고 있습니다.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13일 "유럽이 코로나 팬데믹의 진앙(epicenter)이 됐다"고 말한 것처럼, 서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브러여수스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중국을 옹호하면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에 미적거린 과오 때문에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는 사무총장 취임 초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베를 WHO 친선대사로 임명하려고 했고 뜬금없이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나서 WHO의 정치논란을 자초하더니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크루즈선 감염자들의 국적을 일본이 아닌 '기타'로 분류했고, 치사율을 경솔하게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이종욱 박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2006년 5월 WHO의 이종욱 사무총장이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 박사의 뒤를 이은 마거릿 챈과 거브러여수스 모두 중국의 후원에 따라 WHO 사무총장에 올랐지만, 오십보백보라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 총장의 장례식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헌사를 보면, 이 총장의 부재가 더욱 더 안타깝습니다.

"이 박사는 결핵, 에이즈와 싸우는 것에서부터 소아마비를 박멸한 것에까지 수백만 명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피로를 모른 채 일해 왔습니다.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위기를 포함해서 국제사회가 21세기의 위기와 맞서는데 엄청난 리더십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리더와 기관들은 공중보건의 위기가 잠재적으로 얼마나 파괴적인지 알게 됐습니다."

이 박사는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돕다가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자원봉사자 레이코 여사와 결혼합니다. 부인과 함께 사모아의 린든 존슨 병원에서 환자를 정성껏 돌봐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렸습니다.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처 한센병 자문관에 위촉돼 WHO와 인연을 맺고, 나중에 WHO 본부로 들어가서 기적 같은 업적을 내다가 사무총장에 오릅니다.

그는 세계의 리더들로부터 '행동하는 사람(Man of Action)'으로 불렸습니다. 2003년 사무총장이 되고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보급하겠다는 '3 by 5 계획'을 발표하자 주위에서는 목표를 못달성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주위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밀어붙입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럴 듯한 핑계가 생기지. 시작하기도 전에 고민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 해. 옳은 일만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란 걸 명심하라고."

결국 300만 명에는 못 미치지만 100만명을 치료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둡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TV에 자주 등장하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이 총장의 전기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해야 해. 돈이 없어서 전문 인력이 부족해서, 같이 일할 지원 인력이 필요해서,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렸다가…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 핑계를 대면 한이 없거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일단 시작해야 해."

이 박사가 이런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꿈이 명확했고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일 겁니다. 페루 리마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부인, 레이코 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비가 올 때면 어디엔가 태양이 떠 있다며 그것을 찾으러 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따라가다 보면 태양이 보였지요. 그걸 보면서 어린이마냥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고 이를 이루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박사는 WHO 사무총장 취임식 때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 정신을 잊은듯한 WHO의 후임 사무총장들을 보면서 이 박사의 부재가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위기에서는….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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