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미오픽] '텔레그램 N번방' 최초 신고자는 텔레그램을 지울 수 없다

정민경 기자 입력 2020. 3. 18. 15:41 수정 2020. 9. 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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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실태 알리려 한 달 동안 집중 취재한 2인의 대학생 기자 '추적단 불꽃'…실태 알린 후에도 취재는 계속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지난해부터 각종 언론에 보도되며 논란이 됐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을 이용해 불법 촬영물 등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지난 10일부터 국민일보는 4회에 걸쳐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등 기사로 이 문제를 다시 보도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텔레그램 N번방 보도 후 후속 취재 중이다. 17일에는 핵심인물 '박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먼저 알렸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가장 먼저 취재하고 기사 형태로 공개한 이들은 '추적단 불꽃'이다. 대학생 2명으로 구성된 취재팀으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최초 취재자이자 최초 신고자다. '추적단 불꽃'의 대학생 A씨와 B씨는 지난해 7월 텔레그램 N번방 취재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취재한 결과물을 뉴스통신진흥회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시상식'에 출품해 최고상인 우수상을 받았다. 이들 기사는 지난해 9월2일 공개됐다.

'추적단 불꽃'의 기사에선 텔레그램 N번방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 텔레그램에서 성희롱 대화는 물론이고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미성년자들의 나체 사진 등을 직접 제작하고 공유했다. 지인 사진에 음란 사진을 합성해 유포하는 일명 '지인 능욕'을 하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촬영물들을 만들기 위해 미성년자들에게 협박을 일삼았다. '취재단 불꽃'은 다양한 언론사에 자신들의 취재자료를 아낌없이 공유해왔다. 그 결과 사건의 핵심인물 검거까지 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7일 '추적단 불꽃'의 두 대학생 기자를 만났다.

▲17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에서 '추적단 불꽃'을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들은 어떻게 '텔레그램 N번방'을 알게 됐을까. A씨와 B씨는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지난해,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보도 공모전 공지를 보고 텔레그램 N번방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A씨는 "취재 아이템을 디지털 성범죄로 잡은 후 취재하던 도중 한 AV사이트에서 텔레그램 링크를 발견했다"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접수를 하고 증거수집을 하면서 계속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취재 이후 언론보도가 시작됐고 국민 청원 등에서도 폭발적 반응이 나왔다. A씨는 "뿌듯함은 있지만 국회에서 발의된 '딥페이크 방지법'(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를 AI기술을 이용해 합성해 이미지를 만드는 디지털 성범죄)같은 경우 아쉬웠다. 딥페이크 방지법은 텔레그램 N번방에서 파생된 문제의 아주 작은 문제 중 하나일 뿐"이라며 "제대로 이 사건을 파악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반향과 함께 일부 가해자 검거 등 결과를 끌어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끼는 이유다.

지난해 쓴 기사들에 아쉬움도 있어 후속 취재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B씨는 "작년 기사에서 헤드라인에 '음란물'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성착취물'이라고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쓴 기사지만 헤드라인이 아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언론에서 보도할 때 헤드라인이나 내용을 자극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에서 피해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자극적으로 보이게 해 조회 수를 높이려는 의도가 보일 때가 있다. '음란물', '변태', '일탈'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인데 보도할 때 단어 선정에 더 고심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후속 기사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도 담을 계획이다.

피해 사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면 기사가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에서 단어 선정까지 유의해야 하는 어려움은 딜레마다. B씨는 "텔레그램 N번방 관련 보도 이후 2차 피해를 유발한다거나 '기자가 텔레그램 N번방을 홍보하는 거 아니냐'라는 피드백도 있었다. 열심히 취재했다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반응"이라며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해결방안과 보도 이후 처벌 과정 등을 풍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 취재를 시작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텔레그램 방들을 지우지 못했다. A씨는 "취재할 당시 하루에 5시간 이상 텔레그램을 봤다. 하루 이틀 본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고, 불법 촬영물이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올라왔다"며 "한번 유포가 되면 몇 날 며칠이고, 몇 년 동안 돌아다니니 그만 보기 힘들었다. 공모전에 기사를 내고 나서도 계속해서 봤다"고 전했다.

그들이 이렇게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다. A씨는 "실시간으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을 알리는 것뿐이었다"며 "마치 내 지인의 일처럼 꼭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고 취재를 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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