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더 끔찍해"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

정지혜 2020. 3. 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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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로 집 안 창고를 채우면서 마음 놓고 있다면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 위기는 전례가 없는 수준입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17일(현지시간) 기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국민이 3만명을 넘어선 이탈리아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끔찍한' 하루하루를 맞고 있다.

연습이든 공연이든 창고 밖을 벗어날 수 없으니 말 그대로 창고(garage) 밴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수의 생명이 희생됐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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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베르가모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명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16일(현지시간) 베르가모 공동 묘지에 도착한 장의사가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한 채 사망자의 관을 옮기고 있다. 베르가모에서는 30분마다 1명꼴로 코로나19 희생자가 매장되고 있다. 베르가모 AFP=연합뉴스
“사재기로 집 안 창고를 채우면서 마음 놓고 있다면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 위기는 전례가 없는 수준입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17일(현지시간) 기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국민이 3만명을 넘어선 이탈리아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끔찍한’ 하루하루를 맞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피해가 심한 곳 중 하나인 북부도시 베네토에서 온 편지 한 통이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18일 공개됐다.

WP에 따르면 이다 가리발디라는 이름의 이 독자는 가족과 함께 봉쇄된 ‘죽음의 도시’ 베네토에서 매일 반복되는 코로나19 참상을 견디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룸바르디아 주 브레시아의 한 병원에 마련된 임시진료소에서 16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병상에 누운 채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브레시아 AP=연합뉴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생각보다 더 암울할 것’(Your future is grimmer than you think)이라고 WP는 제목을 달았다.

가리발디가 전한 참혹한 현지 상황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갇혀 있다. 무섭다. 외롭다. 불편하다. 또 무섭다. 통계나 설교는 아껴두겠다. 이미 수치는 넘쳐나니까.
 
하나 분명한 사실은 식량과 생필품을 채워두는 정도로 이 바이러스를 대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건 전례 없는 위기다. 아무도 끝을 예상할 수 없다.
 
지난 2주 동안 우리가 누리던 일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학교가 폐쇄되더니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정부가 도시를 봉쇄했다. 누구도 들어오고 나갈 수 없다.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이조차 할 수 없어 실직한 이들은 파트타임을 전전하거나 무급 노동을 하고 있다.
 
밖에 나갈 때는 외출 사유를 적은 패스를 소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순간 집에 있는 것이 원칙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쓴 남성이 16일(현지시간) 한산한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 분수 주변을 걷고 있다. 로마 AFP=연합뉴스
일부 사람들은 점점 더 옥죄어 오는 이 같은 규제를 못 견뎌한다. 질병의 심각성에 회의를 표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유가 없어지는 상황에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서로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뭉치기로 했다. 비록 함께 어울릴 수는 없지만.
 
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은 묘사하기도 힘이 든다. 병원을 갈 때나 음식을 사러 갈 때만 밖에 나갈 수 있다. 가족끼리라고 해도 무리지어 걸을 수 없고 포옹도 키스도 악수도 다 안된다. 언제나 서로에게 4피트(약 1.2m)씩 떨어져 있어야 한다.
 
우리 가족은 규칙적인 일과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나는 아침이면 나의 네 아이들에게 홈스쿨링을 한다. 유치원생부터 8학년까지 다 있다. 남편은 원격근무를 한다.
 
오후가 되면 남편과 나는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바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기타와 드럼을 꺼내서 개러지 밴드(garage band)를 결성했다. 연습이든 공연이든 창고 밖을 벗어날 수 없으니 말 그대로 창고(garage) 밴드다.
 
이럴 때는 아이가 하나, 둘이 아니라 넷인 것이 다행스럽다. 아이들이 서로 놀아주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하루가 너무나 빨리 간다. 수업 계획을 세우고, 고장난 프린터나 사이버강의로 과부하된 와이파이와 씨름하고, 아이들 공부를 한명씩 가르치고, 먹이고,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2-3일을 연속으로 보내면 갇혀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가족 중 한명이 식료품점으로 가기로 한다. 운동도 할 겸 자전거를 타고 간다. 그런데 늘 지쳐 있으니 이 정도 운동도 꽤 힘들다.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에서 한 여성이 전광판을 통해 비치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Andra tutto bene)라는 글귀가 적힌 무지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밀라노 AP=연합뉴스
코로나19에 걸린 대부분 사람들이 이겨내긴 할 것이다. 45세 미만이라면 특히 큰 걱정은 없다. 하지만 이곳 의사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이탈리아의 부족한 의료 시스템상 누구에게 호흡기를 달고 살릴지, 누구를 포기하고 사망하게 둘지 결정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쓰는 이 편지는 독자 여러분의 미래를 향해 부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비상사태에 비추어보건대 미국의 현재 상황은 꽤나 전조가 좋지 않아 보인다. 더 큰 위기가 올 것이 훤히 보인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시키기 전에 먼저 대비를 하기 바란다. 정부를 향해 너무 대응을 못한다거나 과잉 대응을 한다고 비난할 시간도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수의 생명이 희생됐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른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좀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당장 대비 태세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는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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