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靑 자문단 사람도 받았다"는 라임인수단 명단 살펴보니

정용환 2020. 3.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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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라임자산운용을 인수하기 위해 인수단을 꾸린 이가 있다. 코스닥 상장사 스타모빌리티의 실소유주인 김모(46) 회장이다. ‘라임 건을 청와대 행정관이 막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장모 전 대신증권 센터장이 녹취록에서 ‘라임에 펀딩할 회장님’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녹취록에도 나온 라임운용 인수단의 실제 인력구성 계획 문건을 중앙일보가 확보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 대형로펌 변호사 등이 인수단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인수단 문건 확보…금감원·변호사 출신 포함
1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해보면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라임자산운용을 인수하기 위한 인수단을 꾸렸다. 김 회장은 장 전 센터장과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나갔던 금융감독원 직원 김모씨를 연결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이종필 전 라임운용 부사장 등과 공모해 경기도의 한 운수업체에서 160억여원을 유출하는 등 횡령에 나선 혐의가 포착돼 경찰 수사를 받던 중 현재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꾸린 인수단의 존재는 청와대 행정관 연루 의혹을 언급한 장 전 센터장 녹취록에도 나와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장 전 센터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라임운용 인수를 위한) 자문단이 둘 들어갈 건데 청와대에서 자문단에 들어가는 사람까지 다 받았다"며 "한쪽은 돈을 많이 끌어올 수 있는 쪽으로 만들 거고, 이쪽은 (금융)감독원 출신, 검찰 출신, 경찰 출신, 변호사 등 쓰레기 처리반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1월 확보한 '라임자산운용 인력구성 계획안' 문건에 따르면 당시 김 회장은 실제로 이 '쓰레기 처리반'을 구성할 계획을 짰다. 라임운용 직원 한 명을 대표이사로 세운 뒤 고문 2명과 감사, 준법감시인, 마케팅·홍보본부, 대체관리본부, 경영지원본부 등으로 인수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코스닥 상장사 실소유주 김모 회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라임자산운용 인력구성 계획안' 문건.

이중 고문으로 내정된 것으로 보이는 A씨와 B씨는 금융 관련 이력이 상당하다. A씨는 1999~2011년 금감원에서 근무하면서 기획조정국장 등을 역임했다. 금감원을 떠난 뒤엔 금융회사 상임감사와 사외이사, 대형 로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또 다른 고문 내정자 B씨는 금융 전문 변호사다. 1998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금융회사 변호사로도 근무한 바 있는 B씨는 금융감독원에서 금융감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 대형 로펌에서 근무 중이다.

인수단엔 그밖에 라임운용 직원 출신 대표이사 겸 대체자산관리본부장, 변호사 출신 감사, 해외 자산운용사 출신 준법감시인, 기자 출신 마케팅·홍보 본부장, 부동산시행사 출신 경영지원본부장 등이 합류하기로 돼있었다. 하지만 녹취록에 나온 '검찰 및 경찰 출신' 인사는 없었다.


금감원 발표로 중단…인수 의도는 의문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CIO)이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인수단은 실제로 지난 1~2월 활동을 지속해왔다. 인수단 관계자들은 원종준 라임운용 대표나 모 경제지 기자 등을 만나 의견을 나누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금융권에 '라임운용을 인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금감원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금감원이 라임펀드의 기준가격 반영(상각)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수단 활동이 중단됐다. 라임펀드에 회생 불가능한 펀드라는 식의 낙인이 찍혀버린 탓이다.

김 회장이 인수단을 꾸려 라임운용 부실 자산 등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려 한 의도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김 회장이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코스닥 상장사 '스타모빌리티'가 라임운용이 투자한 기업이라서다. 김 회장으로선 라임운용이 망가져 회수·관리 능력을 상실할 때까지 채무를 상환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최적의 전략이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김 회장이 상장사를 인수하려고 했다면 주식을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망가진 비상장사 라임운용을 인수하려 했다는 건 수익을 낼 가능성 측면에서 비합리적인 행동"이라며 "라임운용에 대한 외부세력 접근을 차단하거나 본인이 책임져야 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장 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이 라임운용 인수 계획과 관련해 투자자와 나눈 대화의 녹취록. 법무법인 우리

정말 사업적인 이유에서 저가에 라임운용의 부실자산을 인수하려 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장 전 센터장 녹취록에 따르면 김 회장이 설정액 기준 1조2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라임운용 부실펀드를 인수하기 위해 원종준 라임운용 대표에게 지불하려고 한 금액은 고작 15억원이다.

익명을 원한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라임펀드 부실자산을 정말 싼 가격에 인수해 적정 가격에 회수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며 "인수 시도는 태핑(Tapping·거래 상대방의 의사를 알아보는 것) 수준에서 그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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