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동선 위의 사람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2020. 3. 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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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거리로 나가자!’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연계사업으로 진행하는 탈시설 활동에 참여하는 거주인들과 만든 단톡방의 이름이다. 채팅과 사진으로 일상을 나누고 관계를 쌓던 공간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조용해졌다.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전화나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취업을 했던 일터에 나가진 못하지만, 시설 내에서 작업을 한단다. 시설 내부에 머무는 것은 정확하지만, 움직이는 공간과 활동은 정확하지 않다. 작년에도 워크숍이나 외부 일정을 잡을 때 거주시설 내 프로그램이란 이유로 비협조적이었던 시설 측과 탈시설 계획을 논의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당사자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삶의 동선은 더욱 좁아졌을 테지만, 마냥 멈춰 있지 않을 시간과 경험은 기록되어야 한다. 국가가 보호만을 대책으로 내놓기 전에 답답함과 어려움을 세심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당사자들의 언어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코로나19의 경험이 탈시설을 추진하는 데 미칠 부정적 영향도 우려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시설’이란 장소가 가지는 인권적 취약성이 장애인을 취약한 위치로 고정시킨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지자체는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신속하게 공개한다. 동선(動線), 말 그대로 움직임을 드러내는 말이다. 장애인 거주시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있는 확진자들의 동선은 어떨까? 그들의 동선은 멈춰져 있음으로 격리되어 얼어붙은 동선(凍線)임을 보여준다. 시설에서 살아온 수많은 이들은 강제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요당한 존재들이다. 격리와 감금이 강요된 시설에서 자율적·사회적 거리 두기는 가능할 수 없다. 그리고 시설 밖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시설화(institutionalization)’된 삶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드러나고 있다. 벗어나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동선, 정체성이 드러날까 밝히기 어렵거나 밝히기 싫은 동선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은 ‘시설화’된 차별적 구조에 놓여 있다.

지난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보건복지부가 청와대 지시 사항으로 지난 20일 지자체에 ‘장애인 거주시설 1인1실 기능보강 수요조사’를 긴급 요구한 것을 파악하고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요양병원과 장애인 시설의 인권 현실을 해결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과 치료를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선 시설 기능 보강이 아니라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조건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장소를 떠나 다른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거리를 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생활치료센터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것과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자가격리, 확진 판정을 받은 장애인의 활동 지원을 강화하는 대안 등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삶의 동선을 가로막는 시설이란 장소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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