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女, '사적 영역' 불공정 피부로 체감.. 男, '공적 제도'에서 역차별 불만

기자 2020. 3. 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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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운 교수

(11) 청년층 젠더 갈등 보고서

여성 85.5% -남성 74.4%

“한국 사회서 불공정 대우”

‘男 = 생계부양’‘女 = 양육’

전통적 이데올로기 여전

남녀 인식差 근본적 원인

性대립만 강조해선 안돼

구조적 문제가 갈등 본질

우리 사회 20∼30대 여성은 각종 차별을 겪으며 취업·승진·재산 축적 기회 등에 있어 또래 남성에 비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청년 남성들은 되레 남성이어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많다. 젠더 갈등이 일상화한 것이다. 이는 전통적 성 역할을 여전히 요구하는 데 따른 불만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가·공동체적 삶을 살다가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주관한 양성평등정책포럼에 따르면, 청년 여성이 청년 남성보다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에 대해 더 높게 인식하고 있다(그래픽1). 또한 청년 남성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의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청년 여성은 경제적 평등과 차별 없는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의 한국종합사회조사(2014년)에 따르면, 여성이 취업·승진·재산 축적 등에 있어 남성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한다(그래픽2·3). 이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가시적·비가시적 차별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여전히 한국 사회의 전통적 유교 관념에 기반한 성 역할 태도가 작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정성 인식에 남녀 간 온도 차는 왜 나타날까. 최근에 대두한 젠더 공정성 인식에 관한 본질적 차이는 공정성을 인지하는 과정과 연결돼 있다. 사회정의이론(social justice theory)에 따르면, 공정성 인식에는 ‘권리의식(a sense of entitlement)’과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 개념이 중요하다. 무엇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는 개인이 얼마만큼의 권리와 자격을 가져야 하는지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즉 권리의식은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준거집단(reference groups) 간 비교라는 인지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청년들은 서로 다른 권리의식과 준거집단을 가지고 공정성을 인식하고 있다. 2019년에 출간된 ‘공정하지 않다’에 따르면, 청년 남성들은 적극적 조치로 인한 역차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는 권리의 영역을 주로 공적 영역(public sphere)에서의 제도로 봐, 여성할당제·남성군복무제 등에 무게를 두고 공정함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청년 여성들은 동등한 교육적 성취와 취업기회 이외에도 여성에게 더 기대되는 육아 및 가사 등에 집중하고, 이러한 사적 영역(private sphere)에서의 불공정함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노동시장과 정책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성 역할 관념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 상황과 정책의 변동에도, 역설적으로 남성들에게는 ‘생계 부양자 모델’이 강조되며 경제력을 가질 것과 여성들에게는 ‘양육자 모델’로서 양육과 정서적 보살핌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전통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가족사회학자인 조안나 드레비는 전통적 성 역할 관념이나 가족 개념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큰 지속성을 가지며 쉽게 소멸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즉 개인들은 전통적 가부장제 관념에 대해 어느 정도 저항감(resistance)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구속력(maintenance)을 인지하는 가운데 행동하게 된다.

서로 다른 준거집단이 존재하는 것 또한 공정성 인식에서 주목할 점이다. 청년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 다소 완화됐다고 느끼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을 그 준거집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년 여성들이 가족, 직장, 사회 내에서 젠더 차별을 인식하는 것은 청년 남성 또는 타 국가를 준거집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청년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준거집단을 바탕으로 공정성을 인식하는 근저에는 ‘국가, 공동체에서 개인으로’라는 사유 방식의 전환이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저성장시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증가하는 세대 간 불평등 속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권리’와 ‘의무’의 경계를 정하는지 고민하며 공동체적 연대 책임보다 개인 책임으로 치환하는 경향을 보인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인 임홍택은 청년 남성과 여성에 대해 “공동체적 충성심이 없고 권리만 찾고 의무는 다하지 않는 집단이기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목격하고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한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기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과 분절적 노동시장이 지속하는 가운데, 90년대생들에게 근면·희생·충성은 정당성을 상실한 가치며, 이들에게는 단순한 ‘안정’보다도 ‘인간다운 개인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젠더 관련 의제에 대해 남녀가 온도 차를 보이는 것은 단지 청년 세대 간의 ‘남녀 갈등’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가 결부돼 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 간의 대립만을 강조하는 일원론적 담론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고, 불필요한 사회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젠더사회학자인 이재경은 무엇이 평등하고 공정한가에 대해 단지 투입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공평성(equity)의 개념을 넘어 남녀에 대한 다른 평가와 보상을 가져오는 남성 중심 규칙의 변화를 제안한다. 이는 또한 전체 사회의 가치 및 문화체계를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루이스와 하스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남성성(masculine)을 강조하는 기술·업무에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조직과 사회에서는 여성성(feminine)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업무는 평가절하되기 쉽다. 다시 말해 정서적 지지, 양육, 공동체 보존 등 여성적이라고 정의되는 노동에는 금전적, 사회적 가치가 높게 부여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변혁적 전략을 통해 새로운 룰을 만들면 여성에게만 공정함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공정함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사회학자인 아마토는 전통적 성 역할 태도의 부부보다 평등주의적(egalitarian) 성 역할 태도의 부부가 더 높은 결혼 만족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좀 더 평등주의적인 성 역할 태도를 가진 남편들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결혼생활에서 더 높은 만족을 보인다. 전통적 가치체계에서 벗어난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하는 것은 남녀의 공정성 인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제고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고운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정우연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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