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도쿄올림픽 결국 '1년 연기'..3명 웃고, 1명 운다

황현택 2020. 3. 2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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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선택지 하나가 결국 줄었습니다. 7월 24일 '정상 개최'는 이제 물 건너갔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24일 저녁 전화 통화에서 '올림픽 1년 정도 연기'에 합의한 겁니다.

바흐 위원장과 아베 총리, 여기에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와 가장 먼저 '1년 연기설'을 끄집어 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들은 도쿄올림픽 개최 시기의 열쇠를 쥔 핵심 인물로 꼽혀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도 있습니다. 올 하반기부터 내년에 걸쳐 정치 생명이 걸린 '자신만의 선거'를 치른다는 점입니다.

세계적 이벤트인 '올림픽 호재'를 선거에 이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전략이겠죠. 물론 모두에게 '정상 개최'가 최상이었겠지만, '1년 연기'는 이제 확정적입니다. 현실이 될 사상 초유의 올림픽 연기, 이들 네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바뀔까요?


■ 고이케 도쿄도지사, "울고 싶다"

일본의 수도, 도쿄도(都)의 첫 여성 수장인 고이케 지사는 네 사람 가운데 가장 먼저 선거를 치릅니다. 7월 5일에 도쿄도지사 선거가 있습니다. 만약 도쿄올림픽이 7월 24일 정상 개막했다면 그 기대감이 정점일 때이겠죠. 고이케 지사 입장에선 도쿄올림픽 개최 직전에 도민의 선택을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습니다.

반대로 올림픽이 1년 이상 연기되는 건 치명적입니다. "올림픽의 얼굴은 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모르는 사람에게 올림픽을 맡길 수 없다"는 게 고이케 지사의 선거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연기로 소속 정당인 집권 자민당과의 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4년 전, 그녀는 자민당이 밀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자민당 지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독자 노선으로 출마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지사 취임 후엔 자진해 급여의 50%를 절반으로 깎는 등 개혁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지지도를 쌓아왔습니다.

그렇게 자민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고이케 지사에게 도쿄올림픽은 '화해의 재료'였습니다.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집권 세력끼리 서로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 연기로 이 말이 더 통하지 않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4년 전처럼 고이케 지사와 자민당 도쿄도련(東京都連·도쿄도당)이 미는 후보 간 '대결'이 재연될 수 있는 겁니다.

NHK는 24일 "4년 전 도지사 선거 이후, 도쿄도련 내부에서는 고이케 지사에 대한 반발이 뿌리깊다"면서 "도쿄도련이 도지사 선거에서 고이케를 지지하려는 자민당 본부와 하나가 될 수 있을지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 아베 총리, 올림픽 딛고 개헌으로?

아베 총리는 2013년 9월, IOC 총회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달려가 올림픽 유치 연설을 했습니다. 주도적인 '총리 세일즈'로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고, 이후 7년간 개최 전 과정을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상당합니다.

아베 총리는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완전한 형태'로 실시가 어려울 경우 (올림픽) 연기 판단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올림픽 연기'를 처음 용인했습니다.

그의 임기는 내년 9월 말까지. 만약 올림픽 1년 안쪽으로 연기되면 재임 중에 치를 수 있습니다.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로서 장기 집권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올림픽을 '레거시'(Legacy·유산)로 활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만약 그가 코로나19를 종식시켜 '위기관리에 강한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고, 그의 말마따나 2021년 여름 올림픽까지 '완전한 형태'로 치러낸다면 나아가 '자민당 총재 4연임론'에도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 스스로 '비원'(悲願·일생의 꿈)이라고 한 개헌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가 올해 중의원 해산과 총선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중의원은 내년 10월 임기가 만료돼 자동 해산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내년 여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서 그 분위기를 활용해 9월 재집권을 모색하고, 이어 10월 해산할 중의원 총선 승리를 통해 개헌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1년 연기설' 주도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올림픽은 1년간 연기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1년 연기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그의 리더십이 본격 시험대에 오른 상황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올해 11월 3일 치러집니다. 무난해 보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행보의 동력도 코로나19로 한풀 꺾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에게 급한 건 7월 도쿄올림픽에 미국 선수단을 보내는 게 아니라, '팬더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한 뒤 11월을 맞이하는 모습이었겠죠.

대선 승자는 내년 1월 20일 미국 의회 캐피톨 힐 앞에서 선서합니다. 도쿄올림픽을 건너뛴 덕분에 코로나19 대응과 재선 레이스에 몰두할 수 있게 된 트럼프 대통령. 과연 뒷줄의 전직 대통령이 아닌 자신이 성경에 손을 얹고, 두 번째 선서를 할 수 있을까요?


■바흐 위원장, '12년 스포츠 대통령'?

바흐 위원장은 2013년 9월 IOC 수장이 됐습니다. IOC 위원장 임기는 8년이고, 한 차례 4년 연임할 수 있습니다. 내년이 임기 마지막 해. 8월 그리스 IOC 총회에서 재선에 노려 최장 12년 가능한 세계 스포츠계의 대통령이 되려 합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임기는 아베 총리보다 불과 한 달 빠릅니다. 그래서 도쿄올림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운명 공동체'일 수밖에 없겠죠. 7월 예정대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19 감염 확대를 보면 올림픽 강행은 그 자체로 모험입니다. 재선을 도모하려면 적어도 '취소'가 아닌 '1년 연기'를 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거론된 네 명이 코로나19와는 별도로 자신의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두고 도쿄올림픽 세부 일정 조정에 나설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예정대로'는 고이케 지사만 있었을뿐, 나머지 3명은 '1년 연기해도 문제없다', '오히려 1년 연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애초부터 '1 대(對) 3 구도'였던 셈입니다. 도쿄올림픽 '1년 정도 연기'가 사실상 확정된 지금, 이 네 사람 중 누가 웃고, 누가 울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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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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