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도 봉쇄론에 불안감 급속 확산..사재기 현상도

조기원 입력 2020. 3. 26. 18:36 수정 2020. 3. 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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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에도 도쿄 47명 이상 최다 확진자 발생
도쿄도지사 "도시 봉쇄 가능성도" 잇단 발언
정부 긴급사태 선언 염두 대책 본부 설치

쌀, 고기 등 식료품 사재기 현상 곳곳 발생
올림픽 연기 발표 뒤 급증에 시민들 '당혹'
26일 일본 도쿄 다이토쿠 슈퍼마켓 닭고기 판매대가 텅비어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일본 도쿄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이틀 연속 갑자기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수도 봉쇄’ 가능성까지 잇따라 거론되고 있다. 지난 24일 도쿄올림픽 연기 공식 발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차분했던 분위기가 급작스레 반전되자, 주민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26일 도쿄에서 추가로 47명 이상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25일 확진자 수(41명)를 뛰어넘는 것으로, 도쿄 내 하루 신규 확진자 수로는 가장 많다. 특히 25일 감염자 가운데 11명은 다이토구에 있는 병원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돼 집단감염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이 병원 입원자는 무려 3000여명이고, 외래 환자는 20여만명에 이른다.

‘수도 도쿄 봉쇄론’도 그간 떠돌던 소문 수준을 넘어 현실적 가능성으로 거론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25일 저녁 8시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주말 외출 자제를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고이케 지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코로나19 감염) 추이가 확산되면 록다운(도시 봉쇄)을 부를 수 있다”고도 말했다. 지난 23일 “도시 봉쇄 등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는 26일에는 도쿄와 인접한 4개 현에 주말 외출 자제 협조 요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인 지바현의 지사는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현민들이 이번 주말에 도쿄로 가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도쿄 봉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일본 중앙정부도 26일 ‘긴급사태’ 선언을 염두에 두고 정부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정부 대책본부 설치는 긴급사태 선언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 중 하나다. 총리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이유로 긴급사태 선언을 하면 감염 확산 지역의 지자체장은 학교나 영화관, 백화점 등 다중시설 사용 제한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설치한 전문가 회의도 26일 “만연 우려가 크다는 것이 인정된다”는 보고서를 승인했다.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은 이날 아베 신조 총리에게 “‘감염 만연 우려가 크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고이케 지사의 25일 밤 긴급 기자회견 직후부터 도쿄 일부에서는 식료품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이날 밤 10시께 <한겨레>가 도쿄 다이토구 슈퍼마켓에 가보니 시민들이 고기와 빵, 쌀 같은 식료품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이 슈퍼마켓에서는 평소 밤에는 퇴근길 시민들이 적은 양의 장보기를 했지만, 이날 밤에는 봉투 여러 개에 식료품을 잔뜩 채워 나갔다. 고기와 빵 매대에는 물건이 20%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26일 아침에도 도쿄 주오구 슈퍼마켓에 가보니 사람들이 국수와 라면, 쌀, 고형 카레처럼 보존성이 높은 식료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불안감이 도쿄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기류 변화에 일본인들도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지난주 많은 일본인이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에도 벚꽃놀이를 즐길 만큼 분위기가 비교적 차분했기 때문이다. 도쿄 주오구 하마초공원에서는 시민들이 벚나무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이 비교적 느긋했던 배경에는 일본 정부가 발표한 확진자 수가 2000여명으로 중국, 한국, 유럽보다 확연히 적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 확진자 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검사를 소극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지나친 검사는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그동안 묻혔다. 정부가 설치한 전문가 회의도 일본이 폭발적 감염 증가세는 아니라고 그동안 밝혀왔다.

이 때문에 일본 인터넷에서는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자마자 위협이 강해지는구나. 도민보다 올림픽이 우선이냐” “올림픽 연기된 이 시점에 감염자 증가라니 의문”이라는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도쿄에 사는 한 한국인도 “불안감이 커져 예정보다 두 달 정도 일찍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이들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국 제한 조처도 다음달에도 연장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도쿄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3일 연속 오름세를 지속하던 도쿄 증권거래소의 닛케이지수가 26일 4.5% 큰 폭으로 하락하며 휘청거렸다. 기노우치 에이지 다이와증권 수석분석가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고이케 도쿄지사의 발언이 투자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조계완 기자 garden@hani.co.kr

26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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