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와주면 예우" 호소하더니..의료진 수당 슬쩍 깎은 당국

정종훈 2020. 3.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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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설명 없이 수당 바꾸고
근무 종료 후 14일 격리 안 챙겨
25일 오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은 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부족한 방호복을 아끼기 위해 일부러 물·커피 안 먹고 화장실 가는 걸 참습니다. 끼니도 사실상 점심 도시락, 저녁 컵라면이 전부지만 환자 치료 위해 열심히 해왔어요. 한달 동안 하루 빼고 계속 일했는데…."
대구에서 일하는 의료인 A씨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다. 이곳에서 자원 근무 중인 A씨는 지난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다른 자원 근무 동료들이 혹여나 피해를 입을까 조심스럽다. 하지만 어려운 곳을 도우려 나선 의료인들을 배려 않는 보건당국의 태도가 바뀌어야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3일 기준 대구에서 2145명, 경북에서는 419명의 자원·파견 의료인력이 땀을 흘리고 있다. 보건당국은 지난달 말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확산하자 전국의 의료인에 도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많은 의료인이 생업을 뒤로 하고 위기에 빠진 이웃에 손을 건넸다. 정부도 "활동을 마친 뒤까지 적절한 예우" 등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자원 의료 근무에 나선 의료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 대구시에선 현장에 투입할 자원 의료진에게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배포된 자료엔 모든 민간 모집 인력은 2주 이상 근무 원칙으로 근무·위험 수당 등을 받는 것으로 명시됐다.

위험 수당은 모두 하루 5만원(첫날만 15만원)씩 지급한다고 돼 있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수준으로 인건비를 지급한다고도 자료에 명시돼 있었다.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앞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잠시 앉아 쉬고 있다. 연합뉴스



별다른 설명 없이 수당 바꿔 '혼란'
하지만 이달 들어 기류가 달라졌다. 선별진료소에 배치된 의료인들이 바삐 근무하는 중에 현장 관계자가 4차례 서류를 내밀면서 서명을 요청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자원 의료진 상당수는 별 생각 없이 서명에 응했다.

하지만 지난주에 중간 정산 수당이 예고 없이 들어온 뒤에야 무슨 서류인지 확인해봤다고 한다. 당초 설명과 달리 담당 업무 등에 따라 위험 수당이 제외되거나 휴일 근무 조건 등이 변경된 것이다.

의료인 B씨는 "위험 수당이 제외된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좋은 뜻으로 봉사에 나선만큼 변경시 제대로 설명해줬거나 처음부터 수당이 없다고 말했으면 황당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주변에서 의료진이 대우 잘 받으니 코로나19에 걸려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서글프다"고 했다.

22일 오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입구 한쪽 벽면에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들의 의료진 응원 편지가 부착되어 있다. 연합뉴스

경북 지역의 병원에 자원 근무한 C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달 말 근무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휴일도 파견 근무일수에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2주쯤 지난 뒤 휴일은 제외하는 식으로 규정이 변경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마저도 지급 여부는 감감무소식이다.

C씨는 "계약서가 바뀌었다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병원 관계자가 별 내용 아니니 서명 안 하고 바꿨다고 말하더라"며 "자원 근무자 중에는 다른 일을 준비하거나 잠시 쉬다가 환자들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 많다. 다들 형편이 여유롭지 않은데도 본인 돈으로 숙박비, 식비 등을 먼저 부담하면서 근무한다. 일부는 가족에게 돈을 빌리거나 적금을 깨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확진자 입원 병동과 보건소·임시 선별진료소 등 근무 장소와 직군에 따라서 수당 지급 기준이 모두 다르다"며 "그 부분에 대한 상세 설명이 지자체나 병원에서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파견 의료진에 대한 지침이 지난달 이후 네 번 바뀌었는데 수당을 깎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지급 시기는 지역이나 기관에 따라 달라질 순 있다"고 밝혔다.

일선 현장에서 수당 지급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나 파견 병원 등지에서 세심한 운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 인력이 급할 때 감언이설을 쏟아내다 실제 결산을 할 때는 변경된 기준을 적용한 정부의 처사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대구 동구 파티마병원에서 선별검사소 앞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격리 장소·지원 등은 '배려 부족'
의료진이 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의료 지원 이후의 자가격리 등과 관련한 지원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아서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근무를 마친 자원 의료진도 적지 않다. 중수본이 적용 중인 파견인력 운영 지침에 따르면 민간 모집 의료인은 한 달 이상 근무가 원칙이다.

의료진이 보호장구를 착용했다면 근무 종료 후 자가격리가 불필요하다고 규정한다. 14일간 증상 발현 유무만 모니터링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만약 격리 조치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파견 받은 기관에서 지자체 시설 등 별도의 격리 장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격리 기간 중 기본 근무수당도 2주간 지급하게 된다.

많은 의료인들은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우려해 14일간 별도 시설에 머무르길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 소속 직장이나 가족들이 감염 예방 차원에서 격리를 요청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격리 조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필요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특히 지자체가 지정해주는 숙소는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집이나 모텔 등에서 14일간 그냥 머무른다고 한다. 식료품 등 지원은 언감생심이다.

집에서 격리 중인 C씨는 "확진자들을 병원에서 한달 가량 접촉했으니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하고 (나를) 멀리 했다.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 나를 포함한 의료진 70% 정도는 격리에 들어갔다"며 "집에 못 가고 병원 근처 모텔에 머무르는 동료도 있다. 지자체 제공 시설에 가려 해도 절차가 복잡하거나 완전 외딴 곳이라 사실상 못 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6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시설팀 직원들이 완치자 퇴원 후 코로나19 확진자 병상 청소를 위해 격리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보건당국은 현장마다 상황이 다를 순 있지만 격리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수본 관계자는 "하루 이틀 정도 자원 근무하고 14일간 자가격리 하겠다는 분들도 있다. 환자 감소, 인력 배치 등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게 아니라 개인 사정으로 빨리 그만 두면 지원은 없다. 현 지침상 격리 시설은 장소만 제공하고 식비 등이 따로 없다"고 해명했다.

일부 근무자들은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나선만큼 실망감도 크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런 상황인데 근무 사기가 꺾이지 않을 수 없다"(B씨)는 것이다.

자원 근무 의료인 D씨는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곧 근무가 끝날 예정인데 자가격리까지 포함하면 두달 정도 가족 얼굴을 못 봅니다. 가족들이 반대했어도 혼자 떠나 코로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대응에 실망해서 다음번에 비슷한 일이 터지면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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