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외국인이 말하는 '나에게 한국은 0000 곳이다' [한국형 외국인 혐오 보고서]

안용성 입력 2020.03.27. 06:05 수정 2020.04.01. 15:17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5회> 차별금지법 14년째 '논쟁 중' (끝)/ 강제력 없는 인권위법 유명무실.. 혐오 확산 사실상 방치 / 혐오사이트에 비하·가짜뉴스 범람 / 인권위서 차별 인정해도 권고 그쳐 / 피해 특정되지 않으면 제재도 못해 / 獨, 치안방해와 상관없이 형사처벌 / 방치하는 SNS 사업자에 벌금 부과 / 英, 2019년에 혐오표현 가중처벌 제정 / 인권위, 포괄적차별금지법 쟁점 검토 / "혐오 표현 규제의 정당성 커졌지만 / 개인 표현 자유 손쉽게 제한은 안 돼"
누군가는 살기 위해 이 땅을 찾았고, 누군가는 배우기 위해, 누군가는 우연한 기회에 이곳에 왔다. 2008년 89만명이었던 외국인 주민은 10년 만에 200만명을 넘어섰다. 각자의 사연, 각자의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이들은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구성원이 됐다. 세계일보는 지난 두 달간 다양한 국적·인종의 외국인을 만났다. 2020년 한국이란 공간은 이들에게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어쨌든 적응하며 버텨야 할 곳이라서, 또 다른 이에겐 예상했던 대로 멋진 나라여서 그렇다. 외국인 주민들이 ‘바라본’ 그리고 ‘바라는’ 한국의 모습을 한 줄로 남겼다.
 
‘베트남 XXX들은 왜 한국에서 XX이냐’, ‘외노자는 시급 5000원 선에서 정리 못 하느냐’, ‘짱X·조선족들은 우리나라에서 40가지가 넘는 혜택을 받고 있다. XXXX들 다 폭파했으면 좋겠다.’
26일 대표적인 혐오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속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글이다. 이 외에도 숱한 혐오와 비하, 가짜 뉴스가 넘쳐난다. 아무런 제재 없이 이 같은 글을 올릴 수 있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특히 ‘피해가 특정되지 않는’ 외국인에 대한 광범위한 혐오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퍼져나간다. 대한민국이 외국인 혐오에 대처하는 현주소다.
◆독일은 형사 처벌·일본은 조례 제정

국제사회는 인종차별과 혐오를 추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안티 혐오’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형법에서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거나 그들에 대한 폭력적 또는 독단적 조치를 요구하는 행위’, ‘특정 인구집단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해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치안방해의 여부와 관계없이 혐오표현 자체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광범위한 규제로 평가된다. 이 외에 독일은 지난해 ‘네트워크집행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업자 등에게 자신들이 관리하는 인터넷망에서 혐오표현을 하는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에 최대 500만유로(약 66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도 1986년 제정된 공공질서법에 따라 인종차별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SNS 혐오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가중처벌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아직 구체적인 혐오표현 규제 법률이 마련되지 않았다. 민권법, 장애인법, 고용법 등을 통해 분야별로 차별을 제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2017년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이 제정됐지만, 이후 벌칙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혐한’ 등 혐오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가와사키시가 ‘헤이트 스피치’를 하면 벌금을 물리는 조례를 통과시키는 등 지역별로 자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인권위법은 유명무실… 관련법은 논쟁 중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인권위법으로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제재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처벌에 강제력이 없고,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을 경우 그나마 제재할 근거조차 없는 현실이다.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포괄적으로 막기 위한 관련법도 국회 계류와 폐기를 오가며 13년째 ‘논의 중’이다.

관련법이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혐오와 차별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하고 있는 혐오 발언에 대한 ‘접속 차단’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부를 비난하는 가짜 뉴스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속도는 전혀 다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한국 마스크를 북한에 다 줬다’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에 대해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이례적으로 ‘긴급 심의’까지 열어 빠른 조치를 취했다. ‘조선족 게이트’ 영상에 대해서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에 대한 대응은 어떨까.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 ‘처벌의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유튜브와 SNS에는 지금도 혐오표현이 넘쳐난다. 일부에서는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 활용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인권위법에 따라 인종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통수단 이용, 직업훈련 등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받은 경우 인종차별 조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인종차별이 인정되더라도 인권위는 손해배상·원상회복·재발방지 조치 등을 개인 또는 단체에 권고할 수 있을 뿐이다. 권고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인권위는 해당 개인이나 단체명을 익명 처리해 언론 등에 공개할 수 있지만, 아직 그런 사례는 단 1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는 “올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일정을 추진하고 있고, 현재 쟁점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쟁점’이 무엇인지는 “지금 시점에서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혐오의 증폭… 범죄 우려도
우려스러운 것은 혐오의 증폭이다. 미국의 증오범죄학자인 브라이언 레빈은 혐오를 5단계로 규정한다. ‘편견→편견에 의한 개인 차원의 행위→차별→편견에 기반을 둔 폭력 행위→집단학살’의 형태다. 혐오를 방치할 경우 극단적인 사회 문제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 같은 형태의 발전은 항상 순차적으로 진화하지만은 않는다. 개인적 차원의 혐오 행위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경우 급작스러운 폭력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사에 참여한 국민 1200명 가운데 81.8%가 혐오표현이 혐오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 외에도 사회갈등의 심화(78.4%), 차별현상 고착화(71.4%), 소수자의 표현 자유 위축(62.8%) 등의 문제에 대한 우려도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혐오와 차별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소될 것이란 전망은 22.2%에 그쳤다.

혐오표현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아직도 논쟁 중이다. 혐오표현의 문제성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최근 SNS 등에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은 물론 실제 혐오 범죄까지 이어지면서 규제의 정당성이 커진 상황”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같은 이유로 개인 표현의 자유를 손쉽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ysahn@segye.com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