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가려다 제주도 갔다는데.." 유학생 모녀 두둔한 강남구청장

현화영 2020. 3.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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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후 자가격리 권고 무시하고 제주도 여행한 모녀 / 비난 여론, 제주도 손배소 청구 방침에.. / 정순균 강남구청장 직접 브리핑 나서 / "모녀 정신적 패닉 상태.. 이해 부족 때문, 재난문자 발송 전 여행 간 것" / 들끓는 여론에 기름 부었나.. '강남구청장 파면' 국민청원까지
 
정순균(사진) 서울 강남구청장이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모녀’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누리꾼의 뭇매를 맞고 있다. 현재 이들 모녀는 ‘정신적 패닉 상태’로 선의의 피해자이며, 제주도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해 부족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 구청장은 지난 27일 오후 강남구청사에서 가진 ‘코로나19 관련 긴급 브리핑’에서 강남구민인 모녀의 상황을 대신 전했다. 

이들 모녀는 미국 유학생 김모(19, 강남구 21번 확진자)양과 그의 어머니 박모(52, 강남구 26번 확진자)씨다. 김양은 지난 15일 미국에서 귀국했고, 모녀는 다른 동행자 2명과 함께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제주도를 여행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둘 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 구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 치료에 전념해야 할 모녀가 사실상 정신적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면서 “제주도의 고충과 도민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이들 모녀도 이번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모녀가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면, 협조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쏟아지는 비난이나 제주도의 손배소 제기는 모녀나 제주도의 상황에 대한 ‘오해나 이해 부족’에 따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정 구청장은 “유럽 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절차가 진행된 것은 지난 22일이고, 강남구에서 미국 유학생 확진자가 최초 나온 것은 23일”이라며 “구가 재난문자로 관내 미국 유학생들에게 스스로 자가격리하도록 당부한 것은 24일부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녀는 지난 15일 입국해 20일부터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기 때문에, 사실 당시 자가격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 구청장은 “유학생 딸(김양)은 지난해 9월 보스턴 소재 대학에 입학한 후 강도 높은 수업 스케줄 등 학교생활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엄마는 그런 딸의 기분 전환을 위해 당초 21일부터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하와이행 항공편이 취소되자 20일 제주도 여행길에 오른 것”이라고 모녀가 제주도로 향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지난 24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출발층에서 출발 승객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딸은 여행 출발 당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니었고 특별한 증상도 없어 여행길에 나선 것”이라며 “출발 당일 저녁, 아주 미약한 인후통 증상만 나타나 여행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전했다. 감염에 대한 우려가 없어 여행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들 모녀가 여행 4일째인 23일 오전 숙소(호텔) 근처 병원을 방문한 것은 김양의 증상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박씨가 전날 밤 위경련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김양도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아 코막힘 증세를 치료한 것일 뿐이라고 정 구청장은 전했다.

그러면서 “(강남구의) 역학조사 결과 딸(김양)에게 코로나19 이상 증세가 나타난 건 여행 마지막 날인 24일부터”라고 강조했다. 

 
이들 모녀가 다녀간 제주도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27일 기준 모녀와 접촉한 47명은 자가격리됐고, 이들이 방문한 20개 장소는 폐쇄돼 막대한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원희룡(사진) 제주도지사는 지난 26일 도청 기자실에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런 관광객은 필요 없다”라며 강하게 유학생 모녀를 비판했다.

그는 “이들 모녀는 입도 첫날부터 증상이 있었음에도 제주 곳곳을 다녔다”면서 “방역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여행객은 최대한 철저히 조사해 단호한 법적 조처를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해외여행 이력을 숨기고 입도한 여행객에 대해 시설 격리 명령을 내리는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도는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모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정 구청장의 발언 후 유학생 모녀를 향한 여론은 더욱 악화하는 모양새다.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강남구민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앞서 강남구청은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무단외출을 한 논현동 거주 강모(30)씨에 대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8일 강남경찰서에 고발 조치했다. 정 구청장을 파면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온 나라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 중인데, 해외에서 입국하고도 개인 여행을 다니는 구민을 대신 해명하는 게 구청장의 임무인가?”, “하와이는 입국 안 돼서 제주도 간 것이라는 게 해명? 제주도는 만만한가?”, “구청장이 아니라 유학생 모녀 개인 변호사인 줄…”, “모두가 조심해야 할 이때, 제주도를 쑥대밭 만들어 놓고 선의의 피해자라니 어이가 없다” 등 반응을 보였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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