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청산페스티벌 프로그래머 김세환 "코로나19에도 친일청산 연극 계속" [원희복의 인물탐구]

원희복 선임기자 2020. 3. 2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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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세환 친일청산페스티벌 프로그래머가 3월 20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코로나19가 한창인 3월 20일 전국의 공연·전시 등 문화 활동은 거의 멈춰 섰다. 특히 작고 비좁은 소극장에서 장시간 공연하는 연극은 감염병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 그래서 국립극장·서울시립극단·남산예술센터 등 공공기관의 상반기 연극 프로그램은 모두 중단·종료됐다. 민간도 마찬가지다. 연극의 메카인 서울 대학로의 극단 10곳 중 8~9곳이 공연을 중단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줄기차게’ 공연을 이어가는 극장이 있다.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혜화당에서 열리는 ‘2020년 제1회 친일청산페스티벌’이다. 3월 4일부터 29일까지 4편의 연극이 계속 공연되고 있다. 주제처럼 마치 독립운동하듯, 레지스탕스 활동하듯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친일청산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은 연출가 김세환 프로그래머(41)다. 프로그래머란 공연예술제를 기획하고 초대하는 작업을 한다. 보통 큰 규모 페스티벌에서는 예술감독이라고 하지만 그는 “내가 모든 것을 대표하지 않는다”면서 겸손하게 프로그래머라고 표기해주길 요청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공연 이어가

-코로나19 사태에도 공연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관객은 있나.

“어제(3월 19일)는 관객이 많았다. 객석이 70석인데 40~50명씩 온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예술계 타격이 크다. 연극은 10편 중 1~2편만 간신히 공연하고 있다.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은 것이 아닌 것처럼 연극도 모두 내린 것은 아니다. 공연이 드문 요즘 오히려 우리 연극에 관객이 더 몰리기도 한다. 극장 앞에서 모든 관객의 체온을 재고, 신원을 파악해 유사시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극장을 매일 소독하면서 공연하고 있다.”

-작년은 3·1운동 100주년으로 관련 행사가 많았다. 1년 지나 이 친일청산페스티벌을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소극장혜화당은 페스티벌 전용극장이다. 작년에는 우리 나름대로 사업계획이 있었다. 보통 페스티벌 5개월 전 이런 주제로 페스티벌을 연다고 공고하면 여러 극단이 신청한다. 우리가 ‘오욕의 역사를 고발하는, 100+1주년에 동참할 연극인 찾는다’고 공고했다.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이 1년 지났지만 친일청산 문제는 단지 100주년이라는 시간성이 아닌 지속적인 연극행위로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우소극장’에서 올 여름·가을에 추진하는 페스티벌 주제 역시 친일청산이다.”

-3월부터 오른 4개 연극을 소개해 달라. 어떤 작품이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는가.

“첫 공연 극단 민예의 <오늘, 식민지로 살다>(연출 김성환), 두 번째 연극집단 공외의 <아버지의 이름>(연출 방혜영), 극단 평행의 <역광>(연출 허윤영), 마지막 작품 극단프로젝트그룹 연희공방의 <청문>(연출 이지수) 모두 관통하는 주제는 친일청산이지만 방법은 각자 다르다. 극단 중에는 역사성 있는 중견극단도 있고, 신예극단도 있다. 연극인 중에는 20~30년 무대에 선 분도, 젊은 연극인도 있다. 이렇게 시니어팀과 신예팀이 같이 어우러지는 것이 페스티벌 의미인 것 같다.”

제1회 친일청산페스티벌 포스터

“계속할 생각이 있지만 희망사항”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친일문제는 뿌리 깊은 현실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사문제는 일면 고루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곳 대학로 젊은이들에게 별로 호응받지 못하는 주제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연극 메시지가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닌 어려운 주제일 수 있지만 이렇게나마 공연하는 것에 응원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 관심 없는 주제라도 이런 페스티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문제는 정치적 선호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연극인들의 역할이다.”

이번 페스티벌에 출품된 연극 중 <오늘, 식민지로 살다>는 언어·역사·문화를 잃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임종국 선생을 소재로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청산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또 <역광>은 뜨거운 가슴으로 역사를 가르치던 역사 선생님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만들었다. 마지막 공연작 <청문>은 진정한 친일청산 문제에서 친일과 종북 문제 그리고 고결함과 명예로움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선택적 가치가 되는가를 다룬다. 티켓 구입 등 자세한 문의는 02-734-7744(화~금 오전 10시~오후 6시)로 하면 된다.

이번 행사가 ‘제1회 친일청산페스티벌’이다. 제1회라면 앞으로도 계속 연다는 의미다. 하지만 김 프로그래머는 “솔직히 희망사항이다. 계속할 생각이 있지만 형편이 돼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희망사항이란 연극계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요즘 연극계는 지원 없이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어렵다. 아니 예전에도 그랬다. 열정으로 시나리오를 써도 극장을 빌리고 무대를 꾸미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객이 사는 ‘표’로 상쇄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우리 연극계 형편은 그러지 못한다. 그는 “서울시에서 대관료 50%를 지원하는 ‘서울형 창작극장’에 선정돼 이 페스티벌을 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로의 부동산 임대료는 상상 이상이다. 극단이 극장을 대관해 공연하려면 뻔한 공연수익으로 한계가 있다. 다행히 페스티벌은 극단으로선 대관료 없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다. 극장은 서울시로부터 대관료의 50%를 지원받으니 그나마 연극 공연이 가능하다.

극단 민예 <오늘, 식민지로 살다>의 한 장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기업은 물론 직장·소상공인까지 거의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거의 모든 연극이 막을 내렸다면 배우나 극단의 생계비 역시 끊겼을 것이다. 하지만 김 프로그래머는 덤덤한 표정이다. 워낙 연극계의 어려움이 일상이 됐기 때문인가. 그는 “솔직히 연극 행위를 통해 최소한 생활이나 경제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차피 연극으로 최저생계도 안 됐으니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일종의 체념같이 들린다. 그는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년 전 연극 티켓 값이 1만5000원이었는데, 지금도 그 가격이다. 오히려 티몬이나 쿠팡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다. 이에 비해 물가나 극장 임대료는 3~4배 올랐다. 20년 전 대학로 극단은 30여 개로 서로 다 알고 지낼 정도였다. 지금은 극장만 150개, 프로젝트 극단까지 합하면 수백 개다. 그런데 정부 지원예산은 그때 그대로다. 과거 30개 극단에서 나눠 받던 지원을 놓고 지금 수백 개 극단이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대학로 극단이 위기에 처한 것은 역설적으로 2000년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하면서부터다. 대학로 문화·예술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문화지구 지정제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독약’이 된 것이다. 그는 “문화지구로 지정되면 건축주나 토지주에게 세금을 면제해주고 건물 증축 혜택을 주니 부동산값만 폭등해 극장 임대로만 대폭 올랐다”면서 “예술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설픈 탁상행정이 대학로 연극의 메카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극장혜화당도 1991년 대학로 연극 1세대가 만든 ‘까망소극장’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4년 문을 닫자, 9명의 젊은 연극인이 인수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서울시 창작극단에 선정돼 임대료와 전기료를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다”면서 “지금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학로에서 소극장 유지만 해도 다행”

김 프로그래머는 1979년 부산 출신으로 경성대 연극영화과 98학번이다. 2002년 학군장교(ROTC)로 임관해 육군 대위로 2006년 제대했다. 제대 후 곧바로 연극계에 뛰어들어 부산시립극단 등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와 국립극장 등에서 연극 실무를 익혔다. 2008년 극단 ‘드라마팩토리’를 만들고, 그해 5월 <존경하는 옐레나 선생님>를 처음 발표하면서 <헛소동>·<몽타주>·<존 레논을 위하여>·<다시 뛴다>·<거짓말>·<라디오 잠시 길을 잃다>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연극계 ‘미투사건’의 장본인 이윤택 감독에게 2년간 연극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얘기”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이윤택 감독은 연극계 최대 극단을 이끌며 많은 연출가·극단이 그에게 배우고, 그의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옛날 연극계는 스킨십은 물론 언어·물리적 폭력도 그냥 넘어갔지만 미투를 계기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진행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공연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는 등 1년 중 300일을 공연하는 남다른 열정을 보인 연출가다. 그는 “그동안 만든 작품이 50여 편, 공연 회차로 치면 수천 회”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기획·희곡·무대·조명·음향까지 도맡는 스타일이다. 그는 “연극과 음향은 관객의 정서와 톤을 정하는 것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직접 찾는다”면서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안 돼 모두 맡아야 하는 이유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작품 제작 예산이 억 단위만 되면 음향전문 스태프와 같이할 수 있지만, 대학로 연극계에서는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한다.

그는 연기스터디 모임 ‘한걸음’을 운영하면서 2014년 소극장혜화당 운영위원 9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이곳에서 그는 SF 페스티벌, 미스터리 스릴러 페스티벌, 단막극 페스티벌,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페스티벌 등 소극장혜화당을 페스티벌 전문극장으로 키우고 있다.

그는 고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특히 그는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매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는 “체호프 단편에 등장하는 아이·여성·노인 등 일상의 섬세한 주제가 오늘날 우리가 얘기해야 할 현대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호프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고전이든 현대이든 다양한 의미를 관객에게 쉽고 재미있게 보여줄까 고민하는 것이 연극 창작자의 임무”라면서 “친일청산페스티벌이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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