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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軍 계급사회의 벽.. '상명하복' 구시대 유물 취급 [세상을 보는 창]

박병진 입력 2020. 03. 28. 20:01 수정 2020. 03. 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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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영에선 무슨 일이 / 장병들 휴대전화 사용 일반화 / 집단주의서 개인주의로 변모 / 간부와 병사들의 부조화 초래 / 지휘체계 단절 전투력 악영향 / 자살·탈영 등 사고 대폭 줄어 / 사이버 도박 등 새 위험 부상 / 자율통제 정착 시급한 과제로 / 최근엔 성전환 이슈도 떠올라
요즘 우리 군은 준 전시상황이다. 간호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여군 장교 75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최전선인 국군대구병원에 배치, 환자 진료에 투입될 정도다. 제2작전사령부와 국군화생방사령부 장병들도 감염 위험을 무릅쓰며 대민지원에 헌신하고 있다. 부족한 혈액을 채우기 위한 릴레이 헌혈 또한 군 장병들 몫이다. 이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와중에도 병영은 시끌벅적했다.
 
경기도 가평군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혜산진부대 생활관에서 지난해 1월 31일 오후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통화와 문자메시지 전송, 인터넷 강의 시청 등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7일에는 민간인 2명이 제주 해군기지 철조망을 절단하고 무단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침입자들을 감지하는 감시체계 미작동으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고, 이상징후에 따른 보고는 누락됐다. 당시 해군의 경계망은 ‘엉망’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6월 북한 목선 삼척항 진입 사건의 ‘데자뷔’(deja vu)를 보는 듯했다.

경계작전 실패는 군기강 논란으로 이어졌다. 달라진 병영 문화가 도마에 오른다.

병영이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변모하면서 계급사회의 벽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장병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하면서 사이버 도박 문제가 이슈가 되고, 마약 사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군인까지 등장했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달라진 신(新)병영”

상명하복(上命下服).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문화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에 저해되는 배신자의 낙인, 주홍글씨처럼 여겨졌다. 군에서 이러한 개인주의는 철저하게 배척돼 왔다.

하지만 군의 이러한 집단주의도 개인주의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사회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병사들의 서열을 나누던 계급의 벽이 허물어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선임병에 의한 후임병 구타와 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의 ‘부작용’인 셈이다.

보이스카우트가 된 군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의 지휘는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다 보니 간부와 병사들의 부조화가 지휘체계의 단절로 이어져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병사들끼리 이전투구(泥田鬪狗)로 각종 투서가 난무하는 일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전방지역 포병부대 한 영관장교는 “예전같으면 누군가 좀 손해를 보고 힘든 일을 하더라도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지금은 참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본 병사가 상관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병사들 지휘하기가 정말 힘들다”면서 “이제 군대는 전투력 강화보다는 병사들을 다치지 않게 해서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는 게 지상목표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과 그 부모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반대로 군인들의 결속력과 긴장도는 떨어졌다. 과거처럼 무조건 명령에 따르는 군대는 이제 구시대 유물”이라고 전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군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 군의 위상을 대변한다.

“병사끼리의 계급사회가 무너진 지는 오래됐고요. 요즘 형이라고 부른답니다.”(룰루랄라)

“요즘 군대가 뭐 군대인가요. 그냥 보이스카우트 보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ㅎㅎ.”(홈플러스)

재임기간 신병영 문화 정착에 노력했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은 미국식 편제와 시스템을 접목시켰다. 하지만 군인정신을 이루는 바탕에는 일본식 군국주의 문화가 깔린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 “합리적 자율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군대, 우리 국군이 목표로 삼는 이상이지만 군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군대도 사회의 한 부분으로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바른 시민의식이 만들어지고 문화로 정착할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건전한 시민의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물러난 뒤 독일 군대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가 ‘제복 입은 시민’을 만들자는 거였다”고 부연했다.

‘우리는 어떤가’라는 질문에 한 전 장관은 “(우리 사회는) 아직 이기적이다”라고 답했다.

자율과 책임이 공존하는 신병영 문화가 군의 노력만으로는 조성되기 힘들다는 얘기로 들렸다.

◆“일반 사건·사고는 줄고 사이버 도박은 늘어”

부대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명사고나 군무이탈(탈영) 사건 등은 최근 대폭 줄었다.

군무이탈은 2013년 643명에서 2019년 105명으로 83.7%, 자살사고는 2013년 79명에서 지난해 61명으로 22.7% 감소했다. 주기적으로 발생했던 총기난사 등 군부대 대형 악성 사건도 2014년 이후에는 전무한 상태다.

군은 이런 변화가 2014년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병사가 숨진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병사들의 인권·인격 존중, 삶의 질 향상 등에 중점을 둔 병영 문화 혁신정책이 본격 추진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일과후 장병 휴대전화 사용은 병영 내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해 10월 충남 계룡시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 보고에서 육군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병 휴대전화 시범운용 영향분석 연구결과’를 토대로 “휴대전화 사용으로 병사들의 소통 여건이 크게 증대됐다”고 밝혔다. 선임병이 후임병을 괴롭히던 구타 및 가혹행위도 덩달아 줄었다는 분석이다.

병사 휴대전화 사용제도를 도입했던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휴대전화를 쓴다. 그들에게 휴대전화를 못쓰게 하는 건 일종의 고문”이라며 “처음에는 어머니, 애인에게 전화하겠지만 결국에는 그걸로 공부를 한다. 우리 군대가 기합 빠진 ‘날라리’ 군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누가 한마디 하면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SNS 시대를 살고 있다. 옛날 리더십을 얘기할수록 병영 내 안전사고 위험은 오히려 더 커진다. 군은 이제 자율통제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도박·음란사이트 접속이나 온라인상에서의 욕설·비하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이후 최근까지 적발된 병사 불법도박 건수는 306건으로 집계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반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법 도박 건수와 비교할 때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예방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고민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마약 범죄가 파고들 여지도 커지고 있다. 최근 5년간 군에서는 모두 66건의 마약 관련 범죄가 발생했다. 아직까지는 일선 부대보다는 마약류를 취급하는 군병원의 관리소홀에 따른 것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육군 관계자는 “마약류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군복무가 늘어나면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마약류 확산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젠더 이슈도 풀어야 할 과제

변희수(사진) 전 하사는 남성으로 입대한 뒤 지난해 11월 부대장과 동료들의 지지 속에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에게 돌아온 건 업무 복귀가 아닌 의무조사.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53조’에 따라 심신장애 3급을 판정받고, 1월 16일 전역심사위원회 회부가 결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역심사위원회를 미루라고 권고했지만 국방부는 지난 1월22일,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국방부의 전역 결정에 불복하며 인사소청을 제기했지만, 변 전 하사를 향한 사회적인 시선은 냉담했다.

과거에도 젠더 이슈는 있었다. 이를테면 성별 정정 판결이 있을 때다. 당사자 신상은 익명으로 보도되곤 했었다. 그런데 변 전 하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직접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끝까지 복무하겠다며 시민단체와 이슈를 공론화했다.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군 인식과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으나 국방부는 요지부동이다.

변 전 하사에 대한 전역처분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간주할 사항이 아니며, 성전환한 남자 군인을 여군으로 전환해 복무시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는 입장이다. 국방부는 “성전환자의 군복무 허용과 관련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 군의 전투력 발휘, 군 조직의 단결 및 사기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할 사안으로 현재 관련법령 개정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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