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플방지] "조주빈, 악마 아냐..'씻을 수 없는 상처'도 없다"

박지혜 2020. 3. 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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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을 악마라 부르면 안되는 이유
'마이크' 쥔 조주빈, 쾌감 느낄 기회준 것
"악마 아닌 실패한 남성일 뿐"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조주빈은 악마가 아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없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의 성 착취물을 만들고 공유한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언론노조가 내린 긴급 지침 내용이다.

언론노조는 지난 23일 ‘성 노리개’, ‘씻을 수 없는 상처’ 등의 표현은 성폭력 피해를 ‘순결 훼손·회복이 불가능한 수치스러운 일’로 잘못 인식하게 하거나 피해자를 물건 취급함으로써 피해자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없게 한다며,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가해자를 ‘짐승’, ‘늑대’, ‘악마’ 등으로 표현하면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 해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며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 착취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저는 악마입니까?”

n번방을 모방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은 스스로 악마이길 원한 듯하다.

조주빈은 올 초 SBS ‘궁금한 이야기 Y’ 제작진과의 텔레그램 대화 말미, “PD님 보기에 저는 악마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제작진은 “아니요, 당신은 비열한 범죄자일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지난 24일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에 따라 얼굴을 처음으로 드러내며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주빈은 왜 악마이길 자처할까?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나는 찌질하지 않다’는 과시와 함께 더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포함돼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참조 이데일리 3월 25일 자 ‘악마 자칭·손석희 거론’ 조주빈…전문가들 “난 찌질하지 않다 과시”)

조주빈과 SBS ‘궁금한 이야기 Y’ 제작진이 주고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사진=SBS비디오 머그 방송 캡처)
◇ 누가 그에게 마이크를 줬는가

특히 서사가 있는 악마는 위험하다. 범죄를 관대하고 정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찌질한 범죄자가 희대의 악마처럼 허세를 부릴 수 있도록 누가 허락했는가”, “누가 그에게 마이크를 줬는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룹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마십시오”라는 글을 남겨 누리꾼 사이 공감을 얻었다.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도 “왜 중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주는 것일까? 그가 하는 어떤 이야기가 궁금한가? 나는 그가 궁금하지 않고 그가 받을 처벌만 궁금하다. 그의 범죄가 속속들이 밝혀질 것인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서 소장은 “왜 그가 제멋대로 말하도록 두는 것인가? 그에게 왜 그런 큰 권력을 주나?”라며 “자기가 상황을 통제하고 상대를 흔드는 힘이 있음에 쾌감을 느끼는 인간이다. 왜 그런 쾌감을 다시 느낄 기회를 주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세상을 흔드는 데 성공했고 피해자들은 허탈감에 상처를 입힌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악마 아닌 실패한 남성일 뿐”

‘그놈 목소리’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일 수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5일 “‘악마 같은 삶’이 아니다. ‘평범한’ 강간문화, 텔레그램 성 착취 반드시 끝내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성민우회는 “‘나는 n번방에 들어간 적이 없으며 n번방은 괴물 같은 일부의 소행일 뿐’이라며 악마화 하는 태도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현실의 성폭력을 외면하는 태도”라며 “사진·영상 매체를 활용한 여성 폭력은 ‘빨간 마후라’ 사건, 소라넷, 일간베스트(일베), 웹하드, 텀블러, 웰컴투비디오, 텔레그램, 라인, 디스코드 등 시대에 따라 매체를 달리하며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괴물로 표현될수록 일상적인 성폭력은 은폐된다”고 강조했다.

또 여성민우회를 비롯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8개 단체가 꾸린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 성 착취 네트워크를 끝장내려면 조주빈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조주빈은 숱한 성 착취 범죄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민 되기에 실패한 남성일 뿐”이라며 “그 이전의 수많은 가해자를 너그러이 방면한 검찰과 법원이 강력한 처벌로 응답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박지혜 (nonam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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