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범죄자 시선 불편" vs "함께 분노하자" 'n번방' 사건, 남녀 갈등 격화

한승곤 2020. 3. 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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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만 성착취 공범 제대로 처벌하라"
'n번방' 사건 두고 남성 '잠재적 범죄자' 취급 격론
서지현 검사 "성범죄와의 전쟁, 함께 분노하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주최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 20대 여성 직장인 A 씨는 최근 'n번방' 사건을 두고 남성 직장인 B 씨와 심한 말다툼을 했다. A 씨는 "n번방 사건 가해자 대부분이 남성이다. 최소한 이번 사건에서 남자들은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이 사건으로 남자들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누가 범죄자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B 씨는 "사건 심각성은 인정한다"면서도 "모든 남자들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남자들도 이번 사건을 두고, 너무 끔찍하다. 가해자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며 A 씨 주장을 일축했다.

미성년자 등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공유한 'n번방' 사건을 둘러싼 남녀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사건 가해자 대부분이 남성이다보니,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에 대해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이같은 성착취물 공유방 60여개 참여자를 단순 취합한 숫자가 26만명에 달한다는 여성단체들 주장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중복 인원이 상당수 포함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비슷한 성격의 방이 많아 이용자가 최소 수만명은 되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힘을 얻고 있다.

이렇다 보니 'n번방' 사건 관련 기사 댓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트위터 등 SNS에서는 이를 둘러싼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내 남자친구가 남사친이 아빠가 삼촌이 직장동료가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사람들 입장은 생각 안 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거냐고 하면...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명단공개 거부하는 건가요"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지금도 운전 못 하는 여자 김여사라고 부르면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은 하지 말래"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성들은 사건 자체 중대함은 인정하면서도, 너무 과한 지적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의 대학 익명 페이지에서 학생은 댓글로 "안타깝고 분노에 치를 떨 사건이긴 하지만 왜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는 거냐"며 "내가 그 사건에 가담을 했나, 아니면 동조를 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학생은 "오히려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멀쩡한 남성도 성범죄자가 된 것처럼 눈치 보인다"고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 서지현 검사 "성범죄와의 전쟁, 함께 분노하자" 남성들 분노 표출 독려

'n번방' 사건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비판을 두고 남녀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건은 성범죄라며 남성들의 공감대 있는 분노 표출을 부탁했다.

지난 22일 서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범죄자 아닌 남성분들 대신 화 내 드립니다"며 "'남자라면 야동 누구나 본다'며 모든 남성 잠재적 가해자 만들지 말라, '남자라면 야동 좀 볼 수 있지'라고 남성혐오 좀 부추기지 말라"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 문제는 결코 '남녀간의 전쟁'이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이다"이라며 "'야동'아니고 '성착취물'이 맞다"며 "성범죄와의 전쟁, 함께 분노해요"라고 강조했다.

이는 'n번방' 사건을 두고 일부 남성들이 자신들은 이 사건과 연관도 없는데, 마치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 검사는 지난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디지털성범죄를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 세계보다 가상 현실에서 범죄가 훨씬 잔혹하고 전파성이 강하다"며 "이제는 현실 세계의 범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년 남성들은 남자라면 다 야동을 본다고 얘기하지만 (n번방은) 야동이 아니라 성 착취물"이라고 강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야동은 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 모든 남자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디지털성범죄에)국민들이 더 많이 분노해야 한다"며 "지금 바꾸지 않으면 어쩌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남초 사이트에서 나를 테러하겠다는 내용이 있다"며 "혹시 몰라서 가족들에게 뒷일을 부탁한다는 얘기는 해놨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목숨을 내놓고라도 해볼 생각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 여변 "추가 피해 막기 위해 적극적인 법률지원"

한편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는 'n번방'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과 아동·청소년에 대한 법률지원에 나선다.

여변은 25일 "소위 'n번방'이라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여성과 아동·청소년에 대한 법률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여변은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의 수만 16명의 아동·청소년을 포함해 74명 이상에 이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이들의 고통을 묵과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법률지원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변은 디지털성범죄처벌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디지털성범죄 처벌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디지털성범죄처벌법) 제정도 촉구했다.

여변 조사에 다르면 20대 국회에 발의된 175건의 디지털성범죄처벌법 개정안 중 'n번방' 처벌 및 피해자보호법안 발의는 전무하다.

여변은 "그동안 국회와 정부가 국민들의 분노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번 n번방 성범죄에 가담한 공범들에 대한 신상공개 등을 통해 이러한 성범죄가 다시는 대한민국 땅에 발붙이지 못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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