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소, 한·일 통화스와프에 "누가 고개 숙이며 돈 빌려주나"

서승욱 2020. 3.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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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간담회서 6~7년전 협상 언급
"韓, 제발 빌려가라면 빌려간다더라"
스와프 연장 불발 책임 한국에 돌려
2017년에 밥상 걷어찬 건 아소 자신
당시 "돈 꿔주면 못 받는다" 주장하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라 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에 대해 일본 측 담당 각료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세균 총리가 지난 2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미국에 이어)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도 이뤄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직후였다.

아소 재무상의 관련 발언은 이날 오후 4시 50분부터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EPA=연합뉴스]


아소 재무상은 실제로 제안이 올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선 일단 말을 아꼈다. 하지만 과거 한국과의 협상 경험을 소개하면서 ‘일본으로선 아쉬울 게 없다’는 취지로 부정적인 심기를 드러냈다.

간담회 말미 기자로부터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 재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국에서 제기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아소 재무상은 먼저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의 이야기"라며 말문을 열었다.

"6~7년 전쯤 (스와프협정 잔액이) 일본은행에서 50(억 달러), 재무성에서 100(억 달러) 정도 남아있었는데, (한국에) '괜찮냐'라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것이(통화협력 규모가) 확 줄어든 것이다. 그때 ‘진짜로 괜찮냐’고 묻자 한국은 ‘(제발) 빌려 가 달라고 (일본이) 말한다면 못 빌릴 것은 없다’라고 하더라. (돈을 빌려주는 쪽이) 머리를 숙이고 '빌려 가 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협상에서) 철수했다. 그게 끝이다. 스와프에 대해 한국과 있었던 일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돼 있는지 잘 모른다"

기자가 재차 "협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아소는 "가정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라고만 했다. 한국의 공식 요청이 없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양국이 필요할 때 서로 통화를 교환하는 한·일 통화스와프는 2001년 20억 달러 규모로 시작됐다. 이후 외환 시장의 사정과 양국 관계의 추이에 따라 규모가 늘었다 줄었다 했고, 2011년 한때는 700억 달러 이상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지난 2018년 4월 11일 일본 중의원에 나란히 출석한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로이터]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의 여파로 이후 증액분이 갱신되지 않았고, 2013년 7월 두 나라 중앙은행간 협정이 만료됐다.

아세안+한·중·일이 체결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체제 속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양국간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교환 협정까지 2015년 2월 만료되면서 양국간의 통화 협력의 끈은 완전히 끊겼다.

아소 재무상이 말한 6~7년 전이 정확하게 어느 시점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로 협정 만료를 앞둔 2013-2014년 양국간에 오간 대화를 지칭하는 듯하다.

아소 재무상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이 '협정이 연장되지 않아도 괜찮은지' 계속 의사를 타진했지만, 한국이 '일본이 원한다면 하겠다'는 식의 딱딱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연장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의 일은 그게 끝이었다”는 아소 재무상의 발언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양국은 지난 2016년 8월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재추진에 일단 합의했다.

2016년 8월 당시 유일호(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국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제7차 한일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정부 시절인 당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의 회담에서 협의 개시에 의기투합한 사람이 바로 아소 재무상 자신이었다.

하지만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 문제가 발생하면서 2017년 1월 일본 정부는 진행 중이던 스와프 협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당시 아소 재무상은 소녀상 설치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에 돈을 빌려주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따져보면 가장 최근 한·일 스와프 협정 재개의 밥상을 걷어찬 것은 일본 정부, 특히 아소 재무상 자신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최근 협상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스와프 협정 연장 불발의 모든 책임을 한국 측에 뒤집어씌운 것이다.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돈 빌려주는 쪽이 머리를 숙인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다"는 발언도 향후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양국간 협정으로 한국만 혜택을 보고, 마치 일본은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듯한 모욕적인 언사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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