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미투·n번방, 여성이 피해자" vs "모든 남성을 가해자 취급말라"

송유근 기자 2020. 3. 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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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례로 보는 일상화된 젠더 갈등

미투 동의 女 “62%”-男 “45%”

허위 미투·묻지마 여론 재판에

남성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아

남성 누드모델 몰카 찍었던 여성

징역 10월刑 받아 논란되기도

“女가해자에 엄격한 잣대 적용”

강남역 살인후 女시위 본격화

‘혜화역 시위’ 현안마다 목소리

“전체를 양분화해 대립할 땐

男女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어”

남녀 간 성 역할의 차이·차별에서 비롯되는 젠더 갈등은 이제 관련 학계나 단체들의 논의 수준을 넘어 현실적 사건과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거리에는 여성들의 권익과 범죄 피해 방지를 요구하는 ‘집단화된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울려 퍼지고, 각종 온라인 기사에는 관련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늘 성별 간 갈등을 지적하는 댓글이 붙어 다닌다. 이는 단지 불공정했던 전통적인 성 역할이 현대적 성 역할 관계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과의례일 수도 있지만, 특정 성별이 피해를 입는 돌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커다란 이슈가 돼 사회 통합을 저해하기도 한다. ‘미투’(Me Too) 운동을 비롯해 리얼돌(여성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 수입 문제 등으로 계속 표출되고 있는 젠더 갈등은 성별에 따른 불공정을 해소하고 통합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여권신장 VS 남성 역차별의 대결 구도로 번진 ‘미투’ = 지난 2018∼2019년 미투 운동으로 논란이 터질 때마다 이를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태도 차이로 인해 젠더 갈등도 함께 불거졌다. 우선 미투 고발로 폭로의 대상이 된 가해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건들을 계기로 여성 인권이 신장돼야 한다는 요구가 지배적이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미투 운동 초반에 이 같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일부 근거가 미약한 미투 고발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을 상대로 금전을 노린 허위 미투까지 발생하자 남성들의 반발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미투 분위기에 따라 일반 남성들까지 경계의 대상이 되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가 왜 잠재적 범죄자인가” “우리는 기득권이 아니다”라며 반발하는 남성도 적지 않았다.

실제 성폭력 가해 여부는 개별 사건들의 조사 결과에 따라 진위가 가려졌지만, 미투 운동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전반적 인식은 큰 괴리를 형성하고 말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Ⅴ)’ 보고서에 따르면 ‘미투 운동 취지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성별을 불문한 전체 응답자의 43.53%는 ‘동의한다’, 10.14%는 ‘매우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및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각각 11.28% 및 4.45%에 불과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미투 운동의 취지를 인정하는 조사 결과다.

그러나 응답자를 성별로 나눠 들여다봤을 때는 판이한 결과가 나타났다. 응답자 중 여성은 62.42%(매우 동의 13.30%, 동의 49.12%)가 동의한다는 취지로 응답했지만, 남성은 45.19%(매우 동의 7.09%, 동의 38.10%)만 동의한다는 취지로 답했기 때문이다. 해당 조사에서 ‘미투 운동의 성별갈등 해소 효과’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64.7%(매우 도움 12.4%, 어느 정도 도움 52.3%)가 성차별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응답도 35.2%(별로 도움 안 됨 30.5%, 전혀 도움 안 됨 4.7%)나 됐다. 국민 3명 중 1명은 미투 운동의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공포, ‘불법 촬영’도 젠더 갈등에 기름 = 미투 운동 전개에 따라 여성에 대한 물리적·정서적 성폭력이 사회적 경계 대상이 되는 사이, 고성능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급증한 불법 촬영(몰카) 범죄도 젠더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달 법무부가 지난 2008∼2018년 사이의 성범죄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를 저질러 신상공개 등록 대상자가 된 사람은 2008년 0건이었지만, 2013년 412건을 처음 기록하기 시작해 2018년에는 2388건에 달했다. 이 기간 등록대상자 총계는 강제추행이 3만3020건(44.1%), 강간 등이 2만2849건(30.5%)이었고, 2013년부터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은 9317건(12.4%)을 기록해 세 번째로 많은 유형에 올랐다.

법무부는 “여성은 성폭행 범죄보다 불법 촬영에 더 높은 불안감을 느낀다”며 “피해자가 일상생활 중 부지불식간에 촬영을 당하고, 한 번 배포된 영상을 영구히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불법 촬영 범죄 피해자 대다수는 여성이지만, 남성이 피해자가 된 일부 사건도 잇따르며 추가적인 논쟁을 일으켰다. 여성 우월주의 사이트 ‘워마드’에서 지난 2017년 남성 몰카 사진이 수차례 유포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8년엔 한 회원이 홍익대 회화과 인체 크로키 수업 중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해 게시했다가 1심과 2심에서 각각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여성 가해자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편파 수사·판결’ 논란으로 이어졌고,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시위를 주최했던 ‘불편한 용기’ 측은 “남성이 피해자고 여성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해당 회원이 이례적으로 구속됐다”고 주장했다.

◇‘리얼돌’에도 날 선 공방 = 리얼돌 논란은 리얼돌이 여성들을 본뜬 인형이란 점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 또는 상품화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앞서 젠더 갈등의 소재가 된 성폭력 미투 운동이나 몰카 범죄와 달리 직접적인 피해자를 내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를 두고 남녀 집단 혹은 찬반 진영은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6월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 허가 판결이 나면서부터다. 이후 리얼돌 수입이 가능해졌고, ‘리얼돌 체험방’ 역시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리얼돌 수입에 찬성하는 측의 논리는 대법원 판결의 요지와 같다. “개인의 사적 영역인 성적 취향 문제 등에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토론토 등에 리얼돌을 이용한 집창촌이 있고, 이것이 순기능으로 작동했다는 주장도 편다.

반면 여성 단체나 리얼돌 반대 진영은 이에 대해 불쾌감을 보이고 있다. ‘성기구(리얼돌)의 여성화’가 ‘여성의 성기구화’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리얼돌 체험방이 “사실상 성매매 아니냐”는 주장도 내세운다. 성인용품을 이용해 성적 욕망을 해소하지만, 그 과정에서 돈을 내는 행위 자체가 성을 매매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직은 극히 일부의 리얼돌만 유통·소비되고 있지만, 보다 대중화될 경우 첨예한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집화된 여성의 목소리 ‘혜화역 시위’ =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젠더 갈등을 자극할 만한 일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주로 피해자 입장이었던 여성들은 집단화·조직화된 움직임으로 사회적 요구를 이어왔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주최 측 추산 1500여 명의 여성이 ‘여성만 참여 가능한 시위’를 1년 만에 벌였다. 2018년 5월 불법촬영 관련 경찰 수사를 규탄하며 시작된 이른바 ‘불편한 용기’ 시위가 그해 12월 6차 시위를 끝으로 중단됐지만, 지난해 한 달여 간격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 아이돌 그룹 출신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을 계기로 재집결한 것이다. 이들은 “(구하라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불법 촬영 영상 유포 협박의 대상이 됐다”며 “두 연예인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쉽게 (여론의) 공격을 당했다”고 외쳤다.

이 같은 ‘다수·익명 여성들의 시위’는 지난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본격화됐다. 당시 여성들은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공간을 마련해 추모 메모와 흰 국화꽃을 놓으며 분개했다. 또 SNS상에서는 성폭력 피해 공론화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요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녀나 특정 젠더 구분 없이 가능한 것이지만, 특정 젠더 전체를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양분하는 일방적 인식은 젠더에 따른 불공정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의 골을 깊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송유근·김수현·조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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