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만나는 동상 [정동길 옆 사진관]

김기남 기자 2020. 3. 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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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광하문 연가’의 무대인 정동교회 앞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비/김기남 기자

따스한 봄날 유유자적 서울 도심을 걷다보면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수 있는 문화창작자들의 모습과 발자취를 만날수가 있다. 정동길, 새문안로, 종로, 성북동길 등 걷기 좋은 길들에서 만날 수 있는 동상들이 봄날의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준다.

위의 사진은 2009년 2월14일 정동길에 세워진 작곡가 고(故) 이영훈을 기리는 헌정 노래비 모습이다. 평생 대중가요 작곡에 열정을 쏟으며 즐거워했던 모습을 마이크와 함께 담았다. 또한 고인이 암투병을 하면서도 작곡하고 가수 이문세가 히트시킨 ‘광화문 연가’의 주무대인 정동교회 앞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처럼 봄꽃이 만발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고(故)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비를 스쳐가며 누구나 한번쯤은 광화문 연가의 가사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작곡가는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환한 웃음으로 들려주는 그의 노래는 정동길의 4계절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종로 교보문고 옆 길의 염상섭 벤치 / 김기남 기자

근대 대표 문학인이자 언론인인 횡보(橫步) 염상섭의 벤치가 2014년 4월1일 종로 교보문고 옆에 자리를 잡았다. 1996년 문체부와 문학의해 조직위원회가 교보생명·교보문고의 협찬을 받아 종묘광장 입구에 설치했으나, 2009년 종묘광장 정비사업에 따라 삼청공원으로 밀려나는 우여곡절 끝에 시민들과 쉽게 만날수 있는 이곳에 자리를 잡은지 벌써 6년째이다.

벚꽃 그늘아래 염상섭 벤치/ 김기남 기자

염상섭은 1893년 종로에서 태어난 종로 토박이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같은 소설을 통해 신문학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유명한 그의 호 횡보(橫步)는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모로 걷는다는 뜻이다. 지금 세상도 그와 같아서 옆으로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횡보하고 있는 듯 하다. 평소 같으면 만남의 장소로 많은 이들이 북적이던 이곳이 ‘코로나 19’의 여파인지 썰렁하다. 하지만 횡보(橫步) 염상섭은 언제든 꽃그늘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벤치를 지키고 있다.

성북동 심우장 입구의 만해 한용운 동상/ 김기남 기자

성북동 북정마을 아래 골짜기엔 햇볕 들지않는 항일지사의 옛집 ‘심우장’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심우장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참여했고, 시집 <님의 침묵>으로 알려진 문학가, 독립운동가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다. 특이하게도, 정면이 북쪽을 향한 심우장은 1933년 집터를 잡을 당시 서남쪽 방향의 총독부가 꼴보기 싫다며 반대인 동북쪽으로 틀어서 지었다. 만해 한용운이 직접 지어서 44년 타계 때까지 그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심우장에 오르는 길가에 그의 동상과 대표시인 ‘님의 침묵’ 새겨져 비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새문안로 안쪽에 자리잡은 한글사랑 문학자 주시경과 호머 힐버트/ 김기남 기자

새문안길 ‘이야기를 잇는 한글가온길’을 따라서 걷다보면 도심 속 빌딩과 빌딩 사이에 마련된 아담한 규모의 녹지 공간을 접한다. 그리고 그곳의 끄트머리쯤에는 오가는 이를 반기듯이 서 있는 주시경 선생과 구한말의 이방인 독립유공자 호머 헐버트 선생 입상 부조를 마주할 수 있다. 개화기의 국어학자인 주시경선생은 우리글의 문법을 처음으로 정리해 한글의 이론을 체계화했고 우리글 이름, ‘한글’을 지었다. 애석하게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결코 길지 않은 생이었으나 선생이 이 땅에 남긴 업적은 태산보다 큰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이야기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호머 헐버트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사만화가 시작된 종로 수진궁터 조형물과 만평/ 김기남 기자

2016년 6월2일 서울 종로구 옛 대한민보 터(삼봉로 71, 지타워 앞)에 한국만화 탄생지 기념조형물 세워졌다.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만화가 한국만화의 시작임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이도영 화백은 약 2개월동안 ‘삽화’라는 계몽적 만화의 베목으로 양복입은 서양신사가 사행시를 뿜는 모양으로 일제의 야만적 침략행위를 꾸짖고, 친일파들의 반민족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종로소방서는 조선시대의 소방담당청인 금화도감 옛터/김기남기자

종로소방서 입구에는 손을 흔드는 소방관의 캐릭터가 세워져 있다. 지금의 종로소방서는 1426년(세종 8년) 2월에 화적(火賊)의 방화로 큰불이 일어나자, 곧 금화도감을 설치하여 화재의 방지와 개천과 하수구의 수리 및 소통을 담당하게 하고, 화재를 이용한 도적들을 색출하게 했던 금화도감(禁火都監)의 옛터다.

경복궁이 지척이었던 이자리에 옛 선조들도 빠른 화재대비를 위한 소방서 같은것을 설치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한 컷!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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