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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곤경'에 빠진 트럼프, 다시 북한에 눈길?

입력 2020.03.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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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태도 변화 필요하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관과 장애를 견인하고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9년 6월 30일에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가 말한 "신비로운 힘"이란 "우리 각하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관계"였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간의 오랜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북한은 연말 시한이 넘어가자 '개인 간의 관계'와 '국가 간의 관계'를 명확히 구분 짓기 시작했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1월에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생일 축하 친서를 보낸 것을 두고 "그런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혹여 우리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두 달 뒤에도 트럼프는 코로나 방역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며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냈다. 이를 두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두 수뇌분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두 나라 사이의 대립관계처럼 그리 멀지 않으며 매우 훌륭하다"면서도 북미관계는 "개인적 친분관계를 놓고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되며 그에 따라 전망하고 기대해서는 더욱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도 북한의 이런 입장은 거듭 확인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25일(현지 시각) "북한의 불법적 핵·탄도 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북한은 외무성 신임대미협상국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조미수뇌들 사이의 특별한 개인적 친분관계에도 불구하고 조미관계가 계속 꼬여만 가는지"에 대해 "폼페이오가 명백히 해주었다"며, "우리는 폼페이오의 이번 망발을 들으며 다시금 대화 의욕을 더 확신성 있게 접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신비로운 힘"을 믿었던 북한은 왜 개인적 친분과 국가간의 관계를 구분짓고 있는 것일까? 우선 북한은 미국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세 차례의 정상간의 만남이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에 이용당했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 수락한 2018년 3월 8일에는 미국 여배우의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트럼프의 변호사는 대선 직전에 스테파니 클리포드에게 13만 달러를 주면서 트럼프와의 성관계에 대해 함구를 요구했는데, 그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계약이 무효라고 선언할 예정이었다. 악재를 만난 트럼프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들고 백악관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백악관 기자실에서 생중계로 북미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언론이 뉴스 속보로 이 소식을 전했고 이를 접한 클리포드는 기자회견을 연기했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 노딜' 때에는 트럼프의 전직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헨의 의회 증언이 변수로 등장했다. 청문회에 나선 코헨은 트럼프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칭하면서 맹폭을 가했고, 이는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정상회담에 집중할 수 없었던 트럼프는 언론의 헤드라인을 바꾸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노딜'을 통해서 말이다. 실제로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코헨의 청문회에서 하노이 노딜로 바뀌었다.

판문점 번개팅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에 김정은에게 판문점 깜짝 회동을 제안했고 결국 성사되었다. 트럼프의 이 '깜짝쇼'도 미국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6월 말은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이 시작된 때였고 미국 언론의 보도도 이 내용이 주를 이뤘다. 트럼프가 G20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활약상(?)에 대한 언론 보도가 많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이것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의 깜짝 제안으로 성사된 남북미 3자 정상들의 판문점 회동은 민주당 경선 소식을 밀어내고 언론의 최대 화젯거리가 되었다.

북한으로서는 설상가상인 상황도 반복되었다. 트럼프가 약속한 것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과 한미연합훈련 중단 약속이 대표적이다. 또한 트럼프는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서도 대북 제재는 오히려 강화시켰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에 당한 것이라고 여길 법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를 결산한 북한의 입장은 분명해졌다. 트럼프의 개인기에 더 이상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미국이 진심으로 북미대화를 원한다면 "적대시 정책 철회"를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이를 거부한다면 "대화든, 대결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맞설 수 있는 힘을 "정면 돌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도 발견된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 행정부까지 관통해온 미국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북한이 이와 유사한 화법을 쓰면서 미국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에도 거듭 확인된다. 외무성 신임대미협상국장의 담화에선 트럼프가 3월 초에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를 두고 "미국 대통령이 자기에게 유리한 시간과 환경을 벌기 위해 유인책으로 꺼내든 대화간판"이라고 칭했다.

이 표현의 행간에는 코로나 사태로 곤경에 처한 트럼프가 국면 전환을 위해 북미회담을 제안한 것이라는 북한의 해석이 깔려 있다. <CNN> 등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2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재선 가도에 북미정상회담이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트럼프가 갑자기 태도를 달리한 데에는 정치적 속셈에 깔려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세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는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북미 양측 모두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데이트 폭력'부터 중단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 의사를 강조하고 있지만, '큰 병 주면서 찔끔 약 주겠다는 방식'은 결코 통할 수 없다.

또다시 '힘'을 강조하고 있는 북한도 명심해야 할 대목이 있다. 북한에게 부족한 것은 '하드파워'라기보다는 치밀하고도 담대한 외교전략인 '소프트파워'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는 미국의 노림수를 어항속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듯 보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세 차례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이룬 게 없다는 북한의 결론은 그만큼 미국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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