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석의 염' 이렇게 나왔다..30년 전 외교 비화

김아영 기자 입력 2020. 3. 31. 21:18 수정 2020. 3. 3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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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과거 한일 양국이 아키히토 일왕의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추진했던 사실이 오래전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30년이 지나 비밀이 해제된 1989년 외교문서 속 내용들을 김아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1989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기록한 외교 문서입니다.

이듬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 방일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일본 측은 일왕의 최초 해외 방문으로 한국 방문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다며 노 대통령이 말을 꺼내면 그런 취지로 답하겠다고 했습니다.

과거사 문제를 의식한 듯 미묘한 상황 잘 안다, 은밀히 답변 듣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두 달 뒤 차관 회담에서는 구체적으로 4~5월 방한을 희망한다며 유연한 검토 바란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실무선에서는 우리가 구두 초청하는 안이 검토됐고 주일 대사관은 환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올렸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사죄한다며 언급한 이른바 '통석의 염'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아키히토/당시 일왕(1990년 5월) :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면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죄 표현치고는 모호하다는 논란에 일본의 우경화까지 겹쳐 방한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오늘(31일) 일반 공개된 1989년 외교 문서 1,500여 건에는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6억 5천만 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합의 의사록 등 이른바 북방정책, 동유럽 수교 과정의 비화들도 담겨 있습니다.

(영상취재 : 정성화, 영상편집 : 이승열) 

김아영 기자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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