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응답하라, 외교부
"진짜 답답하네요. 왜 외교부 대변인실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겨우 통화가 돼도 답을 안 주나요?"
외교부에 출입한 지 얼마 안 된 동료 기자가 하소연을 해왔다. 외교부가 며칠 전 국산 코로나 진단키트의 대미(對美) 수출과 관련한 '설익은 발표'로 관련 업계가 아수라장이 됐는데도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아 속이 터진다고 했다. 회사에선 '외교부 입장'을 취재하라는 지시가 계속 내려오는데 외교부가 모르쇠로 일관해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얘기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사건은 외교부가 토요일인 지난 28일 예고 없이 "코로나 진단키트가 미 식품의약국(FDA) 사전 승인을 받아 수출이 가능해졌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당사자인 의료·진단 업체들은 "'사전 승인'이라는 절차나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고, 관련 통보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당장 '가짜 뉴스'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당시가 코로나 관련 방역·진단 업체들 주식이 '테마주'로 언급되며 연일 주가가 요동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외교부 보도자료는 이처럼 민감한 시장에 불을 질렀다. 투자자들 사이에 루머가 급속 확산됐고, 일부 업체는 접속자 폭주로 웹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외교부의 해명을 듣기 위해 언론의 취재가 이어졌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외교부는 주말 내내 단 한 줄의 추가 설명도 내놓지 않다가 일요일(29일)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국내 업체 3곳의 진단키트 제품이 '잠정 FDA 승인'을 받았다" 했다. 논란이 된 '사전 승인'이란 말을 '잠정 승인'이란 용어로 슬쩍 바꿔놓은 게 다였다. 왜 용어를 바꿨는지, 사전 승인과 잠정 승인은 뭐가 다른지 등에 대한 추가 설명은 없었다.
외교부 담당자의 브리핑은 월요일(30일) 오전에야 열렸다. 긴 변명에 앞서 최소한 "혼선을 초래해 송구하다"는 한 마디 정도는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익명에 숨은 이 당국자는 "'사전'이든 '잠정'이든 논란이 될 필요가 없다. 확실한 건 이번 조치로 수출이 된다는 것"이라며 외교부를 비판한 언론에 대해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요즘 외교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에서 교민들이 고립되고, 혐오 범죄에 노출되는 등 매일매일이 비상이다. 이 와중에도 우리 외교부는 "한국 방역이 세계 최고"라는 자화자찬성 홍보에 치중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사전 승인' 소동도 며칠 전 한·미 정상 통화의 성과로 급히 포장하려다 벌어진 사고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걸핏하면 '적폐'로 모는 정권에서 공무원으로 살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부탁하고 싶다. 정권 홍보도 좋지만 사고를 쳤으면 제때 설명이라도 해달라. 응답하라,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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