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3특별법' 공포 후 진상조사에서 멈춰버린 피해자 명예회복

박미라 기자 2020. 4. 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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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피해구제’ 개정안 폐기 수순

지난해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제주도민과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제주4·3’이 발생한 지 72년이 지났지만 역사적 평가는 진상조사에 멈춰있다.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피해구제를 위한 4·3특별법 개정안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한 채 자동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진상조사, 미국의 책임과 역할 규명, 4·3 정명찾기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하다.

4·3 70주년이었던 2017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4·3희생자유족회와 4·3단체, 제주 출신 국회의원 등이 한데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정안은 법률 명칭에 ‘보상’이라는 단어를 넣어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아예 변경했다. 2000년 공포된 4·3특별법은 당시 금기로 여겨졌던 4·3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진실을 규명하는 진상조사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명예회복과 피해구제에는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때문에 개정안에는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과 이미 사법부에서 불법으로 판단한 군사재판의 무효화, 4·3의 진실을 왜곡하며 희생자와 유족을 명예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4·3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희생자에 대한 피해구제, 국가의 책임과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다수 담았다.

4·3평화재단은 17년 만에 발간한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 1권>을 통해 4·3특별법 제정의 1단계가 진실규명, 국가차원의 추념이었다면 이제는 피해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배상이라는 2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 4·3특별법의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전망된다. 20대 국회에서 4·3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된 것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2018년 9월11일과 2019년 4월1일 단 2차례다. 이 역시 특별한 결론 없이 계속 심사로 마무리됐고 추가 심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정안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한 배경에는 큰 예산이 수반된다는 점에 부담을 느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여야의 계속된 정쟁 등으로 인해 회의 자체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던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4·3특별법 개정안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총선을 앞둔 시점에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4·3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은 문제를 놓고 여야가 네 탓 공방을 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고, 더 이상 정치인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올해부터라도 논의가 되어서 우리의 염원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송 회장은 “생존희생자와 유족 대부분 고령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진상조사, 미군정 사과, 명예회복까지 마무리돼 4·3에 바른 이름을 붙이고 추념식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현재 4·3생존희생자는 131명에 불과하며 최고령은 1921년생으로 99세, 최연소도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당시 피해가 인정된 1949년생으로 71세다.

전국 12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4·3특별법개정쟁취를위한전국행동은 추가진상조사에 속도를 내 4·3 당시 진압작전에 대한 지휘체계, 미국의 역할과 책임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4·3전국행동 한 관계자는 “4·3은 미군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던 시기에 공권력의 잘못으로 2만5000명에서 3만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된 사건으로, 미국 역시 4·3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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