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계 노벨상 받은 '구름빵' 작가 "절망에서 일어설 계기 돼"

선명수 기자 입력 2020. 4. 1. 21:03 수정 2020. 4. 2. 09: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백희나 작가, 한국 작가 최초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지난달 31일 아동문학계의 노벨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백희나 작가. 이석우 기자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둠이 짙다고 하더니, 이 상이 절망 속에 주저앉아 있던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림책 <구름빵> <달 샤베트> <알사탕> 등으로 독자와 만나온 백희나 작가(49)는 “아직 수상 소식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백 작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LMA)’을 수상했다. 올해는 67개국, 240여명의 작가가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서 한국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작권 불공정 계약 세상에 알려

“보잘것없는 작가 권리에 절망

아이들 위한 문화 존중받기를”

심사위원장 유튜브 생중계 발표

“고독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책 무대서 영화처럼 제시”

태국에 체류 중인 백 작가는 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1월에 <구름빵> 저작권 2심 판결이 난 이후에 심신이 많이 지쳐 있어서 말 그대로 살아만 있었다”며 “후보에 오른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제 갑자기 전화를 받아 소식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이 상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스웨덴의 유명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을 기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2002년 제정한 국제 문학상이다. 상금만 50만크로나(약 6억원)에 달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심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수상자는 세계 최대 규모 아동문학 박람회인 2020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럽 대륙을 강타한 코로나19로 도서전이 연기되면서 스톡홀름에 있는 린드그렌의 집에서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자 발표는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보엘 웨스틴 심사위원장은 백 작가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경이로운 세계로 가는 출입문”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회는 “백 작가는 소재와 표정, 몸동작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고독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책 무대에서 마치 영화처럼 보여준다”며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아찔하며 예리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직접 만든 종이 인형을 소재로 그림책을 만드는 백 작가의 작업 방식에도 주목했다. 심사위원회는 “백 작가는 데뷔 이후 독창적인 세계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의 기법은 팝업북뿐만 아니라 종이 인형과 종이 장난감 책이라는 오랜 전통과 연결된다”며 “고도로 독창적인 기법과 예술적인 해법을 통해 이 장르를 개발하고 재탄생시켰다”고 평했다.

2005년 볼로냐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는 등 일찍부터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작가지만, 그의 작품 활동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백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스웨덴 현지 언론도 그의 첫 작품인 <구름빵>이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작가는 그 성공에서 철저히 배제됐다고 보도했다.

백 작가 스스로도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작가로서 평탄하지 않았고 너무 심한 좌절을 시작부터 겪었다”며 출판사와의 오랜 저작권 소송을 언급했다. 2004년 출간된 백 작가의 대표작 <구름빵>은 저작권을 출판사에 일괄양도하는 불공정 ‘매절 계약’의 대표적 사례다. <구름빵>은 이후 TV시리즈와 뮤지컬 등으로도 제작되며 4400억원 규모의 부가가치를 냈지만, 백 작가에게 돌아온 것은 1850만원뿐이었다. 백 작가는 출판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지난 1월 2심에서도 패소했다. 백 작가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지난한 법정 싸움으로 출판계의 불공정 계약 문제를 세상에 알렸지만, 백 작가는 마음과 몸이 많이 지쳤다고 했다. 그는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지만 너무나 처참하게 패소했고, ‘우리 사회에서 작가의 권리란 것이 이렇게까지 보잘것없었구나’라는 생각에 타격이 심했다”면서 “1년에 한 편씩 작업을 해왔지만 지난해부터는 손을 놓고 있었다. 다시 또 다른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절망적인 상태였다”고 했다. 그는 “자신감을 잃어가던 차에 좋은 소식을 들으니, 다시 일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최근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양도 규정으로 작가들의 수상 거부가 이어진 것을 두고서도 “제가 재판에 나선 것도 이길 수 있다는 낙관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처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며 “조금이라도 길을 닦아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작가들도 저작권에 대해 인식을 갖고, 출판사도 작가의 권리를 너무 쉽게 보지 않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 작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이 스웨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아동·청소년 문학 종사자들에게 부여하는 상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상이 아동·청소년 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종사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만든 상이라고 들었어요. 우리나라는 최근 ‘n번방 사건’도 있었고, 노키즈존 등 아이들 인권이 여전히 낮잖아요. 아이들이 하물며 그런데 그들을 위한 문학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위치는 더 보잘것없죠. 이번 수상이 아이들과 아이들을 위한 문화가 존중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