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은 별따기, 현장은 새벽부터 장사진" 홀짝제도 안 듣는 소상공인 대출 대란

윤태석 입력 2020. 4. 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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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경영안정자금 본격 시행 첫날 소진공 센터 가보니

1일 오전 7시경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 몰린 상인들의 모습. 선착순 43명에게 주어진 번호표를 받지 못한 이들이 소진공 직원에게 일제히 항의하고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온라인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어 직접 왔는데 새벽부터 줄 서도 접수가 안 되면 도대체 어떡하란 말입니까?”

1일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대출을 받으려고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서울중부센터를 찾은 이모(58)씨의 하소연이다. 이 대출 제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본 신용등급 4등급 이하 소상공인이 보증서 없이 소진공에서 1,000만원(특별재난지역 1,500만원)을 5일 안에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로, 이날은 일주일 간의 시범운영을 마치고 제도가 본격 시행된 첫날이었다.

◇예약제ㆍ홀짝제 무색한 혼잡

중구에서 인쇄업을 하는 이씨는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대출을 받기 위해 며칠 전부터 온라인 사전 예약을 시도했지만 접속자가 몰린 탓에 번번이 실패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은 소진공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다음날 센터에 방문해 대출을 받는 시스템이다. 할 수 없이 이씨는 현장 접수를 하러 이날 오전 6시30분에 중부센터를 찾았지만 허탕을 쳤다. 그에 앞서 줄을 선 사람 40여 명만 선착순 번호표를 받은 것이다. 오전 3시부터 와서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는 말에 김씨는 “앞으로 24시간 내내 이 앞에서 대기하라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저신용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대출이 본격 시행됐지만 시범운영 기간 중 빚어진 혼란상은 여전했다. 병목현상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홀짝제’나 ‘대출창구 다변화’ 등의 긴급대책도 아직 효과가 없는 모습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진공은 지난달 25일부터 1주일 간 전국 62개 소진공 센터에서 직접대출 시범운영을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각 센터마다 수백 명의 소상공인이 몰리며 마스크 구매 못지않은 대란이 벌어지자 정부는 홀수 날에는 출생연도가 홀수인 사람, 짝수 날에는 짝수인 사람만 대출 신청이 가능한 홀짝제를 도입했다. 또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소상공인은 시중은행(1~3등급)과 기업은행(1~6등급)에서 3,000만원 한도 안에서 같은 금리(연 1.5%)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창구를 넓혔다. 그러나 여전히 소진공 센터는 수많은 상인들로 북새통이다.

1일 서울 영등포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서부센터에 붙은 안내문. 신용등급이 좋은 소상공인들은 시중은행, 기업은행 대출을 이용하라는 내용이다. 뉴시스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사전 예약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당초 소진공은 온라인 사전 예약 시스템이 정착되면 대기 시간 없이 방문과 대출 신청, 약정이 ‘원스톱’으로 진행될 거라 자신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각 센터별로 사전 예약 인원이 하루 30명 안팎으로 제한돼 있어 오픈과 동시에 마감되기 일쑤다. 이날 중부센터를 찾은 한 상인은 “온라인 사전 예약 성공이 복권 당첨보다 어려운 것 같다”고 혀를 찼다.

현장 접수가 가능한 인원도 하루 40명 안팎에 불과하다. 종로구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는 김모(59)씨는 이날 오전 5시도 안 돼 중부센터로 와 줄을 선 끝에 12번을 받았다. 이른 새벽부터 대기해야 겨우 번호표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중기부는 소진공 센터 인력을 감안했을 때 하루 처리 건수를 당장 확대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범운영 기간 동안 직접대출 하루 처리 건수가 234건(3월 25일)에서 1,418건(3월 30일)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아직 시행초기이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이라 현장에서 적응하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온라인 사전 예약제와 홀짝제가 자리 잡으면 현장 혼란도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도가 하루빨리 정착돼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은행 대출창구는 다소 한산

신용별 대출창구 분산에 따라 시중은행과 기업은행에서도 소상공인 대출이 시작된 이날 대다수 영업점에서는 소진공처럼 줄을 길게 늘어서거나 번호표를 뽑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대출 가능한 신용등급인지, 필요 서류는 무엇인지 등을 묻는 전화가 하루 종일 쉴새 없이 울렸다.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우리은행 부천테크노파크점 역시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은행 관계자는 “본인 신용등급으로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한지 묻는 소상공인이 다수였다”며 “앞서 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을 받았는데 중복 대출이 가능한지 묻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이날 서울 시내 은행 지점 8곳을 돌며 현장점검에 나섰다. 은 위원장은 창구를 방문한 고객들에게 “줄은 서지 않았느냐” “서류 준비에 어려움은 없느냐” 등을 묻고 대출창구 분산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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