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놓친 라임사태, 수사 속도 내야하는 까닭[서초동 36.5]

배성준 부장 2020. 4. 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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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많은 사건들이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모여 듭니다. 365일, 법조타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체온인 36.5도의 온기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금융 뉴스에 자주 회자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폰지 사기(Ponzi Scheme)다. 미국에서 희대의 다단계 금융사기극을 벌였던 찰스 폰지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자본금 없이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를 끌어 모은 다음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을 받아 앞 사람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사기수법이다. 폰지는 1919년 12월 보스턴에 증권거래회사를 차리고 45일 후 원금의 50%, 90일 후 원금의 100% 수익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당시 은행금리가 5%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얼마 후 폰지 방식이 한낱 금융피라미드였음이 드러나면서 그는 순식간에 파산하고 사기 혐의로 구속됐지만 로비를 해왔던 정관계 인사들의 힘을 빌려 보석으로 풀려났다. 어쩐지 뒷맛이 쓰다. 우리 경제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온 라임사태와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터질게 터졌다’라는 것이 라임사태를 보는 업계의 첫 반응이었다. 실제 라임이 투자를 감행한 일부 코스닥 사(社)는 당장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실적 부실기업이었다는 것이다. 이상 징후를 발견한 곳도 증권가였다. 지난해 7월, 라임자산운용사가 펀드의 환매를 다른 펀드의 판매대금으로 돌려막기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금감원이 실사에 나서면서 부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사태의 핵심 주범들이 종적을 감추면서 어떤 이유에서건 검찰이 늑장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수사를 진행했던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해 9월 이미 이종필 전 부사장 등 핵심인물들의 횡령, 부정거래 등의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진행하고도 즉각 신병 확보에 나서지 않았다. 10월에 펀드 환매중단을 선언하자 박모 부회장 등 리드 관계자 6명을 기소했지만 이 전 부사장 등 핵심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몸통’은 놓치고 ‘깃털’만 기소한 모양새가 됐다.

그간 증권범죄합수단은 ‘여의도 저승사자’라 불려왔다. 천명에 가까운 증권범죄 및 기업사냥꾼들을 소탕하며 공을 세웠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스폰서 검사’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검찰개혁안에는 합수단의 해체가 포함됐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부터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두 쪽으로 갈라져 조국 아웃과 검찰개혁을 외쳤다. 청와대와 검찰은 힘겨루기를 벌였고 그 사이 라임사태 수사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주요 관계자들은 범죄수익을 은닉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었고 각종 증거인멸과 도주가 이뤄졌으며 피해액은 무려 1조 6000억 원이 돼 버렸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라임사태는 더 큰 비리 의혹이 등장하고 있다. 이종필 전 부사장 등이 환매 중단 속에서도 수백억 원을 빼돌려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의혹이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이 자금의 사용처를 놓고도 의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라임 문제 해결을 위해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이 깊숙하게 개입해 왔다는 진술을 확보해 검찰에 제출했다.

김 전 행정관은 금감원의 검사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왔으며 라임사태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자 행적을 감춘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유흥업소를 드나들었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석연치 않은 둘의 관계 속에 또 다른 정관계 인사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까지 나왔다. 청와대는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 답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밝혔지만 ‘대체 진실이 뭐 길래?’ 라는 의혹을 가진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력해 불필요한 오해가 있다면 풀어줘야 마땅할 것이다.

현재 법무부는 검찰개혁을 통해 증권범죄합수단 같은 직접수사 부서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형사부와 공판부를 늘려 민생사건 처리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금융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되고 피해 규모도 커지는데 노하우가 쌓여있는 검사와 베테랑 수사관들이 있는 부서를 해체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인지, 정치적 목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JD 샐린저의 저서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사회의 위선과 비열에 대항하는 주인공 홀든은 이렇게 말한다.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 끝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은 게 내 꿈이야”. 부조리와 범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우리 사회를 지키는 진정한 파수꾼은 없을까.

라임사태의 책임자들은 금융시장을 어지럽히고 투자자들이 가졌던 미래의 행복을 유린한 것만으로도 이미 그 죄가 무겁다. 모쪼록 덮거나 빠져나갈 궁리 말고 죄인의 심정으로 진실의 문 앞에 서주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사상 초유의 사태가 넘쳐나는 요즘, 나침반을 어디에 대고 살아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 사진제공=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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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준 부장 spab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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