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 '코로나 사재기'서 한국은 예외.. 왜?

임대환 기자 입력 2020. 4. 2. 10:50 수정 2020. 4. 2. 11: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에서조차 사재기 현상이 만연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촘촘한 배송망과 택배 서비스의 발달(태극 원 안)로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자료사진

새벽·총알배송에 촘촘한 물류망… 줄 안서도 집앞까지 빠르게 ‘딱!’

美·유럽 대형마트, 방역물품은 물론 생필품까지 동나… 한국은 2월이후‘언택트 소비’급증

껌 한통까지 배달 일상화… 택배사 한 곳이 하루최대 물동량 230만개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 영국의 한 간호사가 눈물로 호소하는 영상이 올라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일이 있었다. 영국 국민 공공보건서비스(NHS) 소속 간호사 돈 빌브러 씨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48시간 교대근무를 하다 지금 퇴근해 마트에 들렀지만, 사재기 때문에 텅 빈 매대를 봐야 했다”며 “과일도 채소도 없는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영상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한국인들에게는 한 가지 이해 못 할 장면이 외신을 타고 들어왔다.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에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면서 특히 화장지가 ‘품귀 현상’을 빚는다는 소식이었다. 코로나19 사태를 초기에 겪었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한때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왔던 우리나라에서 사재기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바로 ‘택배’를 꼽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것으로 정평이 난 우리나라의 배송망과 택배 시장은 코로나19 사태에도 사재기와 ‘싹쓸이’를 막아 준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재기 극심한 세계=미국과 영국,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조차 지금 사재기가 극성이다. 일본과 홍콩 등도 예외는 아니다. 마스크와 장갑 등 방역물품에서 생필품까지 동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품절된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 물티슈 등을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해 변기가 막혀 시에서 “휴지만 버리라”는 안내문을 붙일 정도라고 한다. 조지 유스티스 영국 환경장관은 사재기 때문에 빌브러 씨 같은 최전방 노동자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며 사재기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인터넷쇼핑몰인 아마존마저 일부 인기 제품과 가정용품이 품절됐고, 주문 폭주로 배송이 지연되기도 했다. 유료 회원인 프라임 회원에게조차 물과 화장지 등에 대해 “일시적으로 이용이 안 될 수 있다”는 공지문을 띄울 정도였다. 대형마트는 노인과 임산부 등 노약자만 마트를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시간을 설정해 운영하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사람들이 평소의 3∼5배로 물건을 사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이 살 필요 없다. 안심하고 진정하라”고 호소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사재기가 극성이다. 도쿄(東京)와 사이타마(埼玉), 지바(千葉) 등 수도권 지역에서는 쌀 매출이 평소의 2∼3배로 늘면서 ‘쌀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미곡판매사업공제협동조합이 “국산 쌀의 재고와 공급력은 충분하다”며 “쌀을 살 수 없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사재기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다.

◇사재기 없는 한국=전 세계가 사재기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한국은 예외다. 코로나19 사태가 극에 달했던 지난 2∼3월에도 쿠팡과 온라인쇼핑몰에서 잠시 배송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을 뿐 이내 잠잠해졌다. 여러 요인이 언급됐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학습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에서부터 김장 등 평소에도 음식을 저장해 놓는 우리 민족의 특성까지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유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요인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한 우리나라의 택배(배송) 시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온라인쇼핑몰 등의 배송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앱·리테일 분석서비스인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2월 신선식품 관련 온라인몰 결제액이 1월 대비 크게 증가했다.

G마켓과 옥션의 1월 1일∼3월 29일 사이 거래액을 보면, 생필품은 전년 동기 대비 28%, 보디·헤어제품 35%, 식품은 23% 증가했다. 대용량 생필품은 47%, 화장지·물티슈는 61% 늘어나는 등 주로 생필품 위주로 거래가 급증했다. 이마트 온라인몰인 ‘SSG닷컴’에서도 생필품 매출이 크게 올랐다. 2월 1일부터 3월 30일까지를 기준으로 라면은 전년 동기 대비 111.5%, 스팸 등 통조림 129%, 즉석밥 및 즉석식품 85.3%, 생수 101.2%, 휴지 65.4%, 세제는 31.0% 증가했다. 새벽배송 업체인 마켓컬리 역시 2월 결제액이 1월 대비 40% 늘었고, 오아시스마켓은 46%, 쿱생활건강은 26%, 초록마을은 17%, 총각네 야채가게는 8%, 국선생은 13% 증가하는 등 생필품과 식음료를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들의 매출이 급격히 올랐다.

한진택배의 지난 2월 물동량도 전년 동기 대비 10% 상승했고,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2월 19∼29일 기준, 물동량이 전년 동기 대비 37% 급증했다. 특히, 대구 지역의 경우 54%나 늘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온라인쇼핑이 발달한 국가에서도 사재기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택배·배송 시스템을 요인으로 들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택배·배송망은 그 촘촘함이 다르다. 온라인쇼핑몰과 대형마트는 물론, 집 앞 편의점에까지 배송망이 구축돼 있다. 좁은 국토와 밀집된 인구 등 배송에 최적화된 환경 덕분이다. 유통업체들은 심지어 ‘껌’ 한 통까지 배달해 준다고 광고하고 있다. 사람들이 굳이 마트나 시장으로 물건을 사러 나가지 않아도 매일 아침(심지어 당일 오후) 문을 열면 어젯밤에 주문한 물품이 놓여 있다. 지금은 새벽배송까지 일반화되면서 ‘당일 배송 시스템’을 넘어 ‘반나절 배송’ 등 배송 시스템은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발전 속도 놀라운 한국의 택배 시장=우리나라 택배 시장은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택배 배송 물량은 28억 개가량으로, 20억 개를 돌파한 2016년 이후 불과 3년 만에 8억 개 정도 증가했다. 매출액도 6조3300억 원에 달한다. 물량과 매출액 모두 전년 대비 9.7%, 11.7% 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 1인당 연평균 53.8회 택배를 이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최소 1번 이상 택배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10여 년 전인 2010년 25회에 비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경제활동인구의 택배 이용 횟수는 이보다 더 많은 99.3회로, 일주일에 최소 2회 이상 택배를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택배 이용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대면(언택트) 소비가 갈수록 확산하면서 택배 이용률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택배사들도 물동량 처리 능력을 강화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하루 평균 145만 개의 택배를 처리할 수 있는 한진택배는 지난달 하루 20만 개 이상의 물동량을 추가로 운송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성수기 기준, 하루 최대 230만 개까지 물량을 배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코로나19 사태에도 배송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성수기 수준으로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고 조기 작업 등을 통해 물동량 처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택배업계에서는 택배 산업이 발전하는 만큼 정부가 이번 기회에 규제 개선에도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택배 차량 번호판 자율화다. 현재 1.5t 이상 택배 차량에는 택배 전용 번호판이 배정되지 않고 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늘어나는 물동량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1.5t 이상의 차량이 많이 동원되는데, 이들에게도 택배 전용 차량의 혜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환경 차량이 도입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친환경 택배 차량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문화닷컴 바로가기|문화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