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표백제 살포..코로나 잡으려다 인권 잡네

정원식 기자 2020. 4. 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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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케냐·인도 등서 노동자 폭행…필리핀선 땡볕 고문도
ㆍ바이러스 확산 저지 명분 아래 ‘경찰국가’ 탄생 우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봉쇄령을 내린 가운데 공권력이 이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빈발하고 있다. 격리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폭행과 폭언을 당하거나 심한 구타와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바이러스 확산 저지라는 명분 아래 ‘경찰국가’가 탄생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프리카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13세 소년 야신 후세인 모요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후세인 모요는 경찰이 통행금지 단속을 위해 빈민촌에 들어와 곤봉을 휘두르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다 변을 당했다. 후세인 모요의 어머니는 “경찰이 소리를 지르며 들어와 사람들을 소 잡듯이 두들겨팼다”고 말했다. 경찰은 통행금지를 어긴 이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라고 해명했다.

앞서 케냐는 지난달 27일부터 오후 7시~다음날 오전 5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다. 경찰이 단속 과정에서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마구 휘둘러 부상자가 속출했다. 지난달 28일 케냐 남부 해안 도시 몸바사에서는 통행금지 시작을 한 시간 앞두고 경찰이 여객선에 타고 있던 노동자들을 급습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노동자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해서 구타한 후 최루탄을 터뜨렸다. 같은 날 오전에는 한 택시 운전사가 통금 시간에 임신부를 병원에 내려주고 경찰에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25일부터 전국 이동금지령이 발효된 인도에서도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인도 경찰이 곤봉으로 시민들을 폭행하는 장면을 다수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이동금지 첫날인 지난달 25일 32세 노동자가 가족들이 마실 우유를 사러 나갔다가 경찰에 폭행당해 사망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이동금지령을 어기고 손님을 태운 택시 운전사가 경찰 폭행으로 사망해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생계가 끊어져 고향으로 돌아간 일용직 도시 노동자들은 바이러스 보유자로 간주돼 수모를 당했다. 이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거나 수백㎞를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표백제였다. 인디안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바레일리에서는 지난달 30일 귀향한 노동자들을 공터에 모아놓고 표백제 성분이 포함된 소독약을 대량으로 살포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달 17일 북부 루손섬 봉쇄를 시작으로 강력한 격리 조치를 시행 중인 필리핀은 일부 지역에서 이동금지 위반자들을 개 우리에 가두고 땡볕에 앉아 있게 하는 고문을 가해 논란이 됐다. 2일 필리핀 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전날 밤 대국민 연설을 통해 봉쇄 명령을 어기거나 군경에 위협을 가할 경우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인권 단체들은 소외계층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대신 2000억페소(약 4조8200억원) 규모의 구호예산을 신속히 집행하라고 촉구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봉쇄가 확대되면서 세계 곳곳의 국가들이 독재 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극단적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 경찰의 단속이 주로 저소득층을 겨냥하고 있어 차별적인 데다 격리 지침을 어긴 이들을 밀집 시설에 구금해 오히려 감염 위험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회 민주주의’의 고향 영국에서도 지난달 23일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동금지령을 강화한 뒤부터 경찰의 권한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북부 워링턴 경찰은 드론으로 이동금지령을 위반한 시민들을 촬영한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공개해 ‘빅브라더를 연상시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경찰은 수시로 운전자들에 대한 불심검문을 벌이고,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물품에 대해서까지 간섭하는 등 물의를 빚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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