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조리사들 "급식 가장 바쁠 시기에..어제도 오늘도 청소만"

김홍준 2020. 4. 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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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미뤄져 학교 못 나가니 봉급 못 받아
대책이라고 지난달 20일부터 나오라더라
온라인 개학으로 언제까지 청소만 할지

‘(초·중·고에서)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일 안 하면 월급 못 받는 그룹’.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달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조 교육감은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으로 치부된 교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조 교육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이 있는 분들 대책을 강조하다 보니 문제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며 사죄했다. 대구와 비교를 통한 문장으로 한쪽을 강조하려다 홍역을 치른 것이다. 이후 조 교육감이 말한 ‘어려움이 있는 분들’, 그러니까 도서관 사서, 방과 후 돌봄 교사, 급식 조리사 등에 대한 논의는 쏙 들어갔다.
초·중·고교가 4월 9일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면서 급식실은 무기한 운영 중단 상태다. 한 학교 급식실에 있는 조리사들의 착용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정부는 초·중·고교의 ‘온라인 개학’을 전격으로 발표했다. 등교 개학은 언제인지 기약 없다.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더욱 어렵게 됐다. 도서관을 개방하는 학교에서는 사서들이 출근한다. 그들 중 급식 조리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경력 20년, 19년, 12년의 베테랑이다. 코로나19로 궁해진 그들의 지난 3월과 앞으로의 2020년을 대화체로 전한다.


개학 연기 뒤 3월 20일부터 학교에 나갔지만…
전국 6만 명, 우리는 학교 급식 조리사. 전국 초·중·고와 특수학교 560만여 명(2018년 기준)의 하루 끼니 중 절반 넘게 맡고 있지. 지금, 3~4월은 가장 바쁠 신학기. 하지만 우리는 식당에 불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학이 계속 미뤄지면서 음식을 못 만들고 있는 거야.

큰일이야. 1, 2월은 방학이라 기본 수당 40만~50만원으로 생활했지. 방학 때는 일을 안 하니 임금이 안 나오거든. 3월에도 그럴까 했는데 그달 20일부터 학교에 나오라더군. 출근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데, 어쩔 수 없지.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나가야 하니까. 학생들도 안 나오는데 뭐하냐고? 어제 나가서 청소, 오늘 나가서도 청소야. 일부 학교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고 식당 식탁에 칸막이를 설치하는데, 우리는 아직이야. 내일도 청소일 걸.
초·중·고교가 4월 9일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면서 각 학교 급식실은 이처럼 텅 비게 된다. [연합뉴스]
아, 얼마나 버는데 하루라도 나가려 하는 거냐고? 일당 7만7000원(일부 지역 기준)이야. 신입은 최저임금에 못 미쳐서 5년 차까지 이런 수당 저런 수당 다 갖다 붙여서 받아. 오전 8시~오후 4시 일하고. 학사일정에 따라 1, 2학기 285~292일 나가는 걸로 돼있는데, 지난달 20일부터 나갔으니, 285분의 19는 못 번 거야. 어떤 지역은 340일을 출근하는 걸로 돼 있더군.


일당일오공…1명이 학생 150명 끼니 챙겨
‘투잡’ 뛰면 안 되느냐는 분들도 계시는데, 불가능에 가깝지. 하려면 부득이한 사유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1, 2월 방학 때도 어려운데 3, 4월에는 더 어렵다고 봐야지. 우린 교육공무직이자 비정규 무기계약직이야. 학교 급식은 영양교사-조리사-조리실무사-급식도우미 체계인데 영양교사는 정규직 공무원으로 급식재료 계약, 식단 구성, 학생 영양 지도를 하지. 조리사는 영양교사와 손발이 잘 맞아야 해. 아무리 영양교사가 좋은 식단을 짜도 조리사들의 솜씨가 없으면 물거품이거든. 솜씨? 맛, 신속, 위생을 아우르는 말이지.

우리는 ‘일당일오공’으로 불려. 조리사 1명이 학생 150명(초등생 기준, 고교는 120명)을 맡아 급식하는 거야. 들고 나르고 푸고 씻고 닦고, 관절의 동작이 큰일을 쉼 없이 해야 해. 2시간 이내에 만들고, 2시간 이내에 먹는 게 원칙인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음식을 해야 하므로 화장실을 제대로 못 가고 참아. 채소의 경우 1시간 내로 승부 봐야 해. 우린 밥도 허겁지겁 보통사람 3명 와도 우리 1명 몫을 제대로 못 해. 3년 차 된 후배가 그러더라, 두 학기 전쟁 치르니 그제야 익숙해진다고.
초·중·고교가 4월 9일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면서 각 학교 급식실은 운영이 무기한 중단될 전망이다. 3월 1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관계자가 식탁과 의자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아파도 쉴 수가 없어. 신기하게도, 방학에 맞춰 몸이 아파지더라. 이렇게 힘들더라도 우리 자식들 같은 학생들 먹인다는 자부심 없이는 일 못 해. 예전에 우리 아이와 어디 가서 직업란을 기재하게돼 있는데, 우리 애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 아이가 눈치채고는 그러더라. 친구들한테 엄마 직업 자랑하고 다닌다고. 우리 엄마 같은 사람 없으면 배곯는다 했다더라.
초·중·고교가 4월 9일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면서 각 학교 급식실은 운영이 무기한 중단될 전망이다. 3월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시농협학교급식지원센터 운반 카트가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여름방학 줄어들듯…하루에 옷 3~4번 갈아입을 각오
학사 일정이 아직 안 나왔지만, 개학이 연기되면서 여름방학이 줄면 걱정이 되기도 해. 6월부터는 더위, 특히 습도와의 싸움이야. 위생모에 마스크. 거기에 고무장갑, 고무장화, 고무 앞치마. 하루에 3~4번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야.
지난 3월 3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급식실에 칸막이를 설치한 대구 경북고등학교의 모습. 이날 정부는 온라인 개학 방침을 결정했다. [연합뉴스]
이번 3월은 힘들었어. 우리뿐만 아니라 도서관 사서, 방과 후 강사들도. 조리사 중 맞벌이 부부는 그나마 버티지만, 홀로 집안 경제 책임지는 사람들도 많아. 교육청에서 우리가 3월에 궁해지니 선지급 명목으로 돈 준다고 하더라. 가불이지 뭐.

다음 주(9일) 개학이지만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온라인 개학이니 우리 조리사들은 여전히 ‘조리’할 일이 없지. 그것도 기한 없는 온라인 수업이라니…. 우리가 언제까지 똑같은 청소만 하고 있을 수 없잖아. 우리에게 다른 대책이 있는 건지.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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