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채널A 기자에 접근했던 親與 브로커, 그는 '제보자X' 였다

박국희 기자 2020. 4.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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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의 '채널A-검찰' 유착 의혹 보도. /MBC

현직 검사장과 채널A 기자가 유착해 유시민 노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비리를 제보하라 압박했다고 MBC에 폭로한 이는 평소 윤석열 검찰총장을 맹비난하고, 조국 전 법무장관과 현 정권을 극성적으로 지지해온 지모(55)씨인 것으로 3일 드러났다.

지씨는 과거 횡령, 사기 등으로 복역했다. 한때 검찰 수사에 협조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친여(親與) 매체에서 금융전문가 행세를 현 정권을 적극 옹호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제보의 순수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제보자 X’로 칭해온 지모씨는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와 MBC PD수첩 등에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검찰 관련 제보를 하고 ‘나꼼수’ 출신 김어준씨의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를 옹호하기도 했다.

지모씨(왼쪽)가 과거 모 회사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찍은 사진. /독자제공

지씨는 지난 31일 MBC가 방송했던 채널A 법조팀 기자와 ‘윤석열 최측근’ 검사장의 유착 의혹도 제보했다. 지씨는 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의 대리인 자격으로 채널A 법조팀 기자를 만났다. 그는 채널A 기자가 모 검사장과 나눈 통화 내용을 들려줬고 이는 자신이 알고 있던 ‘윤석열 최측근’ 검사장의 목소리라고 판단했다고 MBC에 밝혔다.

지씨는 페이스북에서는 ‘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그는 자신이 이번 MBC 보도의 제보자이면서도 제3자인 것처럼 관련 보도를 해석하고 홍보했다. 지난달 31일 MBC의 첫 보도가 나가기 일주일 전인 24일 지씨는 페이스북에 “이번 주말에는 유시민 작가님한테 쐬주 한잔 사라고 할 겁니다. 왜 사야 되는지 금요일쯤은 모두가 알게 될 걸요?ㅋㅋㅋㅋ”라고 썼다. MBC 보도를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MBC 보도가 늦어질 것 같자 지씨는 다음 날인 25일 “아… 유시민 작가한테는 다음 주에 쏘주 한잔 사달라고 해야겠다 … 이번 주에 마실 수 있었는데 일정이 좀 아쉽네 ㅋㅋㅋ”라고 썼다. 또한 MBC 보도 하루 전인 지난 30일에는 “갑자기 꿈에 내일 MBC 뉴스데스크를 보라는 신의 메시지가… 모지? 왜지? ㅋㅋㅋㅋ”라고 썼다. MBC 측으로부터 다음 날 자신이 제보한 내용이 보도된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모씨가 31일 MBC가 채널A 관련 보도를 하기 하루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인터넷 캡처

이후 이달 2일 아침 지씨는 KBS 라디오와 익명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지씨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사장과 채널A 기자의 두 달간 통화기록만 서로 제출하면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라며 “채널A 기자, 사실이 아니라면 검사장 목소리 파일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페이스북에 해당 인터뷰 기사 링크를 걸고 “KBS 라디오에 채널A 기자를 만났던 당사자가 출연했는데 채널A 간부들도 개입된 정황이 대박”이라고 썼다. 본인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채널A) 윗선 간부들도 다 이것을 핵심적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환기한 것이다.

MBC 보도는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연이어 나왔다. 지씨는 2일 MBC 뉴스 시작 전에는 “오늘 뉴스데스크에서 채널A와 검찰의 협박 취재 3탄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오늘도 본방사수”라고 썼다. 자신이 직접 만났던 채널A 기자 사진을 올려두고는 “과연 이놈 혼자서 악마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요. 채널A 이모 기자 이놈에게 빨대를 시킨 윤석열 최측근 검사장 그놈도 잡아서 산채로 ○○○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지씨는 지난 2월 16일 페이스북에 “개검총장 윤석열아 오늘 개꿈 꾸면 내덕인 줄 알아라”라고 썼는데, 다음 날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는 윤 총장 아내의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보도했다. 보도가 나오자 그는 “그거 봐여 제 말이 맞져? 윤석열이 어제 개꿈 꿀 거라고”라고 썼다. 해당 의혹의 뉴스타파 제보자 역시 지씨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모씨가 과거 페이스북에 윤석열 총장을 '개검총장'으로 비하한 게시글. /인터넷 캡처

실제 뉴스타파는 “자신이 구치소에 재소 중인 죄수의 신분으로 장기간 검찰 수사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제보자 X’가 뉴스타파에 찾아왔다” “제보자X는 금융범죄수사의 컨트롤타워인 서울남부지검에서 검찰의 치부를 목격했다”고 했다. 뉴스타파는 그의 증언을 토대로 검찰 내부 문제를 비판하는 ‘죄수와 검사’ 시리즈를 작년 8월부터 두 달간 보도하기도 했었다.

지씨는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작년 10월 ‘김어준의 뉴스공장’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정경심 교수가 투자한 기업의 범죄 행위를 밝히다가 그게 흘러가서 정 교수에게까지 가야 하는 건데 이건 정 교수를 타깃으로 해서 거꾸로 시작됐다. 비정상”이라고 했다. 당시 김어준씨는 지씨를 소개하며 “지난 20여 년간 M&A 시장에서 활동하신 분야의 전문가”라고 추켜세웠다. 지씨는 지난 26일 정경심씨의 재판 기사 링크를 건 뒤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의) 수백억 잔고 위조 사건을 두고 아직도 이런 쓰레기 기사를 끄적거리는 기자를 보면 쌀알을 BB탄 총알로 디질 때까지 쏘고 시퍼 ㅋㅋㅋㅋ”라고 했다.

지씨는 2일밤 KBS 더라이브와의 인터뷰를 하면서는 “(채널A 기자들을) 두번째 만날때는 소지품을 다 꺼내놓자 그러더라”며 “왜 그러냐니까 혹시 녹음될 수 있으니까, 저는 녹음을 해야되니까 이 상황을. 핸드폰을 두 개를 가져가서 하나는 안주머니 깊이 넣고 바깥 주머니에 있는 거 꺼내놓고 나왔다”고도 했다.

2일 오후 11시쯤 KBS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에 출연한 지모씨. 가림막을 세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 /KBS

검찰 출신 법조계 인사들은 지씨를 “사기꾼 정도”라며 평가절하했다. 한 법조인은 “서울남부지검에서 증권범죄를 수사할 때 지씨를 정보원으로 몇 번 불러준 모양”이라며 “주식 차트만 보고 이건 시세 조종이 확실하다는 등 혼자만의 그림을 그리던 사기꾼 정도로 알고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여권과 연결된 지씨가 ‘윤석열’ 관련 의혹을 불붙이기 위해 이철 전 대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 대리인 행세를 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지씨는 이날 본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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