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의 '악의 평범성'..전쟁, 의료범죄, 그리고 의학자의 양심

2020. 4. 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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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는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아이히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많은 이들은 유대인 학살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악랄한 누구 또는 반사회적인 정신 이상자에 의해 이뤄졌을 것이라며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했다는 '악의 평범성'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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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 15년전쟁과 일본의 의학의료연구회 엮음, 하세가와 사오리·최규진 옮김/건강미디어협동조합·2만2000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아이히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많은 이들은 유대인 학살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악랄한 누구 또는 반사회적인 정신 이상자에 의해 이뤄졌을 것이라며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했다는 ‘악의 평범성’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세균과 독가스를 이용할 준비를 하면서 전쟁 포로 등 약 3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마루타’로 인체 실험한 일본의 731부대에서는 어땠을까? 1939년 9월 군의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2월 731부대에 배속된 가라사와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그는 1937년 이 부대를 방문했을 때 세균전 준비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전쟁 포로 등에게 자행된 인체실험임에도 불구하고 가라사와는 집안과 가족을 위해 ‘근엄하고 강직하게’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의 아내는 인터뷰에서 가라사와에 대해 “성실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었고 “외동아들이어서 자신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증언했다.

패전 뒤 곧바로 일본은 731부대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마루타는 뼈와 재로 만들어 트럭으로 운반해 폐기하고 53명의 의학자는 부대 폭격기로 가장 먼저 일본 본토로 이송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세균전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소련군은 일부 731부대 관련자들을 찾아내 하바롭스크에 수용했다. 그리고 열린 재판에서 가라사와는 처음으로 731부대의 인체실험에 대해 온전히 털어놓았다.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52년 10월 특별사면으로 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던 가라사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인체실험에 대해 의사로서의 양심의 가책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 선배와 동료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을까?

‘악의 평범성’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이 한 행동과 그 행동이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를 ‘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추천의 글에서 황상익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2012년 5월 독일의사협회가 총회를 열어 발표한 ‘2012 뉘른베르크 선언’을 소개했다. 독일 의사들은 나치 치하에서 벌어진 의학 범죄에 대해 의사들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밝히고 이런 범죄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경고이기에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와 재평가를 하겠다고 했다. 옮긴이 가운데 한 명인 최규진 인하대의대 교수는 후기에서 책을 번역한 이유에 대해 “731부대는 악마 같은 일본군으로 치부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며 “열심히 (역사의) 거울을 닦고 있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일본 의료계에서 전쟁 책임에 대해 양심을 발휘하자는 취지로 2000년에 만든 ‘15년전쟁과 일본의 의학의료연구회’가 엮었다.

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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