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즐겨 보던 '포르노'가 'n번방'을 낳았다"

박성의 기자 입력 2020. 4. 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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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게일 다인스 윌록대학 교수 "男의 '통과의례' 된 포르노, 범죄의 경계 흐려"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성착취 영상물 거래로 논란이 된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 대중에게 공개된 n번방의 모습은 범죄 현장보단 놀이터에 가까웠다. 가해자들은 잔인한 성착취 영상을 찍고 공유하며 'ㅋㅋ'를 붙였다. 대화방에 참여한 수만 명의 유료회원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피해자 중엔 미성년자도 있었지만, 회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 기괴하고도 악랄한 모습에 대중은 공분했다. 과연 n번방에 불나방처럼 몰려들었던 이들을 처단하고 나면, 우리 사회는 '정화'되는 것일까. 운영자 조주빈이 붙잡힌 지금, 우리 사회는 드디어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룬 것일까.

30여 년간 포르노 산업을 연구한 게일 다인스 미국 윌록대학 명예교수는 한국의 이런 사정 앞에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야한 비디오(야동)'가 청소년들의 '통과의례'가 된 작금의 시대에, 'n번방의 괴물들'은 도돌이표처럼 계속 생겨날 것이라 확신한다. 다인스 교수는 "하드코어 포르노와 범죄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고, 'n번방'은 포르노의 한 연장선일 뿐"이라며 "포르노 산업이 번창하는 한 성착취 범죄는 종식되지 않을 것"라고 단언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4월1일 이메일을 통해 다인스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게일 다인스 교수 제공

"가학적으로 변한 포르노, 합법 여부 무의미"

'n번방'은 왜 생겨난 것일까.

"난 포르노를 연구해 왔다. 그래서 그럴까. n번방 같은 포르노가 온라인 공간에서 급속도로 확산한 현상이 전혀 놀랍지 않다. 관련해 이미 많은 선행 연구가 있었다. 남자들은 점점 하드코어 포르노에 무감각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것, 더욱더 폭력적인 포르노를 찾고 있다. 포르노는 성인 여자와 여아를 무력하게, 남자를 강력하게 묘사하면서 시청자를 흥분시킨다. n번방 사건은 포르노 이용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뿐이다. 하드코어 포르노에 지루해진 남성이라면 심각한 수준의 폭력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필연적인 결과였다."

연출된 '야동'과 성착취 영상물은 구분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조계는 지난 20년간 포르노 산업에 일어난 지각 변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법적인 측면에서 어떤 영상물이 합법이고 불법인지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반 포르노를 보자. 목을 조르고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버젓이 나온다. 포르노에서 주류를 이루는 성행위 중 다수가 명백한 불법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영상물을 기소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포르노를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상업적 성착취'라고 정의한다."

이른바 '빨간 비디오'를 찾는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포르노를 남자아이가 성인 남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통과의례쯤으로 취급하는데, 이건 이런 주장과 같다. '남자아이는 여성이 성적으로 폄하당하는 이미지를 볼 필요가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타고났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포르노는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 열등한 성별계급으로 취급받는 가부장 사회에서 작동하는 문화적인 문제다."

성인 콘텐츠는 잡지에서 시작했다. 이어 영상물로 진화했는데, 최근의 성인물이 유독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포르노 이용이 비단 최근의 얘기가 아니라는 말은 정확한 지적이다. 다만 성인 잡지인 '플레이보이' 등장 이전에는 포르노가 뒷골목 경제로 존재했다. 이후 '플레이보이'가 포르노를 떳떳한 비즈니스로 인식하도록 사회화했고 포르노 산업의 포석을 놓았다. 그리고 인터넷이 주요 전달 매체가 된 2000년 전후로 인터넷 포르노는 훨씬 더 하드코어화됐다. 섹스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기괴한 폭력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이른바 '소프트코어' 포르노는 점점 더 비중이 줄어들었다. 특히 2007년 이후 포르노 이용과 포르노의 여성 및 아동 대상 폭력의 수위 모두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포르노는 디지털 시대 공공의 위기"

n번방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 미성년자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인터넷 포르노를 처음으로 시청하는 연령대를 8세에서 10세로 본다. 오늘날 젊은 세대 대다수가 스마트폰으로 포르노에 접속하는데, 주로 10대를 겨냥한 SNS나 무료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통한다. 포르노 사이트에는 매달 넷플릭스·아마존·트위터 접속자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용자가 몰린다. 10대부터 폭력으로 가득한 성행위 장면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셈이다. 그래서 10대들이 포르노 사이트에서 일상적으로 본 위험한 성적 접촉을 따라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제2의 n번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종지부를 찍고 싶다면 포르노 산업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포르노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포르노는 여성 신체를 성적으로 폄하하고 파괴하는 행태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면서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포르노라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존재하는 한, 여성은 계속 종속될 것이다. 포르노 산업에 굴복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형태의 성착취를 종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포르노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포르노는 디지털 시대의 공공보건 위기다. 거시적 사회문제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 우선 교육부터 해야 한다. 학교에서 연령대별로 적합한 성교육을 이른 나이부터 실시해야 한다. 물론 이걸로 아이들의 포르노 접속을 전부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아이들부터 알아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포르노 시청으로 인해 자신의 성적·정서적·인지적·관계적 발달에 미칠 해로운 영향을 이해하는 비판적인 눈을 길러줘야 한다."

'포르노랜드' 실태 고발한 다인스 교수

한편, 다인스 교수는 30년 넘게 포르노 산업을 연구해 온 영국 출신의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반(反)포르노 운동가다. 미국 보스턴의 윌록 대학 사회학 및 여성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대중문화와 미디어 속 여성 이미지, 포르노의 악영향과 우리 문화의 과잉성애화에 관해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지난 2월 포르노 산업의 그림자를 다룬 저서 『포르노랜드』(열다북스 펴냄)가 한국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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