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붙박이별, 정의당

김택근 | 시인·작가 2020. 4. 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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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의도에 떠 있는 위성정당들

정의당 홀로 탑승 거부

지더라도 이기는 길 선택

축제가 끝나면 더 단단해질 것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여의도 상공에는 위성정당(위성이란 용어가 점잖다. 어떤 이는 괴뢰라 칭한다)이 떠 있다. 위성정당에서 쏟아지는 요설(妖說)이 봄날을 어지럽힌다. 국민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정당정치는 십리나 후퇴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왜소해지고 있다. 군소정당과 함께 가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어내야 한다.

금배지 달아보겠다고 허겁지겁 번호표 받아들고 위성정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인물들 참으로 없어 보인다. 누구는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삿된 것들을 물리치고 결국 승리했다. 김대중은 당시 대통령 노태우의 합당 권유를 뿌리쳐서 민의를 받들었고, 노무현 또한 3당 합당을 거부하고 꼬마민주당에 남아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비록 지더라도 역사에 길을 물었고, 그렇게 해서 ‘김대중’이 되고 ‘노무현’이 되었다.

이런 혼탁한 정치판에서 그래도 돋보이는 것은 정의당이다. 양당의 추악한 싸움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심상정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명운을 걸었다. 거대 양당이 의회권력을 독점하는 수(數)의 정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어 노회찬이 소원했던 ‘50년 묵은 불판’을 갈아보고 싶었다.

어쩌다 여당이 된 민주당이 ‘촛불동지’였기에 어쩌면 우군일 수 있었다. 그건 바람일 뿐 협상은 쉽지 않았다. 야당 반대는 예상했지만 여당도 딴전을 피우고 투정을 부렸다. 심상정은 양보를 거듭했다. 2중대 소리를 들으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결국 누더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띄웠다. 그러자 안팎에서 심상정을 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는 조국 대전에서 민주당 편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국 대전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반대편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진위를 떠나 ‘조국 쓰나미’는 국민들을 두 편으로 갈라놓았다. 정의당이 어떤 결정을 내렸어도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비례 의석수를 보장하겠다며 정의당에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라 강권했다. 심상정은 흔들렸지만 마침내 의연했다. 꼼수와 야합을 거부했다. 눈앞에 의석수가 어른거렸겠지만 원칙을 지켰다. 설사 지더라도 스스로에게 이기는 길을 택했다. 결국 진보정당의 자존심을 지켰고, 그렇게 해서 ‘정의당’이 되고 ‘심상정’이 되었다.

나쁜 정치도 정치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우아하거나 고상할 수 없다. 김대중은 ‘정치란 심산유곡에 피어난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라고 했다. 심상정처럼 현실에 피를 대고 서민들과 교감하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많은 이들이 심상정 곁에 노회찬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그래도 심상정이 버티고 있음에 안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정치공학으로 접근하여 정의당의 퇴조를 예단하지만, 그들은 늘 틀렸다. 선거가 끝나면 축제마당에 악취가 진동하겠지만 정의당은 승패를 떠나 의연할 것이다.

진보정당 곁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먼발치서 지켜본 그들의 활약은 경이로웠다.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 국회에 입성한 의원(민주노동당)들은 의사당에 머물지 않았다.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갔고, 길 위에 섰다. 이름과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들 자신이 또 얼마나 울었는가. 사람들은 그 눈물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 보니 그들은 붙박이별이다. 오래 이 땅의 눈물과 아픔을 비출 것이라 믿는다. 안개가 걷히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정의당.

김택근 |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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